돼지 고기를 먹을 때마다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레위기 11장 7절).

 

 

            저는 “돼지 고기”하면 삼겹살을 제일 좋아합니다.  물론 돼지 고기 하면 목살과 돼지 갈비, 족발과 수육, 갈매기살과 뿔살, 껍데기와 곱창이 있다고 하지만 저는 돼지 고기하면 삽결살에 김치와 마늘 등을 쌈싸서 먹는게 제일 맛잇습니다. 하하.  안그래도 한 이주전 금요일 저녁, 저희 집 세 아이들을 저희 교회 영어사역 전도사님들에게 맞겨 놓고(영어사역 movie night이 있어서) 아내와 함께 L.A. 한인타운에 있는 고기 뷔페 집에 가서 삼겹살과 갈매길살 등을 싫컷 먹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먹은 고기들 중 삼결살과 김치와 마늘 및 된장 등을 넣어서 떡보쌈해서 먹었는데 참 맛있었습니다.  그 식사 후 사랑하는 멘토 목사님에게 카카오톡으로 “오늘 저녁에 아내랑 한인 타운에 있는 고기 부패집 가서 싫컷 먹었습니다. ㅋㅋ”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목사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고기?. 부패집은 부패해요. 뷔폐는 몰라도....” 하하.  비록 제 한국어가 짧아서 “뷔페”를 “부패”라고 썻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앞으로 돼지 고기 먹을 때마다 혹시 내 안과 내 삶에 부패한 면이 있지 않는지를 뒤돌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바로 오늘 본문 레위기 11장 7절 말씀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레위기 11장 7절을 보면 성경은 먹을 수 없는 짐승들 중 하나가 바로 “돼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1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2절) 돼지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돼지는 “굽이 갈려져 족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그들에게 “부정”(unclean)하기 때문이었습니다(7절).  그래서 거룩한 하나님께서 구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또한 스스로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44절) 돼지 고기를 결코 먹어서는 아니되었습니다(7절).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돼지는 금물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 금물인 돼지를 먹으면 이사야 선지자는 망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66:17).  다시 말하면,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여 스스로 정켤케 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있는 이방인들을 본받아 그들처럼 금물인 돼지 고기를 먹으면 다 함께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믿던 안믿던 돼지 고기를 먹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같이 돼지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이사야의 말씀처럼 불신자들과 함께 다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는 오늘 본문 레위기 11장 7절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이유는 이 구약(옛 언약)의 부정의 규례는 신약(새 언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골2:14-19).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 20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Do not tear down the work of God for the sake of food All things indeed are clean, but they are evil for the man who eats and gives offense”).  그러므로 우리는 “…  음식물을 하나님이 지으신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foods which God has created to be gratefully shared in by those who believe and know the truth”)(딤전4:3하).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돼지 고기를 먹을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먹되 저는 돼지 고기를 먹을 때마다 여태것 별 생각 없이 맛있게 먹었는데(아니 아무 생각 없이 먹었는데) 이제부터는 좀 생각하면서 먹으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오늘 본문 레위기 11장 7절을 묵상한 후 부터는 돼지 고기를 먹을 때마다 꼭 생각하고 먹으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그 생각은 바로 ‘’혹시 지금 내가 돼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돼지 같은 인생”을 생각할 때 저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탕자 비유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 말씀 중 특히 15절을 보면 탕자는 아버지에게 받은 재물을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낭비한 후 궁핍한 가운데서(12-14절) 들로 가서 돼지를 치는 모습이 나옵니다(15절).  이 모습을 생각할 때 저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서 이 세상에서 허랑방탕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것들을 다 허비하여 궁핍해 진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궁핍해졌을 때 탕자는 돼지를 치면서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는데도 불구하고 주는 자가 없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16절).  그렇게 처량한 신세에 처한 탕자처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나 이 세상에서 방황하며 인생을 허비할 때 우리의 신세가 처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돼지나 치는 인생이 얼마나 처량한 신세입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돼지를 칠 때 그 돼지가 거하는 더러운 구덩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더러운 구덩이에서 우리 자신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돼지를 치려고 돼지 구덩이에 있다보면 우리 자신도 얼마나 더러워지겠습니까.  그와 같이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나 멀리 가서 이 더러운 세상에 깊이 빠져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보면 우리 자신은 더러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돼지 같은 인생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은 후 다시금 더러운 돼지 구덩이와 같은 이 죄악된 세상에서 허랑방탕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것들을 낭비하고 있다면 지금 우리는 돼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나 제 자신이 이러한 돼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돼지 고기 먹을 때마다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돼지 고기”보다 “양고기”를 선호하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2월 4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 사함 받아 이제는 성찬식에 참여하여 십자가에 찢기신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빵을 믿음으로 받게 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