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출애굽기 13장 17-18절, 14장 1-2절).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시는 것일까?’  당신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힘든 상황에서 빠져 나올 구멍은 없어보이고, 이리 저리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힘써 노력해 보지만 하면 할 수록 마치 늪과 같은 문제에 더 깊이 빠져드는 것 같은 경험을 해보신적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깊은 늪과 같은 힘든 상황에 빠져들면 들 수록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 너무나 괴로워 할 때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렇게 괴로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종종 기도하면서 과거를 뒤돌아 봅니다.  그리곤 저는 과거에 힘들고 어려웠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를 인도해 주셨고 건져주셨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에 하나님의 인도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을 주시곤 하십니다.  과거에도 그 힘들고 어려웠던 상황에서 저를 인도해주시고 건져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어떠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할찌라도 어제와 오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해주시고 건져주실 확신을 주시곤 하십니다.  그러한 확신 가운데서 저는 대학교 때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 배운 인도의 확신 말씀인 잠언 3장 5-6절을 묵상하곤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인도의 확신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제 자신에게 ‘내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자’라고 말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자’라고 제 영혼에게 말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네 길을 지도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잠언 3장 5-6절 말씀을 묵상하며 과거에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해 주실 주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때 지금 제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고 앞으로도 어떠한 힘든 상황에 처한다 할찌라도 제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3장 17-18절과 14장 1-2절을 보면 우리의 명철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좀 엿볼 수 있습니다.  한 두 가지로 요약을 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까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셨습니다(출13:17-18).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져내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심에 있어서 가까운 길인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을 놓아두고 멀리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보내셨는지 잘 이해가 안됩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1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까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이유는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봐 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멀리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그들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름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운전할 때에도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네비게이션을 사용합니다.  네비게이션에다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 주소를 입력해 넣으면 네비게이션이 알아서 지름길을 찾아 줘서 우리로 하여금 최대한 빨리 우리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도와줍니다.  이젠 이러한 삶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네비게이션이 지름길을 가르쳐 주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멀리 돌아가게 방향을 제시해 준다면 우리는 분명히 그 네비게이션이 망가졌던지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결코 멀리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그 멀리 돌아가는 길에 어려움과 역경 등 난관이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가장 쉽고 빠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샛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가장 쉽고 가장 빠른 방법으로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름길(short cut)을 놓아두고 에움길(a long way round)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까요?  아니면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에움길을 떠나 우리가 원하는 지름길을 갈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는 에움길로 인도하신다면 우리는 그 하나니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되 우리는 그 에움길을 걸으면서 신명기 8장 2-3절 말씀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에움길을 걷게 하시는 목적은 우리를 낮추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사는 줄을 알게 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름길이나 에움길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름길이던 에움길이던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냐 아니냐 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과 함께 에움길도 믿음으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바다로 인도하셨습니다(출14:2).  이 또한 우리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고 명하셨을까요?  이 하나님의 명령은 한 마디로 홍해 바닷가 앞에 장막을 치라는 말씀입니다.  이 명령이 우리의 명철로 왜 이해가 되지 않는가 하면 그 홍해 바닷가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치면 그곳에 “갇힌 바”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출14: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곳에 장막을 치라고 명하신 후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곳에 “갇힌 바 되었다”고 생각할 것임을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3절).  애굽 왕 바로의 생각에는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기에 뒤에서 애굽 군대가 좇아만 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홍해 바닷가 앞에서 꼼짝없이 갇힌 바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모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습니다(4절).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홍해 바다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어(21절)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갔고(22절) 그들의 뒤를 쫓던 애굽 군대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와 마병들(26절)은 물디 다 그들을 엎어 하나도 남지 않고(28절) 다 죽음을 당했습니다(30절).  결국 하나님께서는 큰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31절).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습니다(31절). 

 

            우리는 갇힌 바 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문제의 해결점이 안보이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불안해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러한 상황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신다면 과연 우리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순종할 수 있을까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홍해 바닷가 앞으로 가라’고 명하신다면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면 뻔히 갇힌 바 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묵묵히 그곳으로 가려고 할까요?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면 결코 그곳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은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삼하22:33).  비록 우리가 볼 때에는 ‘홍해 바닷가 앞’이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닐찌라도(그리고 실제로 그곳이 안전한 곳이 아닐찌라도) 우리를 안전케 하시는 하나님이 그 갇힌 바 된 장소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바로 그곳이 안전한 곳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볼 때에 아무리 안전한 곳이라 할찌라도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곳이야 말로 제일 불안한 곳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실라와 함께 감옥에 갇혔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으므로 그들은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송한 것입니다(행16:25).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옥게 갇힌 바 될찌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라면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울과 실라처럼 그 감옥에서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행16:25).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갇힌 자들을 이끌어 내사(시68:6) 자유를 주시며(146:7) 또한 형통하게 하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68:6).  이러한 믿음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왜 우리를 지름길이 아닌 에움길로 인도하시는지, 왜 우리는 ‘홍해 바닷가 앞’으로 인도하사 갇힌 바 되게 하시는 지 우리의 명철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까지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명철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름길이 아닌 에움길로 인도하실지라도, 그리고 우리를 갇힌 바 되는 곳으로 인도하실지라도,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도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 1절),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1월 22일,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편 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