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창세기 42장 16, 20-21절).

 

 

            과연 우리는 진실한 사람들입니까?  과연 우리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름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진실하길 원하고 있습니까?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창세기 42장 16절은 애굽의 총리인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한 말입니다.  그 말의 문맥을 살펴보면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당신들은 애굽의 틈을 엿보려고 온 정탐꾼들이다’(9, 12절)라고 말한 반면에 요셉의 형들은 ‘우리는 정탐꾼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곡물을 사러 왔습니다’(10-11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요셉에게 자기들은 열두 형제들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야곱)의 아들들이요 막내 아들(베냐민)은 아버지 야곱과 함께 있고 또 하나(요셉)는 없어졌다고 말하였습니다(13절).  그래서 요셉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진실함을 증명하라고 말하였습니다(15절).  그래서 요셉은 그들의 말을 시험하여 그들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고자 그들에게 막내 아우를 가나안 땅 아버지 집에서 애굽으로 데리고 오라고 말하였습니다(15절).  그런 후 그 열 사람을 다 함께 3일을 가두었습니다(17절).  그 후 사흘 만에 요셉은 그들에게 만일 그들이 정직하면 형제들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나머지 9명은 곡식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서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19절).  그리고 요셉은 그들에게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20절).  그 때 그들은 서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21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하여 요셉의 형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진실하도록 만드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게 된 이유는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자신들의 진실함을 증명해 보이라고 말하고 또 말했을 때 그 형들은 과거 약 22여년 전 자기들의 아우인 요셉이 자기들에게 애걸할 때에 그의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던 사실을 기억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렇게 약 22여년 후 괴로움이 자기들에게 임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약 22여년 동안이나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에 요셉에게 범한죄를 인정하고 자백하지 않고 있다가 이렇게 없어졌다고 말한 자기들의 동생인 애굽 총리 요셉 앞에서 그가 알아듣지 못할 줄 알고(23절) 자백하고 있으니 흥미롭지 않습니까?  분명히 요셉은 그의 형들이(7절) 가나안에서 곡물을 사려고 애굽으로 온 것(1-3, 7절)을 알고 있었을텐데 왜 그는 그들에게 엄한 소리로(7절)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9절; 참고: 12절)고 말한 것일까요?  그리고 왜 그는 정탐꾼들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그 형들에게 진실함을 증명하되(15절) 그 증명할 방법이 가나안 땅에 아버지 야곱과 있는 자신의 친 아우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명하였을까요?(15-16절)  그들의 진실함을 증명할 다른 방법이 없어서였을까요?  왜 요셉은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20절)고 말했을까요?  그 말 후에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듣는 줄도 모르고(23절) 자신들이 베냐민의 형인 요셉에게 행한 일이 죄를 범한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21절) (Truly we are guilty concerning our brother).  이 결과를 볼 때에 요셉의 형들에게 임한 “괴로움”(21절)은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임한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범한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요셉의 형들처럼 괴로움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과거에 범한 죄를 깨닫고 죄를 죄로 인정하며 자백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괴로움을 축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축복으로 여여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러한 괴로움은 은혜로 여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죄를 깨닫고 자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범한 죄를 결코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백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야곱의 형들처럼 우리의 형제에게 죄를 자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물론 요셉의 형들 경우에는 그들의 의도적으로 요셉이 들을 정도록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한 것은 아닌지만 결국에는 요셉은 그들의 말을 들었기에).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사모하십시다.  혹여나 우리 삶 속에 지금 괴로움이 있다면 그 괴로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우리 형제에게 괴롭게 행한 죄를 깨닫고 인정하며 자백하는 기회로 삼으십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움 받기를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1월 14일, 나에게 진실함을 증명하길 원하고 계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