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있는 크리스찬 직장인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2장 9-10절).

 

 

            예수님을 믿는 직장인으로서 회사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요?  특히 직장의 상관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우리 모두의 상전이신 하늘에 계신(엡6:9)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좀더 자세하게 다시 질문한다면, 우리가 직장에서 우리의 상관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주님의 영광을 더 이상 가리우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던 안믿던 모든 직장인들 받는 스트레스 중 상관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고생도 한다고 합니다.  언제가 어느 집사님은 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자기 책상 서랍에 사표를 써놓았다가 자기 상관의 얼굴에 던지고 직장을 때려치고 싶다구요.  오죽 했으면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을 저에게 토했을까요.  또 어떤 자매는 자기 상관이 직장에서 여성 직원들을 성희롱하다시피 하는데 그 상관의 책상에는 성경책이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직장 상관이 오히려 안믿는 상관보다 더 못됬고 더 나쁘고 직원들을 더 괴롭히는 등 전혀 본이 되지 않고 있으니 그러한 상관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디도서 2장 9-10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  한 다섯 가지로 “바른 교훈”(sound doctrine)(1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해야 한다(Slaves should be subject to their masters in everything)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딛2:9).  이 말씀을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 직장인들에게 적용할 수가 있을까요?  지금은 사도 바울 당시처럼 노예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직장에서 상관과 직장인과의 관계가 상전과 종과의 관계도 아닌데 어떻게 이 교훈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하나요?  무조건 모든 일에 상관의 말에 순종해야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주 안에서”(엡6:1)만 상관의 말을 순종해야 하는 것인가요?  만일 나의 상관이 주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말을 할 때에는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특히 나의 상관이 그리도 못됬고 나쁜데 그래도 범사에 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인가요?  왠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다 보면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 직장 상관에게 결코 “범사에 순종”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우리 육의 눈으로 우리 직장 상관을 보고 있다보면 우리는 그에게 순종하지 못합니다.  아니 우리는 순종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범사에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어떻게 우리가 우리 상관에게 범사에 순종할 수가 있습니까?  저는 그 대답을 에베소서 6장 5절에서 찾아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성경은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께 순종하길 원합니다.  순종하되 우리는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길 원합니다.  그와 같이럼 우리는 육체의 상관에게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께는 순종하길 원하지만 우리의 직장 상관에게는 순종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믿는 자매가 자기를 사랑해 주지도 않고 괴롭히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샆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하나님께서 신적 권위를 주시사 가정의 가장으로 세우신 나의 남편, 그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님께 하듯 해야 하는데 많은 아내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남편들도 마찬가지 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데(엡5:25) 우리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있지 않음].  그녀들은 주님께는 복종하겠지만 내 남편에게는 그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습니까?  주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주님께서 순종하려고 노력하면서 남편이나 직장 상관과의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순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둘째로,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Slaves should try to please their masters)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딛2:9).  아니 내 직장 상관이 나를 기쁘게 해줘야 내가 그를 기쁘게 하죠?  아닌가요?  우리의 옛 본능은 항상 조건적입니다.  부부 관계이던 상관의 관계이던 우리의 옛 습관은 항상 조건적이고 항상 이기적이기에 내 남편/아내가 또는 내 상관이 나를 먼저 기쁘게 해줘야 내가 그를 기쁘게 해줄것이다 라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은 옛본능을 극복하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직장인들은 그들의 상관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상관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아첨이나 하고 아부나 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시12:2),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유1:16).  이 두 구절만 봐도 성경은 아첨하는 입술은 두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요 자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살전2:5)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탐심의 탈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 직장 상관에게 아첨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두 마음을 품고 우리 상관에게 아첨해서는 아니됩니다.  그것은 그 순간에 우리 상관을 기쁘게 하는 듯 해 보일찌라도 결고 우리의 상전이신 하늘에 계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께 하듯 우리 상관에게 순종하므로 우리 상관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순종하되 우리는 “눈가림만 하여” 우리 상관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엡6:6)(We should not obey them just to win their favor when their eye is on us).  우리는 우리 상관이 우리를 보고 있던 안 보고 있던지 간에 하늘에 상전이신 주님께서 보고 있으시다 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주님께 하듯 우리 상관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 상관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상관을 기쁘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우리 상관을 섬기되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아야 합니다(엡6:7)(Serve wholeheartedly, as if you were serving the Lord, not men).  우리가 그리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베풀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8절). 

 

셋째로, 종들은 상전들에게 거슬러 말하지 말아야 한다(Slaves should not talk back to their masters)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딛2:9).  어르신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에게 말대꾸하는 것을 보시면서 버릇이 없다고들 말씀하십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시는 어르신들은 그런 젊은이들에게 싸가지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젊은이들이 어르신들에게 버릇없이 말대꾸 하는 것일까요?  왜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주님 안에서 순종하지 않고(엡6:1) 오히려 말대꾸 하는 것일까요?  어르이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아서 아닌가요? (2절)  왜 아내가 남편에게 말대꾸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지 않아서 아닌가요? (엡5:33)  오늘 본문 디도서 2장 9절을 보면 성경은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 거슬러 말하지 말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영어 성경(NIV)에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 말대꾸하지 말며’라고 써 있습니다.  여기서 ‘거슬러 말하다’ 혹은 ‘말대꾸하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ἀντιλεγω”로서 “anti”(안티, 반대하는)라는 말과 “lego”(말하다)라는 합성어 입니다.  즉, 종들은 상전들에게 반대하는 말을 하지 말라(speak against) 또는 반박하지 말라(contradict)는 뜻입니다.  왜 종들이 상전들에게 반박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는 에베소서 6장 5절 상반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Slaves, ... with respect and fear)  즉, 종들이 상전들에게 반박하는 이유는 그들이 상전들을 존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크리스찬 직장인들이 상관들에게 반박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상관들을 존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변명 또는 합리화 시킬 수가 있습니다: ‘내 상관은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못되.  그는 존경받을 많한 행동을 하지 않아.  존경 받을 만해야지 내가 존경하지.’  우리는 이러한 변명(합리화)를 우리 상관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분명히 성경 에베소서 5장 33절 하반절은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명하고 있는데 많은 크리스찬 아내들은 자기 남편을 존경하지 않는 이유를 남편이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내 남편이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는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진정으로 그녀가 주님을 존경한다면 그녀는 주님께 하듯 자신의 남편을 무조건적으로 존경하며 남편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면 내가 내 남편을 존경하겠다고 하는 자매는 “주께 하듯 하라”(22절)는 말씀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존경하고 주님께 복종한다고 말하면서 내 남편을 존경하지 않고 불복종하는 것입니까?  균형 잃은 신앙생활입니다.  수직적은 주님과의 관계와 수평적인 남편과의 관계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부  관계를 하는 많은 크리스천 형제, 자매들이 직장에서도 상관들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한 균형 잃은 원리로 상관들을 존경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반박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우리 상관들에게 반박하고 있다면 그 진정한 이유는 실제로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모두의 상전이신 주님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종들은 상전들에게 훔치지 말하지 말아야 한다(Slaves should not steal from their masters)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딛2:10).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때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햄버거를 훔쳐 먹은 기억이 납니다.  손님들을 햄버거를 만들면서 내 자신 것도 만들어서 몰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갑자기 “삥땅”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그 단어의 의미가 네이버 사전에는 이렇게 적혀있네요: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할 돈의 일부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  내 상관에게 넘겨주어야 할 돈의 일부를 중가운데서 몰래 가로채는 일은 도둑질입니다.  내 돈도 아닌데 내 상관의 돈을 몰래 꿀꺽 삼키는 행동은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입니다.  이러한 도둑질을 우리가 몰래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잠언 9장 17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개혁한글).  물래 남의 돈을 먹는 것이 맛이기 때문입니다.  그 맛을 들이게 되면 그 도적질 습관은 끊기가 힘듭니다.  특히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옛 속담처럼 처음에는 회사 돈을 조금만 몰래 도둑질 하다가 끊지 못하면 그 액수는 점점 커질 것입니다.  탐심의 노예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만일 우리가 탐심의 노예가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것까지도 도적질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 할 것입니다(말3:8).  물론 처음에는 십일조와 헌금을 꾸준히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던 일에서 수입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십일조의 액수도 커질 것이기에 점점 더 십일조의 액수가 이십일조, 삽십일조가 되어가면서 결국에는 하나님께 십입조도 받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라고 말할 것입니다(말3:8).  결국 직장에서 회사 돈이던 상관 돈을 훔치다가 하나님의 것도 훔치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도적질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출20:15, 레19:11, 신5:19). 

 

다섯째로, 종들은 상전들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되야 한다(Slaves should be trustworthy to their masters)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딛2:10).  직장 상관의 입장에서는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있으면 힘이 됩니다.  우리 크리스찬 직장인들이 그러한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되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회사에서 상관의 눈치만 보면서 그만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그가 볼 때에는 열심히 일을 하겠지만 그가 보고 있지 않을 때에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꾀를 부리며 게으름을 피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여 우리 직장 상관에게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우리가 어느 기간까지는 상관의 눈을 속여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때가 되면 우리는 우리 상관에게 농땡이 부리다가 결려서 신뢰를 잃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상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되려면 우리는 “성실한 마음으로"”우리 상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엡6:5).  순종하되 우리는 그리스도꼐 하듯 해야 합니다(5절).  그리고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6절).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상관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해야 합니다(7절).  섬기되 우리는 충성하여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야 합니다(딛2:10).   

 

왜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합니까?  왜 우리 크리스찬 직장인들이 상관들에게 범사에 순종하며, 그들을 기쁘게 하며, 그들에게 거슬려 말하지 말며, 그들에게서 훔치지 말며 또한 그들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되야 합니까?  그 목적(이유)이 무엇입니까?  그 목적을 오늘 본문 디도서 2장 10절 하반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so that in every way they will make the teaching about God our Savior attractive).  무슨 뜻입니까?  우리 구주 하나님의 바른 교훈(sound doctrine)을 매력있게(attractive)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 크리스찬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매력있는 직장인들이 되야 합니다.  매력있는 크리스찬 직장인들은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받아 순종합니다.  그리하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직장 동료들을 위로(encourage)할 것입니다(딛1:9).  그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refute)할 것입니다(9절).  그리고 그들은 “대적하는 자(들)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할 것입니다(2:8).  매력있는 크리스찬 직장인들은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받아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이 받지 않게” 할 것입니다(2:5).   그러한 매력있는 크리스찬 직장인들이 되십시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이 있는 매력있는 크리스찬 직장인들을 세우시는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길 기원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3년 12월 18일, 바른 교훈, 바른 말, 바른 삶을 추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