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행음하여”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져졌나니  …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행음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에스겔 23장 3, 27절).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그 이유는 과거의 죄악된 습관이 참 오래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릴 적 버릇이 늙어서까지 가는 것처럼 예수님 믿기 전부터의 죄악된 나쁜 습관이 평생 신앙 생활에 악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자녀 양육함에 있어서 3살까지 저희 자녀들을 양가 부모님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맡끼지 않고 될 수 있는데로 저희 부부가 친히 아이들을 돌보고 양육하였습니다.  저희 부부가 3살까지 그리한 이유는 한국 속담 말처럼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 때문에 그랬던 것은 아니고 그 때 제가 Focus on the Family라는 기독교 방송을 통하여 아기가 3살까지의 양육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말에 설득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원리를 육신의 가정 자녀 양육에게만 적용하는게 아니라 영의 가정인 교회의 영적 자녀 양육에게도 적용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처음 믿는 형제, 자매의 신앙의 첫발을 내딤에 있어서 잘 양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양육한다는 말은 신앙의 좋은 습관을 심어주고 길러주는게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읽는 습관이나 기도하는 습관 등등 신앙의 기본이요 근본이요 뿌리가 되는 좋은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이르면 이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신앙의 첫걸음을 잘못하게 되면 평생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 23장 3절을 보면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대 행음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두 여인”(2절)으로서 그 두 여인은 “오홀라”(북쪽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사마리아”)와 “오홀리바”(남족 유대를 가리키는 “예루살렘)(4절)입니다.  즉, 오늘 본문 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들”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행음”하였다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살고 있었을 때 하나님 보다 우상들을 사랑하고 섬긴 죄를 가리킵니다.  마치 한 신부가 신랑을 두고 다른 남자를 더 사랑하며 연애할 때 신랑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행음인 것처럼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실 때에는 신부된 교회가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그것은 우상숭배요 또한 행음입니다.  그런데 구약 출애굽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살면서 애굽의 신들을 사랑하며 숭배하는 영적 행음의 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성경 에스겔 23장 3절은 “어렸을 때에 행음”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에 행음”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행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출애굽 당시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음하였는데 그들의 후손들인 에스겔 선지자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 보시기에 행음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행음하여 그가 연애하는 자 곧 그의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습니다(5절).  즉,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 사람들과 연애하고 행음하면서 그들의 모든 우상으로 자신들을 더렵혔습니다(7절).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앗수르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기시므로 앗수르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벌하셨습니다(9절).  그런데 이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서도 남쪽 유대 백성들은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의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의 형보다 더 부패”한 것입니다(11절).  즉, 남쪽 유다 백성들은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앗수르를 의지하였습니다.  결국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이던 남쪽 유다 백성들이든 다 죄악된 한 길로 행하므로 더러워진 것입니다(13절).  그들 모두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로서 하나님만 의지하였어야 하는데 그들 모두다 다른 나라를 더 의지하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자들이 된 것입니다(박윤선).  더러운 자들이 되데 그들은 자신들의 음행을 더하여 “젊었을 때 곧 애굽 땅에서 행음하던 때를 생각하고”(19절) 더욱더 영적 음행의 죄를 계속해서 범하였습니다.  결국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렸을 때”나(3절) “젋었을 때”(19, 21절)나 영적 음행의 죄를 계속해서 범하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스스로 자신들을 더렵혔습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어렸을 때의 죄악된 습성이 늙어서까지 지속된 위험이 참 많습니다.  결국 우리의 오래된 죄악된 습성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역사가 없이는 못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에스겔 23장 27절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게 됩니다: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행음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죄악된 습성을 그치게 하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으로 하여금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실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들에게 들지도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죄악된 삶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3년 9월 3일, 오래된 죄악된 습성을 버리고 신앙의 좋은 습성을 계속해서 기르는데 헌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