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이러한 지도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시드기야 왕이 이르되 보라 그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 하는지라  …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결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하건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기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예레미야 38장 5, 15, 19절).

 

 

            주님께서 저를 지도자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저를 육신의 가정과 영의 가정인 승리장로교회에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도자로 세움 받은 자로서 너무나 많은 때에 좌절감을 많이 맛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저는 어떻게 가정 식구들과 교회 식구들을 지도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저는 제 자신으로 인하여 좌절감을 맛봅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제 자신에게 멈춰있는 제 시선을 주님께 향하게 하십니다.  진실하시고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 나 같이 미련하고 연약한 자를 지도자로 세우셨기에 그 신실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실 때 제 영혼은 소성케 되고 힘을 얻어 다시금 오뚜기처럼 일어나 지도자로서의 맡은 책임을 다시금 감당케 하고 계십니다.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교회의 담임 목사로서 과연 저는 어떠한 지도자가 되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수 없이 던지면서 오늘까지 오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오늘 새벽기도회 때 묵상케 하신 예레미야 38장 5, 15, 19절 말씀 중심으로 한 세 가지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 세 가지 교훈을 다시금 생각해 볼 때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이러한 지도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이 제목 중심으로 저는 한 세 가지로 이러한 지도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길 하나님께 기원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저는 식구들을 거스르지 못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38장 5절을 보십시오: “시드기야 왕이 이르되 보라 그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 하는지라.”  유다 왕 시드기야는 그에게 나아와 평안을 구하지 않고 재난을 구한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소서”라고 “그 고관들”(4절)인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1절)이 말하였을 때 그들을 거스르지 못했습니다(5절).  그래서 그는 그 고관들에게 “그(예레미야)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5절)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고관들은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밀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6절).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물도 없고 진창뿐인 그 구덩이 속에 빠졌습니다(6절).  그리고 그는 거기서 굶어 죽을 위기를 맞이했습니다(9절). 

 

            저는 유다 왕 시드기야를 생각할 때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떻게 고관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할 때 그들을 거스르지 못했는지 그 사실을 생각할 때 양심에 찔림과 도전을 받습니다.  양심에 찔림이란 제 자신이 한 가정과 한 교회에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자 하는 가족 식구들이나 교회 식구들의 말을 들었을 때 제 자신이 그들을 거스르지 못했을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닌 것은 아닌 것인데 그들에게 ‘안됩니다, 그리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그들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기 때문에 양심에 찔림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큰 죄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섬기는 가족 및 교회 식구들을 잘못 지도하여 결국 하나님께 범죄하는 하는 일을 막지 못했기에 양심에 찔림이 있습니다.  또한 저는 시드기야 왕이 그 고관들을 거스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받는 도전은 지도자로서 좇는 자들을 거스려야 할 때 거스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닌 것은 아닙니다.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물에 술탄듯, 술에 물탄듯 우유부단하여서 좇는 자들을 잘 못된 길로 가는 것을 거스르지 못한다면 이것은 지도자라기 보다 끌려가는 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도자로서 식구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지 잘못된 길로 이끌려 가서는 아니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낌니다.

 

            둘째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38장 15절을 보십시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결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물도 없고 진창뿐인 구덩이 속에 빠져 굶어 죽을 위기를 맞이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를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을 통하여 그 구덩이에서 건져내셨습니다(7-13절).  건짐을 받은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물러 있을 때(13절) 유다 왕 시드기야는 사람을 보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불러 그에게 “한 가지 일을 물으리니 한 마디도 내게 숨기지 말라”(14절)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 왕에게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결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15절)고 말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시드기야 왕에게 조언(counsel)을 해도 그가 듣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15절). 

 

            저는 이러한 시드기야 왕의 모습을 생각할 때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교훈은 지도자에는 듣는 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정과 한 교회의 지도자로서 저는 가족 식구들의 말을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저는 지도자로서 듣는 귀가 있데 저를 좇는 자들의 말에 귀를 열어 들을 필요가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같은 죄인을 지도자로 삼으시고 세우신 주님의 음성을 귀담아 들어야 함을 다시금 기억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귀를 열어 좇는 자들의 말도 듣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 두 음성이 충돌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대답을 다 압니다.  우리는 그러한 때에 우리를 좇는 사람들의 음성보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음성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릴 때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원인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은 거스르면서도 사람들의 뜻은 거스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어이 없는 일입니까?  주님의 종이 주님의 말씀에는 거스르면서 사람들의 말은 거스르지 못한다는게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한 가정과 한 교회의 지도자로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가족 식구들을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올바로 지도해야 할 사람이 좇는 자들을 말을 더 듣고 그들이 원하는데로 끌려다니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일을 올바로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지도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이끌림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지도하며 이끌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사모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영의 귀를 항상 열어주시사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듣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지도자가 되므로 사랑하는 식구들도 말씀대로 잘 이끄는 지도자로 세움 받기를 기원합니다.

 

            셋째로, 저는 미리 염려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38장 19절을 보십시오: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하건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기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드기야에게 조언한 것은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17절).  만일 유다 왕 시드기야가 이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항복을 하면 그와 그의 가족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17절).  그러나 만일 그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시드기야 왕은 재난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거하는 성이 갈대아인들(바벨론 사람들) 손에 넘어갈 것이며 그 성은 불사름 당하고 시드기야 왕과 그의 가족은 갈대아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18절).  이러한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을 때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에게 자기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 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19절).  그리고 그는 갈대아인들이 자기를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대인들에게 넘기면 그들이 자기를 조롱할까봐 염려했습니다(19절).  즉, 시드기야 왕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염려하며 자기를 좇는 자기 백성 유다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이 한 나라의 왕인 지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시드기야 왕처럼 미리 염려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일로 미리 염려하며 걱정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좇는 식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좇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그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거스르지 못하고 이끌려 가는 말만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좇는 자들을 사랑한다면 저는 그들을 거스르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사람을 두려워하기 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므로 좇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많은 말과 많은 행동들보다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묵묵히 주신 사명을 감당해 나아가는 삶으로 좇는 자들에게 본이 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3년 8월 21일,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좇는 자들을 거슬러야 할 때에 거스를 수 있는 자로 세움 받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