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고 계시는 것일까요?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예레미야 8장 6절).

 

 

            어제 새벽기도회 때 예레미야 6장 10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후 다시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라는 제목을 걸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그 말씀 묵상의 적용 요점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쾌하게(offensive)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묵상한 후 나중에 Facebook을 열어 보았는데 흥미로운 동영상이 있어 보았습니다.  그 동영상에는 한국과 미국에 유명한 신부님 한 분과 목사님 세 분의 인터뷰와 강의 또는 설교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그 네 분중 세 분에 대하셔 그 동영상을 제작한 사람은 “거짓 선지자”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한 이유는 제가 보기에 그 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타협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온 John MacArthur 목사님은 CNN Larry King 인터뷰에서 전혀 타협을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전파한 복음 메시지를 듣고 어느 한 여자가 Larry King하고 인터뷰하는데 그녀는 MacArthur 목사님의 말을 듣고 offend를 당했는지 그의 말이 “offensive”이다라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녀느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매우 불쾌했었나 봅니다.  저는 그녀의 그 말을 듣고 이런 글을 써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불쾌합니다.  그 이유는 그 복음이 그들의 죄를 들춰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넘치는 기쁨입니다.  그 이유는 들춰진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사도행전을 보면 “마음에 찔려”라는 말씀이 두 번 나옵니다.  첫번째는 사도 베드로가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을 때 삼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결국 그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행2:37-38).  두번째는 스데반 집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그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고(7:54)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57절) 결국에는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59절).  이렇게 두 그룹의 무리들이 베드로와 스데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두 그룹의 사람들 모두 다 마음에 찔림이 있었지만 한 그룹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다른 한 그룹은 이를 갈고 설교한 스데반 집사를 돌려쳐 죽였습니다.  과연 우리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에 찔림이 있는지, 있으면 우리는 그 찔림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많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찔림이 있는 것 자체를 싫어서 우리의 귀를 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지금 많은 우리들은 우리의 간지러운 귀를 긁어주는(딤후4:3) 설교 듣기를 더 사모하고 좋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로의 설교, 치유의 설교 그리고 축복 설교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지적하고 들춰내며 회개하라는 설교는 듣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렘8:6).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고 계시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예레미야 8장 6절을 다시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경책의 말씀을 욕으로(offensive, 불쾌하여)여겨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그리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직을 말하며 자신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소리를 듣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6절).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를 기울이신 이유는 그들의 회개 기도 소리를 듣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4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 기도 소리를 듣고자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6절).  그들은 악을 뉘우치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6절).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6절) 각각 죄악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뉘우치는 회개의 기도를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은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에게 지혜가 있다고 믿었습니다(8절).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믿었습니다(8절).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스빈다(5:13).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들에게는 아무 지혜가 없었습니다(8:9).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착각 속에 있었기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회개치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믿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말씀 듣기를 거절한 것입니다(6:19; 11:10, 13:10).  이와 같이럼 우리 마음에 교만이 있으면 우리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거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떠나 삽니다(5절).  우리는 “거짓을 고집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절”합니다(5절).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13:15).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나 같은 죄인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3년 8월 10일,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않고 항상 겸손히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살아가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