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개런티(guarantee)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이사야 14장 24절).

 

 

            몇 달 전 저는 노트북 컴퓨터를 아주 싸게 판매한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판매점에 가서 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컴퓨터를 사면서 좀 고민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고민이란 판매원이 저에게 새로사는 컴퓨터에 warranty(보증서)를 들겠냐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대학교 때 컴퓨터를 전공해서 그쪽 분야에 일을 하고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동생의 조언대로 돈을 좀 더 내고 1년 warranty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 때 제가 warranty를 들까 말라 머뭇거리게 만든 이유 중 하나는 저에게 warranty에 대한 안좋은 경험이 하나 좀 큰게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경험이란 새로산 자동차가 6만 마일(mile)인가 warranty가 있는데 약 6만 5천 마일 정도가 되어서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그냥 차가 서버린 것입니다.  그 때 얼마나 남감했는지 Highway patrol 차도 오서 견인차도 오고 등등 그 때 transmission이 완전이 망가져서 쓰던 것으로 다 갈고 비용도 많이 나왔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겐 물건을 살 때 warranty를 들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아직도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warranty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어제 저녁에 아내와 전화 통화 하면서 “guarantee”(개런티)에 대해서 잠깐 대화를 했었기 때문입니다.  이guarantee란 단어는 warranty란 단어처럼 “(제품의) 품질 보증서”란 의미가 있지만 warranty란 단어와 달리 guarantee란 단어에는 “보장(하는 것)” 또는 “굳은 약속”(네이버 사전)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아내하고 대화할 때 의미했던 guarantee는 바로 “보장(하는 것)” 또는 “굳은 약속”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우리가 하는 일에 보장이 있는가 없는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지금 우리가 직장에서 하는 일에 우리보다 더 높은 상관(예를 들어 직장 보스)이 우리에게 ‘내가 당신의 앞길을 보장하겠다’고 굳은 약속을 해 주면 우리는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관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럼,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이러한 보장 또는 굳은 약속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제 아내도 그런 관점에서 저에게 “guarantee”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나 저는 그리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내에게 우리가 하는 일이나 우리 자신에게는 guarantee 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내에게 우리의 guarantee는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에 근거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저는 아내에게 언약의 하나님을 말하면서 언약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했습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guarantee가 되시기에 우리는 그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함을 아내에게 나눴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밤에 잠들기 전에 오늘 새벽기도회 때 읽을 이사야 11장에서 15장 말씀을 읽다가 오늘 본문 이사야 14장 24절 말씀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14장 24절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신가 하면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맹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로 우리 사람들이 맹세할 때 ‘내가 하늘에 두고 맹세하는데 …’라는 식으로 말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리 하는 이유는 우리는 피조물로서 하늘에 있는 신은 우리보다 더 강하고 더 높고 더 크시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보다 더 강하고 더 높고 더 큰 신이 없기에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맹세하신 것입니다.  그 맹세 내용은 간략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생각하시고 경영하신 것을 “반드시”(2번) 이루시겠다는 확고한 약속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하신 것(planned)과 자신이 목표하신 것(purposed)을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맹세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맹세하신 계획과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그 목표는 이스라엘의 구원이요 그 계획은 바로 앗수르를 심판하시므로 이스라엘를 구원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25절).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그들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생각을 경영하심에 있어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영일진데(26절) 어느 누가 능히 하나님의 경영을 폐하며 돌이킬 수가 있겠습니까(27절).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신다고 약속하셨고 또한 그 약속대로 하나님은 앗수르를 심판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에게 모든 진노를 다(충분히) 쏟아 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는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장차 예수님을 다시금 이 세상에 보내시사(예수님의 재림)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바로 이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개런티가 되십니다.  우리 인생의 개런티의 근거는 불성실한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민수기 23장 19절 말씀과 디모데후서 2장 13절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우리는 미쁨이 없을찌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2:13).  저에게 성경을 통하여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비록 저에게는 미쁨이 없을찌라도(faithless) 하나님은 미쁘시기에(faithful) 자기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으신 미쁘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저 개인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 요한복음 6장 1-15절(오병이어)의 말씀과 제가 섬기는 승리장로교회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 18절의 말씀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주신 그 약속을 아미 이루셨고 지금도 이루고 계시며 앞으로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때에 제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의심하는 이유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 불성실한 제 자신과 상황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제 자신의 삶 속에서 제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목표한데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과연 이루어질까 라는 의문이 들 때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제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목표한데로 될 때보다 안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생각과 계획과 목표되로 안되었을 때에 그것조차도 원대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생각과 계획과 목표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믿어야 하는데 하나님 보다 제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을 의심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분명히 성경 잠언 3장 5절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저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제 자신의 명철을 자꾸만 의지하려는 경향이 제 안에 있음을 봅니다.  그러한 경향 속에서 저는 제 생각과 계획가 목표한데로 일들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때에 답답해 하고 힘들어 하며 심지어 분노하며 그 상황으로 말미암아 낙심하기까지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제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은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함에 있음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할 때 퍼즐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저희 집 아이들하고 300개 퍼즐은 다 마춰본 적이 있지만 500개 퍼즐은 하다가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퍼즐 박스 커버에 보이는 그림을 보면서 500개를 하나씩 맞추려고 몇칠을 시도해 보다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껴서 중단에 포기를 했습니다.  이미 퍼즐 박스 커버에 완성된 그림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 500개 부분들이 다 맞춰져야 하는데 우리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답답해 했고(적어도 저는) 힘들어 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청사진을 다 그려 놓으시고 계획하시고 목표하시바 그 청사진대로 지금 우리 인생을 빚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꾸만 인생의 조그만 퍼즐 한 부분들이 잘 안맞는다고 하여 답답해 하고 힘들어 하며 낙심하고 심지어 (하나님께도) 분노까지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목표한데로 안되는 것이 인생의 대부분 일진데 그런 부분들 조차 하나님의 원대한 뜻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우리의 삶 속와 우리 인생을 통하여 이루어 짐을 잠잠히 목격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참고: 창24:21).

 

그래서 저는 어제 저녁 아내하고 대화하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자고 권면했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하는 일에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아무 개런티가 없다할찌라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개런티가 되시닌까 그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 자세로 열심히 배우고 준비하자고 권면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준비케 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내 인생의 개런티가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3년 7월 24일, 교회와 가정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온전히 이루어 질 줄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