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까?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고린도전서 1225).

 

 

과연 우리 교회는 본받을 만한 거울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교회는 본 받아서는 아니 되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까?

 

지금 교회는 본 받아서는 아니 되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하면 우리는 교회 안에 분쟁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교회 안에 분쟁이 있는 것입니까? 그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선줄로 생각하는 자”들 때문입니다(고전10:12). 즉, 교회가 분쟁이 있는 원인은 교만한 자들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교만한 자들은 교회의 통일성(?)을 추구한다는 명분아래 교회의 다양성을 부인하므로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가 주님의 한 몸임은 인정하는 듯 해보이지만 주님의 한 몸 안에 많은(여러) 지체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12:12).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를 가진 다양한 지체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다른 지체들과 차별화하여 스스로 교회 안에서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는 다툼과 당파 짓기와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므로 본 받아서는 아니 되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본받을 만한 거울이 돼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교회는 다양성속에서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는 교회가 돼야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에는 많은(여러) 지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다양한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다양한(여러) 지체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13장) 서로 돌아보아(12:25)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성경 고린도전서 1221-24 말씀 중심으로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다양성 속에서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221-22을 보십시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지금 사도 바울은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지체들이 서로에게 ‘당신은 쓸데없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가끔 교회 나이 많으신 권사님 한 분이 ‘저는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습니다’라고 몇 번이고 저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닙니다, 권사님. 권사님은 우리 교회 꼭 필요하신 분이십니다. 권사님은 기도의 어머니로서 담임 목사인 저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부탁드리곤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몸 안에 필요 없는 지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손도 필요하고 머리도 필요하며 발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몸 안에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도 다 필요합니다. 결코 약하다고 해서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믿음이 약하던 육신이 약하던 다 필요한 지체들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나는 쓸데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던지 ‘당신은 교회 안에서 쓸데없는 자다’라고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다양성 속에서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는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22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두셨습니다(18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셨습니다(24절). 그렇게 하신 목적은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25절). 그러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인 우리는 서로 다투고 싸우며 분쟁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 돌봐야 합니다. 서로 돌보되 우리는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우리 모두가 함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26절). 또한 우리는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우리 모두가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26절). 우리는 교회 안에 덜 귀하게 여김을 받는 지체들이나 부족한 지체들을 귀중하게 여기고 또한 그들을 돌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중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다양성 속에서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는 서로에게서 아름다움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 고린도전서1223절 하반절에서 2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아름답게 보이는 지체들 혹은 내보일 수 있는 지체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좀 내놓을 만한 것이 없는 지체들은 좀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 몸에 좀 아름답게 보이는 지체는 우리가 좀 자부심을 갖지만 좀 못 생긴 지체는 좀 부끄럽게 여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를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게 하셨습니다(23절). 그렇게 하신 목적은 교회 안에 분쟁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25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지체들이 아름답던 아름답지 못하던 서로 돌아보게 하시기 위해서 아름답지 못한 지체를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게 하셨습니다(25절).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분쟁하지 않고 서로 돌아보기 위해서는 서로에게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서로에게서 작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서로에게서 볼 때에 우리는 다양성 속에서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추악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본받을 만한 거울이 돼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교회는 다양성 속에서 교회의 통일성(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가는 교회가 돼야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서로 귀하게 여기며 또한 서로에게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이 세상의 빛을 발하는 본이 되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