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연합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편 133).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향해 ‘교회의 빛’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4).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인들이라면 교회 생활에만 집중하고 세상 속에서의 삶을 방치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도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 기사를 쓰신 안희환이란 참사랑교회 목사님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나름대로 많은 선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중에 몇 가지를 말하였습니다. 그 예로 헌혈입니다. 한국종교사회윤리연구소가 1998∼2001년까지 종교별 헌혈 현황을 비교하였는데 개신교계 헌혈이 81.79%에 달했다고 합니다. 가톨릭 원불교 불교의 경우 각각 10.54%, 0.55%, 0.86%에 그쳤음을 볼 때 개신교의 헌혈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다고 합니다. 둘째로 장기 기증 혹은 골수 기증이라고 합니다. 골수 기증의 경우 2000∼2002년 6월의 기록을 살펴보면 역시 개신교의 비율이 38%로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합니다. 셋째로, 사회복지시설 운영, 넷째로, 노숙자 지원 단체 운영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속에서 교회에 대한 평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고 오히려 적대적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세상 속에서 나름대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그 부분이 상당히 광범위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대한 칭찬의 소리보다는 비난의 소리가 더 많습니다. 그 이유를 안희환 목사님은 한 여섯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한 2 가지만 나눈다면 타락한 성직자들의 추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많이 알려진 큰 교회의 목회자들이 공금 횡령이나 간음죄를 범할 경우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교회의 분열상입니다(인터넷). 이러한 교회의 추한 모습들을 세상에 들어내므로 말미암아 이젠 안티 기독교인들의 활동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직적으로 단체를 결정하고 각 사이트별로 침입하여 개신교 흠집 내기에 열중하고 있는 안티 기독교인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반기독교 시민연합이라는 단체는 회비를 걷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기독교 박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기독교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가운데 교회가 더욱더 교회다워져야 합니다. 세상은 더욱더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더욱더 추해질 것입니다. 그리하면 할수록 우리 교회는 더욱더 이 어두운 세상을 빛을 발해야 하며 또한 교회는 더욱더 교회의 아름다움을 추한 세상에 들어내야 합니다.

 

과연 진정한 교회의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교회의 아름다움은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가 연합하여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1331절을 보십시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성경 이사야 532을 보면 성경은 메시아(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신 예수님, 고운 모양도 없으시고 풍채도 없으신 예수님,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관심도 갖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교회의 현 주소라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보기에 교회는 아무 끌릴 만한 아름다움(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크리스천들이 우리 교회 자신을 바라볼 때 과연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은 있습니까? 저는 ‘아니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를 바라볼 때에도 교회는 매력을 잃었습니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왜 교회는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나 우리가 보기에 매력을 느낄만한 아름다움이 없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에게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우리가 보기에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십니다. 왜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님은 아름답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빌2:8).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 보시기에 순종하시는 아들 예수님의 모습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교회의 아름다움이요 예수님의 제자들인 저와 여러분의 아름다움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이 주님의 계명에 순종함에 있다면 교회의 선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그 대답을 로마서 828에베소서 210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성경 로마서 8장 28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이”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의 선함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시편 348 말씀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계속 맛보아야 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충만히 맛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경 에베소서 210 말씀처럼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들로서 선행을 행함으로 교회의 선함을 이 세상에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516을 보십시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good works)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성경 시편 133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성전에 올라가는 이 노래를 지으면서 주님 안에서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함이 참으로 선하고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혈통적인 형제들의 혈연에 의하여 뭉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박윤선).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연합을 의미합니다. 곧, 이것은 주님의 교회의 연합을 가리킵니다. 주님의 교회가 주님의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여 화목하며 교회의 연합(통일성)을 지켜 나아갈 때 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겠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교회의 연합된 모습을 보면 이렇게 교회를 욕하고 비판하며 손가락질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교회에 매력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므로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갈 때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연합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들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성경 에베소서 110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으로 그의 선택된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통일”)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엡4:3).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져 가야합니다(16절).

 

성경 시편 1332-3절 상반절에서 시편 기자 다윗은 교회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합하여 동거함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2 가지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1) 다윗은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

 

이 말씀은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은 “향기롭고 윤택미 있고 번지는 성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기름을 아론의 머리에 부었을 때, ‘수염에 흘러서 옷깃까지 내림’같이, 형제 사랑은 하나님이 부어 주셔서 퍼지는 사랑”입니다(박윤선). 성경 로마서 55을 보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은 받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실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퍼지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퍼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는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이 세상에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2)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연합하여 동거함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

 

죤 맥아더 목사님에 의하면 헐몬 산은 9,200 feet로 팔레스틴 북부에 있는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그 꼭대기에 있는 눈이 증발하여 올라갔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유다에 이슬을 준다고 합니다(박윤선). 그래서 유다에 있어서 이슬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곡초가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연합하여 동거함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한 이유는 마치 이슬이 높은 곳이 헐몬산에서 내려 퍼지는 것처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은 위에서 부터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부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3절하).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에 “영생”의 복이 있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는 뜻입니다(박윤선).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때 교회는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주님의 교회의 선함과 아름다움은 형제, 자매가 연합하여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 그 사랑이 형제, 자매에게 퍼지므로 말미암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성(통일성)을 지켜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아름다움을 이 세상에 비취는 우리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