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건설치 아니하시는 교회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대로 갚으시며 저희 손의 지은대로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보응하소서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요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시편 28).

 

 

과연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약속하신 대로 세우고 계심을 여러분은 확신하고 계십니까?(마16:18)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 18절인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란 말씀을 믿고 확신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 약속의 말씀대로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우고 계심을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의 눈으로 보고 계십니까? 성경 시편 285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주님이 건설치 아니하시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를 한 3가지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요즘 많은 책들이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 출판되면서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 성장학에 관심이 많은 때에 어떻게 하면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지 않는지 대조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세우시는 우리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지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한 3 가지로 교훈을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주님이 건설치 아니하시는 교회는 주님을 반석으로 삼지 않는 교회입니다.

 

성경 시편 281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반석으로 삼지 않는 교회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주님을 반석으로 삼았기에 극악한 원수들로 말미암아 극도의 비참한데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박윤선).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드렸다는 사실은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을 의지하였음을 말해줍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 다윗은 그가 처한 극악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린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8,9절)이 없으면 자기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였기 때문입니다 (1절). 다윗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 받지 못함을 사망과 같이 여긴 것입니다. 즉, 다윗은 기도 응답을 생명과 같이 보고 있었습니다(박윤선).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은 주님을 반석으로 삼는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서 기도를 생명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주님을 “나의 반석”으로 삼고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시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2절). 다윗은 주님의 성소를 향하여 간구하는 가운데 기도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하였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주님이 세우시지 않는 교회는 기도도 하지 않고 그러기에 기도 응답 또한 없을 것이기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세우시지 않는 교회는 기도도 없고 찬양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과 그의 약속의 말씀을 반석으로 삼고 주님께 부르짖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계속 주님을 의지하여 그에게 간구하므로 주님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이 건설치 아니하시는 교회는 말과 마음이 일치되지 않는 교회입니다.

 

성경 시편 283을 보십시오: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마옵소서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악인과 행악하는 자”는, “보통 악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써도 용납하실 수 없는 극악 자들을 말”합니다(박윤선). 이러한 극악 자들로 말미암아 수난을 당하고 있었던 다윗은 그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다윗은 “자기의 종말이 악인들의 종말과 같아지지 않기를 간구하였습니다(3-5절)(박윤선). 이 악인들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는 것입니다(3절). 한 마디로 말하면, 악인과 행악하는 자들은 위선자들입니다. 말로는 화평을 부르짖지만 마음에는 악독이 있는 악인과 행악하는 자들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므로 하나님께서 이 악인들의 행위와 악한 대로 갚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즉,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악인과 행악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길 다윗은 간구하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 대로 갚으시며 저희 손의 지은 대로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보응하소서.” 이 악인들, 즉 위선자들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 하시리로다.” 위선자들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않기에 하나님의 일을 행하지도 않고 또한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마음에 일치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다윗처럼 주위에 위선자들로 가득하여 말로는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면서 마음에는 악독을 품는 이러한 죄를 범해서는 아니 됩니다(3절).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은 “나의 힘과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 우리의 마음이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면 악인과 행악하는 자들처럼 마음에 악독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은 거짓말로 “화평”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6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처럼 크게 기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7절). 우리 교회는 언행이 일치 돼야 하며 또한 마음 또한 사랑으로 계속 채워져야 합니다. 결코 마음은 악독이 가득하면서 말로는 ‘평화로다, 사랑합니다’라고 하면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마음에 성령의 열매 사랑이 더욱더 맺어져서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하는 교회가 돼야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주님이 건설치 아니하시는 교회는 주님을 목자로 삼지 않는 교회입니다.

 

성경 시편 289을 보십시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다윗은 악인과 행악하는 자들의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 하나님께 마음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는 기도응답의 확신이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 믿은 것입니다. 이 확신 속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9절). 이 기도 내용 중에 하나는 “저희의 목자가 되사영원토록 드십소서”였습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가 되어주시사 마치 목자가 양을 앉아 들고 날라주시는 것처럼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들어 날라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악인과 행악하는 자들은 주님을 목자로 삼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생각지도 아니하기에 목자의 인도하심이나 보호하심 등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을 목자로 삼지 않는 성도는 주님께 세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목자로 삼지 않는 교회는 주님께서 건절치(세우시지) 않으십니다. 마치 집을 지려고 하면서 건축자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처럼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모퉁이돌이 되시는 주님을 목자로 삼지 않고 교회를 세우려고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목자 되심을 거부하는 악인들과 행악 자들은 그의 인도하심 또한 거부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을 목자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지도자 일꾼 세우는 일에 힘을 써야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시편 231 말씀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면서 그 고백대로 또한 신앙생활 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과연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세우고 계시는지 의심 가운데 흔들리는 제 마음을 보면서 주님을 다윗처럼 “나의 반석”으로 삼지 않고 있는 제 자신을 봅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믿음으로 간구하기보다 의심하는 가운데 기도응답의 확신조차 없어 마음의 찬양조차도 없을 때가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더 나아가서 언행일치 하지 않으며 말과 달리 마음은 온갖 죄악 된 생각 속에서 생각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면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모습을 봅니다. 또한 주님을 목자로 삼는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음성조차도 분간을 못하고 들어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지 못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딤후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미쁘시사 우리 교회에게 약속하신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대로 신실하게 세우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하면 우리 교회 지도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확신이 드는 것은 사탄은 교회의 지도부를 공격하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하나님은 지도부를 더욱더 견고히 세우고 계셨음을 봅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영의 눈으로 보게 하시사 확신 가운데 거하게 하시는 주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주님과 그의 (약속의) 말씀을 반석으로 삼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로 하여금 목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앉고 나르시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을 반석으로 삼고 의지하여 간구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그를 찬송케 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반석으로 삼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마음과 말과 일치하는 교회가 돼야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주님을 목자로 삼는 교회가 돼야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교회는 주님께서 지속적으로 건설하시는(세우시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