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분쟁 원인 (2)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전서 33).

 

 

교회의 분쟁이 있는 것은 우리가 “육신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고전3:3).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고전3:1) 우리 가운데 시가와 분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지 못하고 젖을 먹는 자들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분쟁이 있는 것입니다(2절).

 

육신에 속한 자들은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지 않습니다(2:13). 육신의 속한 자들은 성령님의 일을 받지 아니합니다(14절). 그 이유는 성령님의 일이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14절). 또한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님을 일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14절).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교회 가운데 행하시는 일들에 동참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성령님의 일들 중에 하나는 바로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는 것입니다(엡4:3). 분명히 바울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육신에 속한 자들은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성령님을 따라 행하지 않고 사람을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고전3:3). 사람을 따라 행하는 육신에 속한 자들은 마치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나는 바울에게라”, “나는 아볼로에게라”고 말합니다(1:12).

 

이러한 현상은 요즘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육신에 속한 자들은 ‘나는 모 담임 목사님에게,’ ‘나는 모 부목사님에게’라고 말합니다. 담임 목사님이나 부 목사님은 바울이나 아볼로처럼 그저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사역자들”일 뿐인데도 말입니다(3:5). 더 큰 문제는 평신도가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그저 바울과 아볼로처럼 주님께서 각각 주신대로 맡겨 주신 양떼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 사역자들뿐일진대 이 사실을 종종 망각하여 양떼들을 갈라놓는 교회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교회 사역자들은 바울과 아볼로처럼 심고 물을 주는 자들일 뿐인데(6절), 즉 “아무것도 아”닌”데(nothing)(7절) 뭔가가 된 것(something)처럼 착각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분열시키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심고 물을 주는 것뿐입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7절).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뭔가가 된 줄 착각하며 아니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everything)이 되십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망각하므로 말미암아 교회의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결국 육신에 속한 평신도보다 육신에 속한 우리 교회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교회의 분쟁과 분열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분쟁을 막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신령한 자들”이 돼야합니다(1절).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사람들이 되어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합니다(13:11). 우리는 더 이상 젖을 먹는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3:2). 우리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신령한 사람들이 돼야합니다(2절).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고 통달하시는 성령님(2:10)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십니다(12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은혜들을 분별해야 합니다(13, 14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들로서(16절) 주님이 그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듯이 우리도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해야 합니다(찬송가246장, 1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의 교회를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비록 겸손히 주님을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을 수 있으나 구세주 되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잘 감당해야 합니다(찬송가 347장, 1절). 승리!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 하기까지 늘 봉사”하길 원합니다(찬송가 246장,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