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교회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사도행전 931).

 

 

“교회성장연구소”에 나와 있는 “교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글입니다: ‘가장 위대한 교회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변화의 주도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0 가지를 제안합니다:

 

(1) 변화를 위한 지도력을 확보하십시오. 사람들은 지도자를 바라보고 있으며 변화는 그 지도자와 함께 시작된다. 개혁을 위한 리더십 팀을 만드십시오.

 

(2) 건강한 교회의 표적을 구하십시오. 변화의 목적은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변화된 교회는 진단, 처방, 노력, 능력의 합산의 결과입니다. 건강진단과 처방은 필수입니다. 건강한 교회의 표적은 믿음, 리더십, 탁월성, 헌신, 창조성, 순종 등입니다.

 

(3) 창조적 위기의식을 가지십시오. 가장 큰 위기는 위기감이 없는 것입니다. 건전한 위기감(sense of urgency)은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입니다. 개혁은 즐거운 대화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절박한 행동으로 가능합니다.

 

(4)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십시오. 앞을 보지 않고 백미러만 보는 자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과거형 목회도 현재형 목회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미래형 목회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형식보다는 의미를, 보존보다는 창조를 추구하십시오.

 

(5) 예산과 재정을 재평가하십시오. 앞으로는 경제문제가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영성관리도 허물어 질 수 있습니다. 예산과 재정 상태를 보면 그 교회의 성장 가능성을 알 수 있습니다.

 

(6) 비전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과 비전입니다. 비전을 가진 자는 행동, 관계, 능력, 영성 면에서 구별됩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서는 안 됩니다.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비전은 소유보다 전달과 성취가 더 중요합니다. 비전은 부분이 아닌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7) 성도들을 힘 있게 하십시오. 성도를 강하게 하는 것이 성장의 지름길입니다. 성도를 돕는 한 명의 목회자보다는 목사를 돕는 다수의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십시오. 평신도를 구비시키는 일이야말로 목회자의 최대 사명입니다.

 

(8) 작은 성공을 축하하십시오. 성공은 성공을 낳습니다. 작은 성공을 축하할 줄 알아야 큰 성공이 계획될 수 있습니다. 적절한 보상과 인정이 존재하는 조직이 건강한 조직입니다.

 

(9) 변화의 재생산을 추구하십시오. 변화에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한 조직의 성공은 다른 조직의 성공으로 확대 재생산됩니다. 건강한 교회는 소유모델이 아니라 분배모델로서 존재합니다.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고 동기부여만 확실하게 해주어도 이미 절반 이상 성공한 셈입니다.

 

(10) 변화의 문화를 정착시키십시오. 변화는 단 두 사건이 아니라 매일 계속되는 생활양식입니다. 변화가 교회의 문화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문화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인터넷).

 

성경 사도행전 931말씀 중심으로 성장하는 교회는 어떠한지 한 4 가지로 묵상하면서 우리 교회에 적용하기를 기원합니다.

 

첫째로, 성장하는 교회에는 평안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931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초대 교회에 평안함이 있었던 환경은 박해와 어려움이 없는 평안이 아니라 이러한 것들 가운데 있는 내적인 평안함이었습니다(유상섭). 이러한 내적인 평안함은 평안함이 없는 세상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입니다. 요한복음 2019, 21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첫날 저녁에 두려워하여 모여 있는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Peace be with you!)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사도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평강은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고 이 세상이 줄 수도 없는 평강입니다. 교회에는 이러한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들은 어떠한가? 과연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평강)이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알고 있고 교회들은 어떠합니까? 이런 저런 문제로 교회의 평안함이 깨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 사도행전 9장 31절을 보면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들이 다 평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교회가 아니라 유대, 갈릴리, 사미라아 이 세 지역이 모든 교회들이 주님의 평안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에겐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흥미로운 것은 사도행전 8-9장에서 스데반의 순교로 인한 핍박으로 인해 각 지역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통하여 교회는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복음이 흩어진 성도들을 통하여 여기 저기 전파되어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결국은 흩어진 예수님의 제자들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복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평안함도 널리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합니까? 핍박으로 성도들이 흩어지기보다 교회 안에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흩어지심을 경험하고 있으며 흩어진 성도들이 여기 저기 교회에 가서 평안함을 전하기보다 또 다른 교회에 가서 평안함을 깨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화평케 하는 자들(Peace-makers)도 있겠지만 화평을 깨는 자(Peace-breakers)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들로서 화평케 하는 자들이 돼야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59을 보십시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그리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하여금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우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빌4:6-7). 피스메이커 사역의 설립자이며 대표인 켄 산데 목사님이 1982년부터 성서적인 원리를 사용하여 교회 분열과 사업, 고용, 가정상의 논쟁을 포함한 수백 개의 갈등사례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피스메이커-개인적인 갈등해결의 성서적 지침서(The Peacemaker: A Biblical Guide to Resolving Personal Conflict)를 비롯하여 갈등 해결에 관한 많은 저서가 있습니다. “피스메이커가 되기 위해 기독인들은 먼저성경을 통해 갈등 해결의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 … 피스메이커의 완벽한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해야 한다. 또 그런 원리들을 우리 삶에 실천하기 위해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 갈등을 성경적인 관점으로 보는 법을 배운다면 갈등에 대한 회피 및 공격 반응에 따른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성경은 모든 갈등이 나쁘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차이는 자연스럽고 유익하다고 가르친다. 기독인은 갈등을 회피하거 나 다른 사람들이 항상 우리에게 동의하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다양성을 기뻐하고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롬 15:7,14:1∼13). 기독인이라면 갈등의 원인이 되는 뿌리를 제거하고 진정한 평화의 길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한다(약 4:1∼2,마 18:15)”(인터넷).

 

둘째로, 성장하는 교회는 든든히 서 갑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931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 여기서 든든히 서 가로’란 말은 세워 올라감을 의미하는데, 이는 외부적 사업 면을 말함이 아니고 내부적인 경건 면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초대 교회 여러 지역 교회들은 외부적으로 크게 건설되기보다 내부적으로 사랑 안에서 성도들이 연합하여 영적으로 크게 건설되었습니다. 영적으로 교회가 크게 건설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사랑으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박윤선 박사님에 의하면 고린도전서 8장 1절에서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란 말씀에서 덕을 세운다는 말은 든든히 서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장하는 교회가 든든히 서 간다는 교훈은 즉 성장하는 교회는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지금 현재 우리 교회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까? 외부적으로 크게 교회 건설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내부적으로 사랑의 요소보다 분열되었던지 분열의 조짐이 보이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교회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는 성장합니다. 그러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경 에베소서 413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진리는 교만하게 하는 지식은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81을 보십시오: “…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Knowledge puffs up, but love builds up).

 

(2) 오직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성경 에베소서 41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Instead, speaking the truth in love, …).

 

(3)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 도움을 받아 각자의 은사대로 교회를 섬 겨야 합니다.

 

성경 에베소서 416을 보십시오: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믿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먼저,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032-33을 보십시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 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오히려 우리는 남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돼야합니다. 말하는 것도 ‘이것이 남에게 유익이 될까?’ 생각해 보고 말하고, 행동도 ‘이것이 남에게 유익이 될까?’ 생각해 보고 그렇게 행하면 그것이 덕을 쌓아 나가는 방법이란 말입니다. 초신 자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교회 출석을 막는 것을 보면 먼저 믿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덕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는 혀(말)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혀로 죄를 범치 말도록 힘써야 합니다.

 

(2)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힘써야 합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031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믿음의 덕이란 하나님께 영광되도록 생활을 이끌어가는 모든 것이란 말입니다. 반대로 내 주장을 위해서, 내 뜻을 위해서 하는 믿음생활이라면 덕 없는 믿음입니다. 교회에서도 자기주장만 옳다고 내세우면 그것이 아무리 틀린 것이 아니라 해도 덕 있는 행위는 아닙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신앙의 절개를 지켜야 하겠지만, 그 외의 것은 내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만 하면 그것이 덕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지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 된다면 지는 것이 덕입니다. 양보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면 양보가 덕입니다(인터넷).

 

셋째로, 성장하는 교회는 주님을 경외함과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931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여기서 “주를 경외함”이란 말은 “신자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행하면서 그의 뜻을 순종하려고 전심함”입니다(박윤선). 성장하는 교회는 주님을 경외하므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의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의식 가운데서 경외심을 가지고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뜻 중에 하나가 아모스 514에 적혀있습니다: “너희는 살기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 이것이 바로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성도들은 악을 떠나 선을 행합니다. 바로 이것이 살아있는 성도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 안에는 성령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악인들의 위협과 핍박 속에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주님의 임재 의식 가운데서 그의 뜻을 순종하는 성도들에게는 성령님이 주시는 위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령님은 우리가 환난 중에 있을 때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면 넘칠수록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위로도 우리 안에 넘칩니다(고후1:5).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4절). 이러한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는 환난 중에도 내적 평안이 있습니다(박윤선).

 

교회에는 주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성령님의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가운데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성령님께서 진리를 행하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사 충분한 위로를 주시기에 우리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로마서 154 말씀대로 성령님은 “성경의 안위”(the encouragement of the Scriptures)로 소망을” 우리로 하여금 가지게 하십니다. 이러한 위로를 받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모인 교회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성장하는 교회는 교인들의 숫자가 증가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931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이것은 교회가 외부적으로 장성함이니, 교인들의 숫자가 증가됨을 이름입니다. 교회가 내부적인 은혜는 없이 숫자만 많아지면 영적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와 같은 내부적 은혜가 있는 교회는 양적으로도 장성하고 또 영적 평안도 지니고 있을 수 있습니다(박윤선). 성경 사도행전 247을 보면 초대교회 안에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다는 말씀이 있고 44에는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들이 남자의 수만 약 오천이나 되었고 61에는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6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님의 글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지 못하는 가장 큰 병폐가 성장주의라고 봅니다. 성장주의 병은 큰 교회 뿐 아니라 작은 교회도 걸려 있지요. 교인 수 배가 운동하고, 끊임없이 숫자의 성장만을 제시하지요. 숫자의 증가만이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표징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실은 그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이 역사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과 거리가 먼 거죠. 성장 병을 고쳐야겠다는 것은 제가 목회를 하면서 피부로 느낀 겁니다. 사실 목사가 성장 병에 제일 취약하거든요. 그래서 저부터도 거기서부터 선을 긋자고 스스로 다짐을 했고, 자립할 만한 규모가 되면 분가를 해서 자립한 공동체 교회가 자꾸 생겨나는 것이 건강한 성장의 방법이라 생각했어요”(인터넷). 여러분은 김경호 목사님의 말씀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교회가 숫자적으로 성장(양적 성장)하는 것이 무조건 비판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매우 경계해야 할 것은 교회의 질적 성장만을 주장하면서 양적 성장을 비판하는 경향입니다. 물론 교회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여 양 도둑질을 하는 것도 교회의 큰 문제이지만 질적 성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양적 성장이 없다는 사실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윌리엄 채드윅 목사님은 그의 책 양 도둑질”(Sheep Stealing)에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양 도둑질 했던 성장제일주의 목사”라고 말하면서 양심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는 왜곡된 교회성장의 이면 가운데 하나인 '수평이동성장' 문제를 이 책에서 들춰낸 것입니다. 그는 교인을 양(sheep)에 비유하고, 이웃 교회의 교인을 내 교회로 옮겨오게끔 만드는 모든 시도와 노력을 대담하게 양 도둑질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90년대 들어 수적 성장이 둔화되면서 그동안의 교회성장이'회심성장' (conversion growth, 전도에 의한 새신자 증가)이 아니라 '수평이동성장'(transfer growth, 교인들의 수평이동에 의한 외형적 성장)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통계상으로만 성장했을 뿐 실제로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 수평이동성장을 추구한 목회자였음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교회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수평이동성장이 아니라 회심성장이어야 함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즉, 저자가 이웃교회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교인을 끌어들이고 자신의 교회를 살찌운 이른바 양 도둑질의 내력을 구체적으로 고백한 것입니다(인터넷).

 

우리 교회에는 평안함이 있길 기원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주님의 경외함과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하는 우리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믿는 자를 더하시는 우리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