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교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출애굽기 327).

 

 

요즘 한국 교회 분위기를 가리켜 ‘심심하다 갈아보자’라는 말을 어느 목사님에게 듣고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물어보았습니다. 그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심심하다 갈아보자’란 말은 교회에서 심심하니깐 담임 목사를 바꿔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목사님의 이웃 교회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저는 그리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제가 교회에서 이러한 부패한 모습들을 너무나 듣고 보는 가운데 제 자신이 그런 일들에 익숙해져 그런가 봅니다.

 

성경 출애굽기 327 말씀의 배경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있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1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론은 그들에게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고 명하였습니다(2절). 그 때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3절)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4절). 그리고 나서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고 말한 후(4절) 그 금송아지 앞에 단을 쌓고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로 공포하였습니다(5절). 이튿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6절). 이것을 다 보고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산에서 내려가라고 명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부패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7절).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가리켜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여호와의 절기에 금송아지 앞에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6절) 앉아서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며(19절) 놀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마치 일요일은 주님의 날(주일)이라고 아론 같은 지도자가 선포하였을 때 온 성도들이 주일 주님의 전에 올라와 ‘금송아지’같은 것을 마음에 새겨 놓고 예배를 드리면서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며 즐기는 것이 아닌가요? 여기서 과연 금송아지 같은 것이 현대 교회 안에는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돈’이라 생각합니다(마6:24). 지금 돈을 탐하는 마음(탐심)이 만연한 것 같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골3:5). 지금 이 시대는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살아가면서 자칭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우리도 마음이 오염 되어 물질만능주의 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물질의 복을 받고자 주일 주님의 전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면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부패했으면 이러한 추태를 부리겠습니까? 그러고도 우리 양심에 찔림이 없으니 이러한 교회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9절).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길을 속히 떠났습니다(8절). 그리고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8절). 결국 목이 곧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좁은 길을 속히 떠나 우리 자신들을 위하여 넓은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돈을 사랑하여 우상화하므로 수많은 죄악들을 범하고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하나님의 중심된 이면적 신앙생활이 아닌 나중심된 표면적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경건의 모양은 참 멋져 보이는데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무능력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영적 싸움에 계속 패하면서 패배감속에서 더 이상 말씀에 이끌림을 받기보다 죄악 된 옛 본능에 이끌림을 받아 거듭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죄에 익숙해져 가는 삶속에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영적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는 화인 맞은 양심(딤전 4:2)과 철강보다 뜨거운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러한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길을 속히 떠나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고 있었을 때 모세에게 “나대로 하게하라”(Now leave me alone)고 말씀하셨습니다(10절). 진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고 모세로 하여금 큰 나라를 만드시고자 하셨습니다(10절). 그 때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11절). 그는 하나님께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마”시길 간구했습니다(12절). 특히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야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13절)는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뜻을 돌이켜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지 않으셨습니다(14절). 그러나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서(15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고 있는 진에 가까이 이르러 금송아지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춤 두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 들고 있었던 십계명이 쓰여 있었던 두 돌 판들을 던져 깨뜨렸습니다(19절). 그리고 나서 모세는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우게 하였습니다(20절). 또한 모세는 그의 형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을 보고(25절)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한 아론을 면책하였습니다(21절ff.). 그런 후 하나님의 편에 선 레위 자손들로 하여금(26절)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게 하여(27절) 그 날에 백성 중 약 삼천 명 가량이 죽인 바 되었습니다(28절). 이틀 날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슬픔 가운데 그들의 죄를 자백하며 하나님께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30-32절). 자기의 이름이 주님의 기록하신 책에서 지워 버릴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큰 죄를 사해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32절).

 

우리 부패한 교회가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범한 큰 죄들을 자백하며 회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범한 큰 죄들을 향한 분노와 더불어 그 큰 죄를 범한 우리 자신들을 보고 슬퍼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울며 회개해야 합니다. 교만하여 하나님께서 명하신 길을 속히 떠나 우리 자신을 위하여 범한 죄들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회개하는 가운데 그 길에서 돌이켜 다시금 주님께서 명하신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목을 곧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방자하여 우리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겨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 분께서 우리를 사단의 왕국에서 건져 내시사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분 만이 우리의 참된 구원자가 되십니다. 또한 그 분께서 우리를 영원한 안식처로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오늘도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