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무덤을 파는 교회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예레미야 213).

 

 

한국 속담을 보면 “제가 제 무덤을 판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은 스스로 자신을 망치는 어리석은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인터넷). 바로 성경 예레미야 213에 나오는 유다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무덤을 팠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스스로 자신을 망치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어리석은 범죄를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과(2)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 다시 말하면, 스스로 웅덩이를 파고 있었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허탄한 것”(5절) 또는 “무익한 것”(8, 11절)을 좇았습니다. 그 허탄하고 무익한 것은 바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긴 것(우상숭배)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등을 하나님께로 향하였고 그들의 얼굴은 자신들이 만든 신들을 향했습니다(27-28절). 이렇게 배도하고 패역한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19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선택한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버림과 그들 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이 바로 악이요 고통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웅덩이를 판 유다 백성들은 스스로 고통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좇고 있는 우리 교회, 그 결과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우리 교회의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교회의 모습에는 한 3 가지 죄악 된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는 범하고 있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 예레미야 223을 보십시오: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 자기들의 행한 바를 깨닫지 못했던 유다 백성들처럼 지금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스스로 더럽히고 있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죄는 마치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처럼(23절) 그리고 “광야에 익숙한 들 암나귀”처럼 막을 수 없는“성욕”으로(24절)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좇는 영적 간음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심”(3:5)을 채우고자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갔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수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유다 백성들은 “창녀의 낯을 가졌”기 때문입니다(3절).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닌 가 염려스럽습니다. 수치를 모르는 교회, 부끄러운 죄를 하나님께 범하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는 교회, 성경은 창녀의 낯을 가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절). 우리 교회는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고 돈을 좇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을 보아야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욕심과 탐심을 보아야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원하는 우리의 죄악 된 욕망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징책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 예레미야 230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매를 맞으면서도 징책을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마치 매를 맞으면서도 정신 못 차리고 계속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녀처럼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계속 다른 신들을 좇았습니다. 그들은 여기 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36절). 그들은 앗수르로 갔었고 또한 애굽으로도 가서 그들을 의뢰하였습니다(36절). 더 나아가서, 유다 백성들은 죄를 지적하며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 선포하는 선지자들을 아예 죽여 버렸습니다(30절). 그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32절). 그러면서도 그들은 “나는 무죄하”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참으로 자기들에게서 떠났다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35절).

 

이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닌 가 염려스럽습니다. 죄를 깨닫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매를 맞으면서도 죄를 깨닫고 자백하고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우리의 마음은 강퍅해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게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 선포자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나는 무죄하”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진노의 막대기를 우리를 치신 후 잠잠히 계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영영히 우리에게서 떠난 줄 착각하고 또 범죄하기를 담대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사람들이나 물질을 계속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형통치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37절)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고 이렇게 돌아다니면서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죄악된 행위를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두 손 들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찬송가338장)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교회는 거짓으로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성경 예레미야 310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패역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서 행음”하였습니다(8절). 그들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였습니다(9절). “마치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남 같이” 유다 백성들은 정녕히 하나님을 속였습니다(20절). 그러면서 그들은 표면적으로(형식적으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척(pretense)하였습니다(10절).

 

저는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 모임이나 부흥집회 때에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듯 해 보이는데 한데 우리는 세상에 나아가서는 또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좇으며 우리의 욕심을 만족케 하고자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로는 만족할 수 없는 우리 영혼인데 말입니다. 언제까지 우리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께 회개하며 돌아오는 척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심으로”회개하며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0, 12-14절). 그러므로 우리는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버릴 것들을 버리고 버리지 말아야 할 하나님께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복하면서 돌아가야 합니다(13절).

 

스스로 웅덩이를 팠던 유다 백성들처럼 지금 우리 교회는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의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징책을 겸손히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복하면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