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와 같은 교회

 

 

 

너의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에스겔 1634).

 

 

얼마 전 미주 한국 일보인가 신문을 보니깐 한국 유학생들이 유학 비자를 받아 미국에 와서 매춘 업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매춘을 하다가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유학생들이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여러 번 뉴스에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매춘 업을 하다가 걸려서 한국 사람들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였는데 이번에는 유학생들까지 그런 매춘에 관련하다가 걸렸다는 뉴스를 들으니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성경 에스겔 1634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음란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음란함이 다른 여인들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다름 점은 오늘 말로 한다면 보통 창녀들은 돈을 받고 자기 몸을 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돈을 상대방에게 주면서 자기들의 몸을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33절). 저는 “모든 정든 자”들에게 선물들을 주면서 행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음란함에 대해서 한 3 가지로 생각해 보면서 교회에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회개하며 돌이키는 역사 우리 교회 가운데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행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자신의 화려함을 믿었습니다.

 

성경 에스겔 1615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화려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화를 입히시므로 말미암아 그들의 화려함이 온전하여졌습니다(14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입히신 영화를 9-13절에 적혀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장해주심에 있어서 황후에게 합당한 몸단장을 시켜 주셨습니다(13절)(박윤선).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명성이 이방인 중에 펴졌습니다(14절).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화려함을 믿고 자기들의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였습니다(15절). 그들은 “무릇 지나가는 자”들이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했습니다(15절). 자신들의 몸이 무릇 지나가는 자들 것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의 속한 자들과 짝지어 살면서 자기 자신을 좋게 하려고 세상을 즐겼던 것입니다(박윤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그 은혜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와 축복들을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 교회는 그 모든 은혜와 축복들을 교회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너무 화려해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화려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들어내기보다 교회 자체의 영광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보다 교회의 이름이 더 들어나고 있습니다. 교회 이름도 브랜드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그 결과 명성으로 인하여 교만해진 교회는 자기의 화려함을 믿고 있습니다.

 

둘째로, 행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겼습니다.

 

성경 에스겔 1620을 보십시오: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겼습니다(16-19절). 그들은 “의복”, “금, 은 장식품”, “수놓은 옷”, “기름과 향”,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 사용하지 않고, 우상을 위하였습니다(박윤선).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축복들을 우상에게 같다 받치는 영적간음의 죄를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인 자녀들을 우상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사르기까지 했습니다(20-21절). 이러한 유대인들의 제사는, 그들이 이방신 몰록에게 제사한 죄악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즉, 하나님께서 받은 축복인 자녀들을 하나님께 받치지 않고 이방신 몰록에게 같다 받쳤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자신의 죄악들을 작은 일로 여겼던 것입니다(20절).

 

우리 교회는 어떠합니까? 혹시 교회가 범하고 있는 영적 간음을 작은 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들을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용하기보다 그 주신 축복들을 자기 자신과 세상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지금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화려함을 내적화하지 못하고 외면화하여 세상과 짝지어 별 다를 바 없이 살아가면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보다 교회 자신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인 자녀들을 하나님께 받치기보다 세상에 받치고 있습니다. 교회 직분자들 조차도 자녀들을 주님과 그의 복음과 그의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받치기보다 세상의 성공의 사닥다리를 올라가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낳은 자녀들인데(20절) 자기 자신과 세상을 위하여 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다 더 큰 문제는 지금 우리는 이 죄를 작은 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지금 교회는 죄를 죄로 여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 입니다.

 

셋째로, 행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행음함을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성경 에스겔1629을 보십시오: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오히려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체가 큰 네 이웃 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였습니다(26절).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체가 강한 또는 정욕이 강한 애굽 사람들의 우상 섬김에 열중했음을 말합니다(박윤선).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28절)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오히려 부족히 여겨”(28절)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였습니다(29절).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애굽이나, 앗수르나 갈대아 나라를 더 의지하였음을 가리킵니다(박윤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이방인 나라들의 우상을 수입해서 섬겼습니다. 적어도 블레셋 도시 사람들은 우상을 섬겼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외국의 우상들을 수입하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27절, 박윤선).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욕이 차지 아니한 음란한 여인처럼 이 나라 저 나라 사람들하고 행음하고도 부족하게 여겼고 족한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떠합니까? 혹시 교회는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케 하고자 영적 간음의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혹시 교회가 이러한 정욕이 강하여 하나님 외에 여기 저기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들을 의지하면서 행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마치 음욕이 차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교회는 영적 간음을 향한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혹시 교회가 행음함에 있어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음란한 여인이 되서는 아니 됩니다. 교회는 창녀와 같이 되면 아니 됩니다. 교회는 신랑 되신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깨끗해야 합니다(엡5:26). 교회는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 합니다(27절).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주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셨습니다(27절). 결코 자신의 화려함을 믿고 음행하면서 그 음행의 죄를 작게 여겨서는 아니 됩니다. 행음함에 있어서 족한 줄을 모르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 한분으로만 만족하며 자족하는 교회가 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