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다운 교회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사도행전 242-43).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새들백교회 담임)은 이러 주장을 하였습니다: “21세기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교회 성장이 아니라, 교회 건강이다. 교인 숫자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건강이 문제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 성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다섯 가지를 제안하였습니다: ‘(1) 교회는 친교를 통해 더욱 따스하게 성장할 필요가 있고, (2) 제자직을 통해 더욱 깊어지며, (3) 예배를 통해 더욱 강건해지며, (4) 사역을 통해 더욱 넓어지며, 그리고 (5) 전도를 통해 더욱 크게 성장할 필요가 있다.’ 그는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의 숫자보다는, 사역과 선교를 위해 동원되는 교인들의 퍼센티지가 그 교회의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보다 정확한 척도’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생각할 때 과연 우리 교회는 건강한 교회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건강한 교회”라는 말보다 “교회다운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에 과연 우리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앞서 저는 먼저 교회다운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교회다운 교회”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저는 사도행전 242-43 말씀 중심으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 즉 교회다운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한 4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하여 배워서 우리 교회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로 세움을 받는데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교회 세우시는 사역에 헌신적으로 동참하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42을 보십시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 말씀의 배경은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듣고 3000명이나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후 그들은 전혀(지속적으로) 4 가지 일에 힘을 썼습니다. 우리도 우리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선 이 4 가지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첫째로, 교회다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전혀 힘씁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42을 보십시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한 3000명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된 초신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에 전혀 힘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이상적인 관계를 예수님의 발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참 제자의 모습으로 그린바 있습니다(2:46; 8:35; 10:39)(유상섭). 예수님과 우리와의 이상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총신 신학교 한 교수님의 시험 질문이 이거였다고 합니다: ‘성도님들이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답: 하나님의 말씀. 성도님들 개개인 마다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다 다를 수 있겠지만 영적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 모두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다운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배우는데 전혀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둘째로, 교회다운 교회는 서로 교제하기에 전혀 힘씁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42을 보십시오: “… 서로 교제하며…." 여기서 “교제”란 단어를 의미하는 헬라어는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라는 단어 속에는 2 가지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 함께 나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공유)그리고 (2)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분유).

 

요즘 우리 크리스천들이 자주 사용하는 기독교 용어인 “교제”(fellowship)는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제인지 의문이 듭니다. 과연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재미있는 대화나 나눔인가요? 교제가 무슨 사교적 활동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제인가요? 우리가 다루고 있는 성도간의 교제는 단순히 사람들과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는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닙니다. 무슨 기독교적인 분위기에서 게임을 한다거나 단지 지난주에 있었던 일을 서로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거듭나기 이전에도 해왔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제에는 무엇인가 새로운 나눔 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배운 것을 서로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 “다른 성도의 어려움을 중보 기도하는 것” “자신의 소유물을 서로 나누는 것이 바로 그 것입니다”(인터넷).

 

성경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제란 무엇입니까? 헬라어 원어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어 “그 교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교제”란 바로 “성령의 교제”를 가리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한 역사 가운데 약 3000명 새로운 성도들이 함께 공유했던 것은 그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교제에 헌신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교제는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단지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서 일치와 단결을 이룬 인본주의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성령이 중심과 핵심이 되는 성령의 교제공동체였습니다(유상섭).

 

셋째로, 교회다운 교회는 성찬에 전혀 힘씁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42을 보십시오: “… 떡을 떼며 …. 이 말씀은 “성찬"을 가리킵니다. 즉,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찬에 전혀 힘썼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성찬에 전혀 힘을 써야 합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겸손히 믿음으로 받아 주님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마지막 넷째로, 교회다운 교회는 기도하기를 전혀 힘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42을 보십시오: “…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여기서 “기도”란 단어는 복수입니다. 즉, 예루살렘 교회는 각종 기도에 전적으로 헌신했음을 가리킵니다. 또 한 가지 사실은 “기도”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가 붙어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를 가리킵니다. 즉,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는 120문도의 기도를 본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1:14-15). 이 모습이 교회가 3천 명으로 확장되었을 때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예루살렘 교회에게 교인들의 수적인 성장은 곧 기도하는 사람들의 증가를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루살렘 교회에게 기도는 교회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교회가 계속해서 가져야 하는 본질적인 모습임을 확인시켜줍니다(유상섭).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사도의 가르침과 교제와 떡을 떼는 것과 기도에 전심으로 힘을 썼을 때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243을 보십시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그들이 말씀과 교제와 성찬과 기도에 전심으로 헌신했을 때 그 결과는 교회가 불신자들 사회에서 영적 권위가 있었다는 말입니다(박윤선). 지금 교회의 영적 권위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불신자들 사회에서 너무나 추락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전심으로 노력해야 할 것에 헌신하고 있지 않고 다른 것에 헌신하고 있으므로 서로 싸우고 다투고 분쟁과 분열로 말미암아 불신자들 가운데서 영적 권위를 잃어버리고 있습니까? 이젠 더 이상 불신자들조차도 교회를 향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교회가 그들에게 우습게 여김을 받고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혀 힘써야 할 것에 힘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참된 교제와 성찬과 기도에 전혀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젠 교회가 불신자들 앞에서도 영적 권위가 세워져서 교회다운 교회로서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찬 받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