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다.

 

 

 

[빌립보서 315-16]

 

 

당신은 혹시 “성장 고통” 혹은 “성장통”(Growing pains)이란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성장통이란 “어린이나 청소년이 갑자기 성장하면서 생기는 통증. 또는 그와 비슷한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주로 양쪽 무릎이나 발목, 허벅지나 정강이, 팔 따위에 통증이 생긴다고 합니다(인터넷). 주로 4-12세 어린이들의 10-20%가 성장 통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 성장 통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어야 할 과정입니다(인터넷). 즉, 아이가 자라나가 위해선 겪어야 할 고통이란 말입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란 책을 쓴 저자 대니얼 고틀립은 이러한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위대성의 척도는 고통을 감수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사람은 고통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래서 고통은 곧 기쁨이라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인터넷).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한 사람의 위대성의 척도는 고통을 감수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선 우리 각자가 겪어야 할 고통이 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자라나기 위해서 성장(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선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이 무엇이든지 간에 만일 저와 여러분이 믿음의 성장을 간절히 원한다면 우리는 그 고통들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고통들을 우리의 신앙 성장에 유익되게 해야 합니다. 고통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믿음이 더욱더 견고히 세워져 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고통의 길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걸어가고자 헌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 야고보서 1장 4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참고 견디어 부족함이 없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저는 오늘 본문 빌립보서 3장 15-16절 말씀 중심으로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들이 되십시다”란 제목 아래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지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이 교훈을 겸손히 받아 순종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서 더욱더 성장하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3장 1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저는 그 대답을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성경 마가복음 4장 20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좋은 땅”과 같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땅과 같은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뿌려 졌다는 것은 한 3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1)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20절) 그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16절). (2)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를 받을 때에 오래 견디며 넘어지지 않습니다(17절). (3)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으로 하여금 말씀을 막지 못하도록 싸워 승리하면서 열매를 맺습니다(19절).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관심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그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for thei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이었습니다(1:25). 어느 정도로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에 관심을 가졌냐면 바울은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자기가 이 세상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까지 말하였습니다(24절, 현대인의 성경).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고 또한 그는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23절)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이 세상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할 필요하다고까지 말하였습니다(24-25절). 그 정도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는(1:8)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큰 관심을 가지고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오늘 본문 빌립보서 3장 15절에 와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야합니다”(현대인의 성경).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2 가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1)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이란 말씀에서 성숙하다’[mature(NIV), perfect(NASB)]란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기서 ‘성숙하다’란 단어의 의미는 달리기에 있어서 충분히 적합하다(one fully fit for running)는 의미가 있습니다(Jamieson). 성경 디모데후서 2장 5절을 보십시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현대인의 성경) "운동선수가 규칙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상을 받지 못합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믿음이 성숙한 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할 때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성숙한 자란 신앙의 경주를 달림에 있어서 충분히 적합한 자로서 하나님의 법을 알고 또한 그 법을 따라 신앙의 경주를 달리고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믿음이 성숙한 자가 이미 다 경주를 완주했다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말한 것처럼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지금도 신앙의 경주를 하나님의 법을 따라 달리고 있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2) 바울이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이와 같은 생각은 어떠한 생각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 생각을 알기 위해선 오늘 본문 빌립보서 3장 15절을 시작하면서 바울이 “그러므로”라고 한 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러므로”란 접속사는 그 이전에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에 대한 결론적인 적용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절부터 14절에서 한 말에 대한 결론적인 적용으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와 같은 생각은 무엇입니까? 저는 그 생각을 3 가지로 요약을 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고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빌립보서 3장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참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우리는 3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믿음이 성숙한 자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므로 그는 마땅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줄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사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입니다. 즉, 구원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2) 믿음이 성숙한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그 이유는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자기가 구원 받은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자랑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구원 받음에 있어서 자신의 공로가 하나도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자랑할게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약한 것”입니다(고후11:30). 믿음이 성숙한 자는 사도 바울처럼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갈6:14).

 

(3) 믿음이 성숙한 자는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을 신뢰합니다.

 

둘째로,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입니다.

 

성경 빌립보서 3장 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현대인의 성경) "더구나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훨씬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바울처럼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진리를 압니다. 그러므로 그는 바울처럼 2가지를 추구합니다. 그 2가지란 이렇습니다:

 

(1)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들(신뢰하던 육적인 것들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해로 여기고, 다 잃어버리고, 다 배설물(쓰레기)로 여깁니다(8).

 

(2)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는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그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분의 죽음을 본받기를 원합니다(10).

 

셋째로,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푯대(목표)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성경 빌립보서 3장 14절을 보십시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현대인의 성경)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나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으려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3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소명의식이 분명합니다.

 

그는 바울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에 있어서 자기의 생명도 주님께 받칩니다.

 

(2)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사명감이 투철합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부탁하신 일을 심부름함에 있어서 자기의 목숨을 걸고 완수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명에 이끌림을 받지 결코 환경에 이끌림을 받으면서 우왕좌왕 하지 않습니다.

(3)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목표를 향하여 전진해 나아갑니다.

 

그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3절)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14절, 현대인의 성경). 그는 목적에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삽니다.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분명한 소명의식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목표를 향하여 전진해 나아가는 이유는 그가 결코 그가 사람들에 칭찬이나 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간절히 원하는 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14절). 과연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 “부름의 상“은 무엇이었습니까? 성경 디모데후서 4장 7-8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니라”[(현대인의 성경)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의의 면류관을 받는 일뿐입니다. 이것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바울이 간절히 원했던 상은 바로 “의의 면류관”이었습니다. 여기서 “의의 면류관”이란 것은 “신자가 믿음으로 받을 의의 내세적 완성에 의하여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함을 상징”합니다(박윤선).

 

우리는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분명한 소명의식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목표를 향하여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을 의의 면류관을 사모하면서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고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저 천국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빌립보 교회 안에는 바울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좀 짐작할 수 있는가 하면 오늘 본문 빌립보서 3장 15절 하반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현대인의 성경) "... 만일 여러분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것도 분명하게 바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빌립보 교회 안에 바울과 믿음이 성숙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생각과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빌립보 교회 안에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한 2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과 빌립보 교회 안에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과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성숙한 사람들입니다(Ash).

 

이 미성숙한 성도들은 바울과 믿음이 성숙한 교회 성도들처럼 같은 3가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3가지 생각이란 우리가 이미 묵상한 것처럼 (1)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고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것과 (2)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 그리고 (3) 푯대(목표)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 미성숙한 성도들은 바울처럼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하지 않았습니다(13절). 오히려 그들은 푯대(목표)를 향하여 달려가지 않고 계속해서 뒤에 것을 기억하며 그 과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MacArthur).

 

둘째로, 바울과 빌립보 교회 안에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과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울처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12)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은 내가 이미 얻었다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했습니다(Jamieson).

 

이들은 자기 자신들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다‘(He who thinks that he has attained everything, hath nothing). 아마도 이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 옛 사람의 삶대로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온전함을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을 염두해 두고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로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3:2)(Jamieson). 바울은 이들을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 빌립보서 3장 15절 하반절에서 “...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God will reveal that also to you)”고 말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자기와 믿음이 성숙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생각과 달리 생각하는 미성숙한 성도들에게, 아직도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온전함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리를 계시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믿음이 성숙한 자들처럼 진리에 근거한 올바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자기와 믿음이 성숙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같이 생각하지 못하고 달리 생각하는 성도들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계시해 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가 그리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면서(1:4) 그들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6절).

 

이렇게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 중 미성숙한 형제, 자매들에게 말을 한 후 오늘 본문 빌립보서 3장 16절에 와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든지 지금까지 따른 법칙에 따라 계속 그대로 살도록 합시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믿음이 성숙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든 지간에 지금까지 따른 법칙에 따라 계속해서 그대로 살아가자가 권면한 것입니다. 즉, 바울은 빌립보 교회 안에 있는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에게 ‘우리 함께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 따라, 계속해서 진리의 원리에 따라 예수님의 온전하심을 이루어 나아가자’고 권면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그리 권면한 이유는 교회 안에 성숙한 성도들로 하여금 미성숙한 성도들과 함께 교회의 연합성(통일성)을 지켜 나아가기 원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Ash).

 

우리는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고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푯대(목표)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성숙한 믿음을 추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오직 말씀, 오직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