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

 

 

 

[빌립보서 219-24]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과연 주님의 일은 무엇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묵상한 성경 구절 말씀들 중 한 두 군데 중심으로 주님의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첫 번째 성경 구절은 사도행전 1421-23절입니다: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이 말씀에 근거해서 저는 주님의 일을 한 4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a) 주님의 일이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21절).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과 복음 전파자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거의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b) 주님의 일은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21절).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대계명인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로 삼”으라는 마태복음 28장 19-20절을 순종하였습니다. (c) 주님의 일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행14:22c-23). 더베에서의 성공적인 사역을 마친 후 바울과 바나바는 이미 방문했던 선교 지를 재방문하면서 제자들의 신앙을 굳게 하였습니다. (d) 주님의 일은 교회에 지도자들을 세우는 것입니다(행14:23).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지를 재방문하여서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선택하여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와 금식으로 이 장로들을 주님께 의탁하였습니다.

(2) 두 번째 성경 구절은 바로 요한복음 629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우리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선순위 해야 할 일인 예수님을 믿는 것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10장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므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믿음의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빌1:25).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19절을 보면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내러 가면서 디모데를 속히 그들에게 보내기를 주님 안에서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이유는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위로)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19절). 다시 말하면,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므로 그를 통하여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소식을 듣고 위로를 얻기를 원했습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디모데”가 누구(어떠한 자)인지를 편지로나마 미리 소개하였습니다. 그 소개가운데 저는 오늘 본문 21절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현대인의 성경) “모두 자기 일은 열심히 하면서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들 자기 일은 구하면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은 구하지 않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가르침과 위배하는 것입니다. 그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미 묵상한 빌립보서 2장 4절을 보십시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바울은 자기 일을 돌볼 뿐만 아니라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물며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에 관심을 갖고 주님의 일을 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2장 21절에 와서는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디모데만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일(만)을 구하고” 있다 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며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디모데를 그들에게 속히 보내기를 소망한다고 그들에게 말한 것입니다(20-21절). 그래서 저는 오늘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란 제목 아래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였던 디모데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디모데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2가지로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는 교회 형제, 자매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20절을 보십시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현대인의 성경)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을 진심으로 염려해 줄 사람은 디모데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고 싶었던 디모데란 인물은 교회를 향하여 자기와 “뜻을 같이”한 사람(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참고: 2절). 이 소개가 좀 흥미롭지 않습니까?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이 소개가 저에게 흥미로웠던 이유는 지금 바울의 편지를 받을 빌립보 교회 안에는 성도들은 뜻을 같이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2절). 특히 바울과 함께 복음에 힘쓰던 두 여인들인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4:2-3).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내러 가면서 그들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위로)를 얻고자 자기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디모데를 속히 그들에게 보내기를 주님 안에서 바란다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기 자신과 함께 복음에 힘쓰던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바울은 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메시지란 뜻을 같이 하지 못하고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고 있었던 유오디아나 순두게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빌립보서 2장 2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2:2)고 말만 한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자기 자신과 디모데의 본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울과 디모데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들은 뜻을 같이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우리가 이미 묵상한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찾았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바울과 디모데가 함께 품고 있었던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마음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주님께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입니다(8절). 바울과 디모데는 주님께 보냄을 받은 자들로서 그들은 자기들을 보내신 주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었고 또한 뜻을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디모데야 말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라고 믿었기에 그를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소개한 것입니다(20절). 여기서 “진실히”(genuinely)란 말은 “아들에게 대한 아버지의 성실함을 의미”합니다(박윤선). 즉, 마치 아버지가 아들의 사정을 성실히 생각하듯이 바울은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성실히 생각할 자라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울은 디모데를 그들에게 이렇게 소개할 수가 있었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바울과 디모데와의 관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참 아들”(딤전 1:2), “사랑하는 아들”(딤후1:2),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전4:17). 이 표현들을 보면 디모데는 바울의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며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었습니다. 즉,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영적 아버지와 영적 아들의 관계였으며 서로 사랑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사랑하는 신실한 영적 아들 디모데가 자기처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자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빌2:20). 그는 이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속히 보내기를 주님 안에서 바랬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형편 되는 대로(23절, 현대인의 성경)] 디모데를 “곧” 빌립보 교회에게 보내기를 바랐습니다(23절). 그 이유는 바울은 디모데를 통하여 그들의 사정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19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정을 알고 싶은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특히 부모로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사정을 빨리 알고 싶은 게 우리 부모의 심정이 아닌가요? 마치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듯이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고 있었기에 속히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의 사정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디모데를 통하여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알게 되므로 위로(be encouraged)를 받길 원했습니다(19절). 비슷한 경우가 데살로니가전서 3장에도 나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자신의 영적 아들 디모데를 보냈습니다(살전 3:6).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3절) 그리고 시험하는 자가 그들을 시험하려 그의 동역자의 수고가 헛되게 하지 않고자 참다못하여[“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현대인의 성경)](1, 5절) 그들의 믿음을 알기 위하여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낸 것입니다(5절). 그리고 바울의 참 신실한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는 보냄을 받은 자로서 충성되이 사명을 잘 완수하고 다시 바울에게로 돌아와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6절). 그리고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항상 바울과 그의 동역자를 잘 생각하여 그들을 간절히 보고자 한다고 말해주고(6절) 그들의 믿음을 말해주므로 그는 바울을 위로하였습니다(7절). 디모데를 통하여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을 들은 바울의 반응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으므로 이제는 우리가 살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때문에 우리 하나님 앞에서 갖게 될 모든 기쁨에 대하여 그 보답으로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살전3:8-9). 이렇게 보냄을 받은 디모데는 자신을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낸 바울의 마음을 위로하며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며 기쁘게 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알았을 때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기뻐합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일에 관심 있는) 우리는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사정을 알아가야 합니다. 비록 오늘 본문에는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기까지 하면서 그들의 사정을 진실로 알고 싶어 했지만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보면 바울은 자기의 사정(엡6:21, 골4:7)뿐만 아니라 자기의 동역 자들의 사정(엡6:22, 골4:8) 또한 교회 성도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바울과 교회와의 관계는 서로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려 서로에게 알리며 또한 서로의 사정을 알아가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도 바울이나 디모데처럼 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되 우리 교회의 사정과 교회 식구들의 사정을 알아가므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는 복음을 위하여 수고합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22절을 보십시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이 디모데의 훌륭한 인품을 알고 있겠지만 그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나를 도와 수고하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디모데를 속히 보내기를 주님 안에서 바란다고 말하면서(19절) 디모데에 대해서 이렇게 먼저 소개를 했습니다: ‘디모데는 자기와 함께 뜻을 같이하여(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자’(진심으로 염려해 주는 자)입니다(20절). 그러면서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두 번째 소개는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에 관심이 있는 자)입니다 였습니다(21절).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도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디모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현대인의 성경) “디모데가 그리로 가거든 아무 걱정 없이 여러분과 함께 지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도 나처럼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고전16:10). 그런 후 바울은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22절에서 디모데에 대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세 번째로 이렇게 소개를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자입니다’(22절). 오늘 본문 22절에서 개역개정은 “디모데의 연단”이라고 번역하였고 현대인의 성경은 “디모데의 훌륭한 인품”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연단” 또는 “훌륭한 인품”이란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시험을 통하여 인정을 받다’[“approval gained through testing”(Pfeiffer)]라는 의미입니다. 디모데는 시험 또는 연단을 통하여 그의 인품이 훌륭하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인정받되 어쩌면 디모데는 “환난의 많은 시련”(고후8:2)을 겪고 믿음으로 인내하여(롬5:4) 그 시련을 통과하므로 그 인품이 단련되었기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훌륭한 인품을 가진 자로 인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알고 인정하는 디모데의 훌륭한 인품은 바로 ‘진실함’(genuine)이었습니다(20절).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인품이 중요합니다. 특히, 진실함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인품의 소유자를 친구로 둘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특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과 디모데를 생각할 때 저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섬기는 일꾼들 우리 모두가 바울이나 디모데처럼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있되 특히 진실한 사람들로 세움을 받는다면 이 얼마나 행복한 교회요 행복한 섬김과 사역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 자신부터 하나님과 성도님들 앞에서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언약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에게 성실하시듯이 저 또한 제 육신의 가족 식구들과 교회 식구들에게 성실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제 자신을 바라볼 때 육신의 가족 식구들이나 교회 식구들에게 성실하지 못하고 불성실한 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때 양심에 찔림 속에서 제 자신으로 인하여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고 붙잡게 하시는 말씀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디모데후서 2장 13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새번역)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배경이 적혀 있는 성경 사도행전 16장에 가서 보면 2절에 성경은 디모데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사랑하는 믿음의 참 아들이요 신실한 바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 칭찬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인품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한 자가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나를 도와 수고하였습니다”]) (현대인의 성경)고 바울은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22절에서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선 디모데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서(행16:1) 어릴 때부터 경건한 분위기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아버지가 헬라인이었으므로 헬라적인 영향을 받아 다신사상에 빠져들 수도 있었으나 디모데는 그 이름(“하나님을 공경하는 자”)과 같이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섬겼습니다. 그가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실한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을 배웠기 때문입니다(딤후1:5).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디모데는 모범적인 젊은이가 되어 갔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며 봉사하는 청년 디모데가 그의 고향 루스드라에서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평온한 가운데 기독교 교육을 받던 디모데의 인생은 사도 바울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의 계기를 맞았습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중 루스드라를 방문했을 때 디모데는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그 만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디모데는 바울을 영적 아버지로 여기고 그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제자 훈련을 받게 됩니다’(다국어 성경). 그리고 디모데는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22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수고하였다’는 말은 ‘종노릇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즉, 디모데는 바울에게 대하여 아비처럼 사랑하며 순종하는 태도로 복음을 위하여 수종들었다는 말입니다(박윤선). 즉, 디모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그의 영적 아버지인 바울에게 순종하여 수종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디모데를 가리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3장 2절에서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장 19절에서는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라고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디모데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함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서 전파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 21절에서 디모데를 가리켜 “나의 동역 자 디모데”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의 동역자란 말입니다.

 

한번 이 바울의 편지를 받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그들은 바울의 편지를 받아 읽는 중 그가 소개하고 있는 디모데에 대해서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물론 바울이 디모데를 “이는 뜻을 같이하여(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이다(빌2:20),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자이다(21절)라고 소개하였을 때 그들은 바울의 말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 사도 바울은 신뢰할 만한 주님의 종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22절에 와서 “여러분이 디모데의 훌륭한 인품을 알고 있겠지만”(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말하면서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마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디모데에게 동질감(sense of kinship)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빌립보서 1장 5절 말씀 때문입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현대인의 성경) “그것은 여러분이 처음 그리스도를 믿을 때부터 지금까지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협력해 왔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바울의 복음을 위한 일에 첫날부터 참여(협력)하고 있었고 디모데 또한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다고 하니 어떻게 빌립보 교회 성도들 입장에서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바울이나 디모데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나 다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들로서(21절)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든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견고히 붙잡고 그 최고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2:16).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생명을 주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복음을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요 또한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번 달 초(2월 3일)에 저희 교회에서 조금이나마 선교 후원하는 몽골 참사랑 교회(와 영원한 사랑 교회)의 담임 목사님인 특수 목사님이 저에게 사진들을 첨부한 이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특수 목사님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제가 저의 멘토 목사님과 2007년도 처음으로 몽골에 가서 장로교 신학교 수련회 때 세미나를 인도하다가 만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 제 기억으로는 한 60여명 현지인 몽골 신학생들이 수련회에 참석했던 것 같은데 특수 목사님은 좀 독특하게 여겨졌던 이유는 몽골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에는 그렇게 특수 목사님을 알고 있었는데 한 4년 후에 제가 두 번째로 몽골 가서 다시금 장로회 신학교 수련회 때 세미나를 인도했을 때 좀 독특하게 여겨졌던 것은 특수 목사님이 그 해 신학교를 졸업하면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한 이틀(한 930마일)을 운전해서 가야 하는 오브스라는 지역에 있는 영원한 사랑 교회에서 3년을 헌신해서 봉사하겠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때 수련회를 마치고 신학교 졸업식에서 참석했었는데 특수 목사님이 졸업식을 마친 후 가족 식구들 등 하고 함께 사진 찍은 모습도 아직도 이렇게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특수 목사님과 두 번째 만남을 가진 후 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왠지 제 마음에 그렇게 아무도 안 가려고 하는 머나먼 지역에서 3년 헌신해서 봉사하겠다는 특수 목사님이 마음에 자꾸만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좀 도울 수 없을까 하여 그저 제 개인적으로 조금씩 선교후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나마 영원한 사랑 교회를 섬기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요. 그러다가 작년 중순부터인가 특수 목사님이 영원한 사랑 교회에서 3년 섬김을 마치고 자신의 제자 전도사님을 후임으로 두고 몽골 수도로 와서 참사랑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 후로 부터는 저희 교회에서 그 교회를 지금 조금씩 후원하고 있습니다. 예배 후 식사 시간에 벽에 붙어 있는 게시판에 제가 특수 목사님의 사진과 영원한 사랑 교회와 참사랑 교회 사진들을 몇 장 붙여 놓았으니 보시고 기억하며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게시판에 제가 붙여 놓은 필리핀 해리 전도사와 라이어 전도사의 사진들을 보시고 그 귀한 일꾼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승리장로교회의 비전은 일꾼을 세우는 것(raise leaders)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주님께서 주님의 일꾼들을 세우시사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일을 우리가 함께 동참하여 하는 가운데 제가 참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신경 쓰고 있는 것은 그 주님의 일꾼들이 참으로 신뢰할 만한 진실한 사람들인가 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달 멕시코 선교 팀과 합류해서 장로님과 함께 간 이유는 고메즈 목사님이 저에게 말한 Victor이라는 멕시칸 목사님을 직접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에 대해서는 고메즈 목사님에게 말을 여러 번 들었기에 어떠한 분인지 좀 보고 싶었습니다. 그 날 우리 교회 멕시코 선교 팀과 티화나 뿐만 아니라 멕시칸 Victor 목사님과 사모님도 함께 다 엔세나다까지 가서 가브리엘 집과 노숙자 사역 등을 돌아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저희 교회에 귀한 주님의 일꾼들을 만나게 하여 주시고 함께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며 기쁩니다. 바라기는 우리 승리장로교회 모든 식구들이 진실히 그들의 사정들을 조금씩 조금씩 더 알아가면서 그들에게 관심을 더욱더 갖고 진실히 그들을 생각하여 함께 기도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로 더욱더 세움 받기를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한 영혼, 영혼을 진실히 생각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입술과 삶으로 전하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