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란? (2)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빌립보서 128).

 

 

‘지도력’(Leadership)에 대해서 여러 책을 쓰신 유명한 John Maxwell이란 목사님이 쓰신 책 중에 “파워 리더십”(Power Leadership)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미국 “최고의 전투기 조정사”(Ace Pilot) ‘에디 릭켄벡커”(Eddie Rickenbacker)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세계 1차 대전 전쟁이 끝날 때까지 300전투시간(미국 조종사 중 가장 많은 시간임)을 기록했으며, 134차례 적기와 만나, 26대를 격추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명예의 훈장을 비롯 8개의 특별 공로 십자가 훈장과 프랑스 레중도뇌르 훈장(Legion of Honor)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보여준 용기는 언론으로 하여금 ‘미국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American Ace of Aces)’라는 칭호를 붙이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하루는 전투에 보여준 그의 용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용기란 두려워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용기란 필요 없는 것입니다”(Courage is doing what you are afraid to do. There can be no courage unless you are scared).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무엇이 두렵습니까? 당신이 두려워하는 상황은 무엇입니까? 캐나다에서 실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놀랍게도 다른 사람 앞에서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 즉 “대중 앞에서의 연설”(41%)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고소 공포”(높은 곳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32%), 금전문제(22%), 깊은 물(22%), 질병(19%), 죽음(19%) 그리고 어두움(8%)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프레젠테이션을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는 이유는 아마도 죽음은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이지만 프레젠테이션은 이미 두려운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훨씬 더 큰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꼭 해야 될 말을 까먹고 못하고, 말을 버벅대고, 청중들이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겠다는 feedback이라던지, 직장 상사의 질책을 받으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부끄러움과 자신에 대한 실망감 등의 일상생활에서 겪지 못한 공포 수준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공포 수준의 경험을 하고 또 하게 되면 충분히 “대인공포증 (사회공포증)(Anthropophobia, Social Phobia)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이 증상의 정의는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등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어서 그런 상황을 가능한 피하려 하는 공포증(phobia)의 한 증상”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증상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다든지 상대방이 자기를 안 좋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obsessive idea) 때문에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사람과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 타인을 만나는 것을 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옥에서 쓴 “빌립보서”라는 편지를 받아 읽고 있을 때 분명히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인하여 (로마) 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분명히 자기들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 자기들도 옥에 갇히던지 어떠한 핍박을 받을 줄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예상했었다면 또는 자기들이 복음을 전하다가는 핍박을 받을 줄을 알았을 것이면 인간의 본능은 받을 핍박을 두려워하여 그 핍박 받을 수 있는 상황을 기피하고자 적어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적인 자리에서는 전하지 않고 몰래 전하던지 아니면 아예 복음 전파를 하지 않으려고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묵상했듯이 빌립보서 1장 14절을 보면 “형제(들) 중 다수가 나(바울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사람들이 한 일아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 속에서 역사하셔서 행하게 하신 일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바울은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였기에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And because of this I rejoice. Yes, and I will continue to rejoice)고 말한 것입니다(18절). 이렇게 말한 후 바울은 계속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자기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20-26절). 즉, 자기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20절). 바울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함에 있어서 자기 생명도 조금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든지 죽든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증거 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핍박을 받을 줄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는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전과 같이 지금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히 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 중 다수도 바울처럼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담대히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자기의 기쁨을 편지로나마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후 바울은 오늘 본문 빌립보서 1장 27절에 와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로나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면서 그 두 번째로 오늘 본문 28절에서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하였습니다. 왜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 말했을까요? 바울은 대적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대한 모습을 보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적어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옥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님 안에서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담대히 입술로 전하고 있었던 것처럼 생활로도 담대히 그 복음을 전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절)고 말하면서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28절). 그러면서 바울은 오늘 본문 28절 하반절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하였습니다: “…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무슨 뜻입니까?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들에게 지금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당신들을 핍박하는 대적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이지만 당신들에게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당신들이 그 대적자들의 핍박을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고 이겨 나아가는 것은 당신들에게는 구원 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선물로 주셔서 그 핍박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자기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그분의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아 고난을 당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을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소식을 듣고 싶다고 편지로나마 말하면서 이렇게 그들의 위로의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구원 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사 그 핍박과 고난을 견디며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 전 어느 한 사모님으로부터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 메시지에는 “초긴급 - 오늘(9/21) 새벽 중동 현지 선교사님으로 받은 기도제목이라 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다움 웹사이트 주소가 있어 그 웹사이트를 열어 보았습니다. 열어보니 그 웹사이트에는 어느 한 자매가 IS(Islamic State - 이라크 극단적 이슬람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고 있는 지역의 선교사 친구들에게 받은 두 개의 이 메일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두 매일 내용을 보니까 지금 IS가 점령한 지역에는 유엔은 모두 이미 철수했지만 그 선교사님들은 그곳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곳의 그리스도인 가족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들 피신 가는데 그 그리스도인 가족들이 남아 있는 이유는 그들의 자녀들이 순교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선교사님의 말에 의하면 IS는 아주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집집마다 방문하여 어린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부인하도록 강요하는데 지금까지 한 어린이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 아이들은 IS 사람들에게 머리를 베임 당해서 죽임을 당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IS 사람들이 개종을 거부한 아이들을 죽이면서도 그들의 부모들은 죽이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그 부모들도 그들의 자녀들처럼 순교할 각오로 그 지역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도 그 그리스도인 가족들을 위해 남아있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이 메일 내용 중 한 부분은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그들은 그곳의 그리스도인 가족들을 위해 남아있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그들 자신의 죽음을 초래한다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자녀들이 순교당하는 것을 본 부모들을 위한 사역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친구 선교사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이 시간, 이곳에서 그분의 목소리와 손이 되도록 부르신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런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도록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 주도록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 죽임을 당한 아이들처럼 하나님께서 부르신 다면 그들도 순교를 감당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지라도 그 상황을 극복해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없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믿음이 우리 안에 없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복음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고 싫어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반대하며 괴롭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보다 우리는 우리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어떠한 두려운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우리의 믿음(신앙)을 지키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입술로 전할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의 합당하게 생활을 하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 그리스도인으로 세움 받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이 주시는 용기로 담대하게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며 완수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