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빌립보서 120-26]

 

 

우리 사람들은 소망을 먹고 삽니다. 소망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먹고 마시며 일하며 하루하루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앞으로 나아질 꺼야’라는 소망을 가지고 기대하면서 현재의 역경과 고통스러운 환경을 이겨 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언젠가는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꺼야’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디며 인내하며 현실의 당면한 상황과 싸우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하루하루 견디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소망이 죽으면 우리는 비록 살아 숨 쉬고 있으나 죽은 자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리도 기대하고 소망했던 것마저도 끊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 같습니까?

 

오늘 본문 빌립보서 1장 20-21절을 보면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바로 “살든지 죽든지 내(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20절). 무슨 뜻입니까?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존귀하게 되게 하다’라는 말의 원어 헬라어의 의미는 ‘커지시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커지시게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커지시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면 그리스도가 커지시게 하기 위해선 바울 자신의 몸은 어떻게 돼야겠습니까? 작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씀을 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한 예를 들자면, 바울의 이름이 작아지고 낮아져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커지고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좀 더 성경적인 예는 바로 요한복음 3장 30절에서 사도 요한이 한 말입니다: “그는 흥하여야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분은 점점 번영해야하고 나는 점점 쇠퇴해야 한다”][(NIV) “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NASB) “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새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3절 가사가 생각납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2X).

 

실제로 바울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디모데전서 1장 12-14절을 보면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바울은 자기 같이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박해하던 폭행자, 즉 “죄인 중에 괴수”(15절)에게 주님께서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충성되이 여겨 그에게 직분을 맡기시되 이방인의 사도로 삼아주신 것을 생각할 때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사하므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섬기되 사도 바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길 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7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인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그는 모든 환난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생명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에게는 자기 생명보가 주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 즉 복음 전파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내러 가면서 비록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하여 자기 몸은 감옥에 갇혀서 매여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감옥에 갇힌바 된 것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알기를 원했기보다 자기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그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빌1:12). 그리고 그는 자기의 매임(옥게 갇힘)으로 인하여 도리어 매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복음 전파의 진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는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자기의 기쁨을 편지로나마 나눴습니다. 그런 후 바울은 오늘 본문 빌립보서 1장 20절에 와서는 자기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나눴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히(큰 용기를 가지고)(20절)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그것이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이요 그 사명을 신실 되게 감당하고 완수하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되게 하는 것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되게 하길 원했는가 하면 그는 “살든지 죽든지” 그리 되길 원했습니다(20절). 그가 그 정도로 간절히 원했던 이유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기 때문입니다(21절). 무슨 말입니까? 그는 현재에 나의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나의 죽은 후의 상태도 유익하기에 바울은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므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되게 하길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믿습니까? 만일 그리 믿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사도 바울처럼 당신은 현재 나의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죽은 후에 상태도 유익하다고 믿습니까? 만일 믿는다면, 당신도 사도 바울처럼 살든지 죽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므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되게 하려는데 생명을 다 할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빌립보서 1장 23절을 보면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그 둘 사이에 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3절). 여기서 그 둘 사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사는 것(22절)과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23절)입니다. 당신도 실제로 바울처럼 이 둘 사이게 끼었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한 쪽으로는 이 세상을 떠나 천국 가서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또 다른 쪽으로는 이 땅에 더 살아서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완성)해야지 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물론 저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우리를 이 땅에서 불러 가시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쩔 때는 그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 우리는 주님이 나를 좀 빨리 불러가셨으면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천국에는 주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이다(4절)라는 말씀이 생각나면 우리는 슬픔과 고통과 죽을 일이 쌓인 이 세상에서 더욱더 천국을 사모하게 되고 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 질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사는 것과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이 둘 사이에 끼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지 못하였습니다(빌1:22-23).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생각하면 그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이 땅에 육신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일이였기에 그렇게 하고 싶어 했습니다(23절). 그런데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서는 이 땅에 육신으로 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24절). 어떻게 바울이 이 땅에 사는 것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더 유익했습니까? 바로 바울의 존재가 그들에게는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for thei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25절).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 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존재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의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1문).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 할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빌2:8). 죽기까지 순종하되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인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자기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록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자기 자신은 감옥에 갇혀있었지만 도리어 복음 전파의 진전이 있다(12절)는 소식을 들으므로 그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였습니다(18절).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이 땅에 육신으로 있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24절) 그들과 함께 거할 줄을 확실히 안다고 말하였습니다(25절). 그리고 바울은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있으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의 자랑이 바울 자신으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길 원한다고 말하였습니다(26절). 즉, 바울은 자기가 빌립보에 가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함께 있으므로 자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들의 자랑스러운 기쁨이 넘치길 원하였습니다(26절). 이렇게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바울은 도리어 복음 전파의 진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바울 자신 때문에 기쁨이 넘치길 원했습니다. 이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의 진보로 인한 기쁨이요 또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로 인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우리에게도 있길 기원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4장 12절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한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래서 바울은 그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그가 복음을 전하길 원하였는가 하면 그는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현대인의 성경)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불행이 닥칠 것입니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가 자랑하고 싶었던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길 원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기에 그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왜 바울은 그리도 복음을 전하길 간절히 원했습니까? 왜 그는 그리도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생명을 걸고 헌신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는 자기가 받은 이 사명을 신실하게 잘 감당하므로 오직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빌1:20). 우리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신실하게 잘 감당하므로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새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3절).

 

 

 

 

살든지 죽든지 오직 주님의 뜻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의 생명보다 귀한 주님이 주신 사명에 붙들린바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