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마음에 있습니다.

 

 

 

[빌립보서 17-11]

 

 

당신은 당신의 마음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특히 그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심지어 이미 이 세상을 떠났다면, 당신은 그 분을 생각할 때 어떠한 추억이 떠오릅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 자녀들의 심비에 주님의 사랑의 추억들을 많이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죽어도 우리 자녀들이 자신들의 심비에 적힌 그 주님의 사랑의 추억들로 인하여 서로 사랑하며 또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주님 안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함께 주님의 일을 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언젠가 우리는 헤어져서라도 그 좋은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만남과 주님 안에서의 교제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러한 감사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허락하신 만남과 주님 안에서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가 있습니까?

 

지난주일 우리는 빌립보서 1장 1-6절 말씀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였는지를 2가지로 생각했었습니다: (1) 바울은 빌립보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나는 당신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3절). (2) 바울은 그들에게 ‘나는 당신을 위하여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항상 하나님께 간구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4절). 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항상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까? 그 궁극적인 이유는 물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은혜와 평강”, 1:2). 좀 더 구체적인 이유는 두 가지임을 배웠습니다: (1) 첫 번째 이유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5절). 동참하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그가 필요한 것을 물질적으로 후원하므로 그의 복음 전도 사역에 협력하였습니다(4:15-16). (2) 두 번째 이유는, 바울에게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 가운데 시작한 구원의 일을 반드시 완성하신 줄 확신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1장 7절을 보면 바울은 빌립보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그들을 향한 자기의 사랑 표현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 즉, 바울은 그들에게 ‘당신들은 내 마음에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because I have you in my heart). 과연 바울은 자기 마음에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어떻게 했는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아 우리도 우리 마음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실천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1장 7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3절). 그리고 그는 그들을 위하여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였습니다(4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이유가 세 가지임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1) 궁극적인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기 때문입니다(2절).

 

(2)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간구할 때마다 감사하며 기뻐하였던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동참하였기 때문입니다(5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자기의 필요한 것을 물질적으로 후원하므로 그의 복음 전도 사역에 동참한 것을 감사하였습니다(4:15-16).

 

(3) 세 번째 이유는, 바울은 진실하신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 가운데 시작하신 구원의 일(“착한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반드시 완성하실 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6절).

그런 후 바울은 오늘 본문 7절에 와서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바울은 그들에게 “여러분을 내가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7절). 그리고 그가 그들을 늘 마음속으로 생각할 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것입니다(3절). 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바울의 매임(감옥에 갇힘)과 복음을 변명함(변호함)과 확정함(증거 할 때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다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7절).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이 다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7절).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 하나님의 은혜란 먼저 우리가 이미 묵상한 5절 말씀대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되(the fellowship of the gospel) 특별히 그들이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었을 때 (“나의 매임”) 그가 필요한 것(쓸 것)을 채워주므로(참고: 4:15) 그의 복음 사역에 동참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당신들은 다 나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늘 마음속으로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으로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감사한 또 다른 이유는 바울의 복음 변명함과 확정함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다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1:7). 여기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다 함께 참여한 하나님의 은혜인 복음 변명함과 확정함이란 그들이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에 따르는 고통과 역경에 그들 또한 동참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1장 29절에 이렇게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던 이유는 그들이 다 바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전파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과 함께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기에 바울은 그들을 늘 마음속으로 생각할 때 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당신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중 이렇게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당신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들이 있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십니까? 당신이 그 사랑하는 사람들을 늘 마음속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으십니까? 저는 우리 교회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 마음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과 그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수고하며 어려움과 역경과 심지어 고난을 당하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은 미국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민족들에게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분들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주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 분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인생과 생명을 다 받쳐서 주님만을 섬기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을 복음 전파 사역에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과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시는 분들입니다. 우리고 그 분들을 본받아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1장 8절을 보십시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당신들은 내 마음에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당연)합니다. 그 이유는 당신들은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7절). 그런 후 오늘 본문 8절에 와서는 바울은 그들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당신들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십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 내용을 보면 우리는 조금이나마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얼마나 사랑하였는지를 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사랑을 이렇게 편지를 통하여 그들에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을 향한 자기의 사랑이 진실 된 것임을 표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내 증인이십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자기의 마음이 진실 된 사랑임을 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이웃 사랑이 진실 된 사랑입니까? 과연 우리는 우리 이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모해야 하는데 그 뜻은 무엇입니까? 그 뜻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갈망한다(yearn)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이웃을 갈망한다는 말은 한 2 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우리가 이웃을 갈망한다는 말은 우리는 이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측은히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 예레미야 31장 20절을 보십시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며 기뻐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책망하여 말씀하실 때마다 깊이 생각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측은히 여기십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내 창자가 들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내가 반드시 그를(우리를) 불쌍히 여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측은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우리 이웃을 사랑하며 사모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이웃을 불쌍히 여기며 측은히 여겨야 합니다.

 

(2) 우리가 예수님의 심장으로 이웃을 사모한다는 말은 이웃을 시기하기까지 사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4장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성경은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시기하기까지 사모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면서 우리 이웃을 사랑케 하시는데 이웃을 시기하기까지 사모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이웃을 사랑하며 사모함에 있어서 우리 이웃을 시기하기까지 사모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시기에는 나쁜 시기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웃과의 관계에서 있어야 할 좋은 시기가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를 향하여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시기로 우리는 시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 부부 사랑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1장 9-11절을 보십시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당신은 사랑하는 이웃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그것이 기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우리 이웃을 사랑하며 사모하되 그 이웃을 측은히 여기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이웃을 위하여 먼저 무엇을 하겠습니까? 바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아버지께 그 이웃을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기도하되 우리는 우리 이웃을 위하여 간절히 마음을 실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되 결코 한두 번만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 응답 받을 때까지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이 그리했습니다. 그는 그의 이웃인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4절). 간구하되 그는 그저 한두 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빌립보서 1장 4절을 보면 “간구할 때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항상 생각하였으며(3절) 그리고 생각할 때마다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가 그리 기도할 때마다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3절). 그리고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였습니다(4절). 그 이유는 그들이 첫날부터 그 때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5절). 그 뿐만 아니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할 때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확신이라 진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께서 이미 빌립보 교회 성도들 안에서 “착한 일”, 즉 구원의 일을 시작하셨기에 주님께서 완성하실 것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이러한 확신과 감사와 기쁨으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던 바울은 특히 그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간구한 내용은 바로 “사랑”입니다(9절). 어떠한 사랑입니까?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는 사랑입니다. 바울이 이러한 사랑을 위하여 기도하였던 목적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는 사랑을 구한 목적은 그들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길 간절히 원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길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박윤선).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진실하며 허물이 없길 바랬습니다(10절). 즉, 바울은 그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넘어지지 않길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박윤선).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의의 열매가 가득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11절). 그는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들로서 선행의 열매를 가득히 맺길 기도하였습니다(박윤선).

 

우리도 이러한 기도를 우리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이웃에게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주시길 간구해야 합니다. 간구하되 우리 이웃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진실하며 허물이 없는 그리스도인들로 세움을 받아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아드리는 우리가 돼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울처럼 ‘당신은 내 마음에 있습니다’라고 말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신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모하여 지금도 또한 앞으로 죽을 때까지 기도하는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내 마음에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지금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개야, 너는 내 마음에 있단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 있기에 주님께서는 늘 우리를 생각하시되 그 생각이 모래사장에 모래알보다 많을 정도로 무수히 생각하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를 무척 사모하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있는 자,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되어 한 영혼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기도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