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우리 목사님, 어떻게 반응해야죠?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마태복음 23장 3절).

 

 

직장에 가서 우리의 상관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요 교회 직분자임에도 불구하고 외식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요? 교회에 가서 우리의 목사님이 설교도 잘하시고 성경도 잘 가르치시는데 위선적인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집에 가서 우리가 사랑하는 아버지가 교회의 직분자로서 교회에 가서는 예수님을 믿는 거룩한 성도처럼 보이므로 교인들에게 칭찬을 받으시는데 집에 와서는 180도 다른 면을 우리 자녀들이 볼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어쩌면 우리는 그 외식하는 상관을 꼴 보기 싫어할 수도 있고, 위선적인 우리 목사님의 설교와 가르침이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아 교회를 옮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수도 있으며, 집에서 말로만 신앙생활을 바로 하라고 하시면서 자신은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매일 볼 때에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잃고 실망 가운데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외식하는 자’(예: 마 23:15)란 단어의 의미는 “배우”(an actor) 또는 “위선자”(a hypocrite)란 뜻으로서 가시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또는 위조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사전 WSNTDICT).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23장 3절의 문맥에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1) 첫째로, 외식하는 자는 말한 하고 행치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23장 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2절). 문제는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면서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가르치고 있었던 그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바리새인의 유전까지 첨부하여[“무거운 짐”(4절), 박윤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자기들은 행치 아니하였습니다[참고: 막7:1-1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의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버렸음)]. 그들이 이렇게 외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물론 그 원인은 그들의 교만이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은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들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롬2:21).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우리 교회 목사님들이나 선생님들의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는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성경공부를 준비하고 그랬을 때 우리 자신에게 그 묵상하는 말씀을 비춰보면서 부지런히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자기 자신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다른 형제, 자매들을 가르치므로 그들에게 ‘참 잘 가르칩니다’라는 식의 칭찬까지 받을 때에 스스로 좋은 선생인 줄 착각하므로(좋은 선생님은 주님 밖에 없건만) 더욱더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그 지체들을 열심히 잘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가르치는데에는 게을리 하게 되므로 마음이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은 잘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잘 가르치지 않는 신앙 패턴이 오래되면 될 수록 가르침과 실행의 간격(gap)은 더욱더 벌어져서 결국에는 ‘성경 배우’(Bible actor)가(연극배우나 영화배우처럼)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보니 나중에 가서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신앙생활을 흉내 낼 수밖에 없게 됩니다. (2) 둘째로, 외식하는 자는 자기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23장 5절을 보십시오: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되 특히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자(impressed)(헬라어 사전 BAGD) 옷에 달고 다니는 경문을 넓게 하였고 또한 입은 옷을 길게 하여 점잖은 표시를 가지려 하였습니다(5절, 박윤선). 이렇게 표시 나게 경문을 넓게 하고 옷을 입고 다녔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 받기를 좋아하되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았고(6절) 또한 대중 앞에서 높임을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7-10절). 그들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7절)을 좋아하였습니다. 참 심각한 교회 문제라 생각됩니다. 요즘 교회 안에서 저 같이 젊은 목사님들이 삼촌뻘 되시는 장로님들에게까지도 대접 받는 것을 원하고 기대하며 아예 그것이 몸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참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도리어 섬기려 오셨다는 성경 말씀(마20:28)을 설교하고 가르치면서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려하지 않고 도리어 섬김을 받는 것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더 이상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부끄럽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렇게 외식하는 우리 목사님들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과연 이렇게 위선적인 아버지를 보면서 자녀된 자로서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과연 이렇게 겉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다른(마23:25-28) 그리스도인 직장 상관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 세 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외식하는 우리 목사님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23장 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우리의 본능은 우리 목사님이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참고 참다가 더 이상 그 분의 외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그분의 설교나 가르침을 듣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모든 사람의 본능이 다 같지 않을 수도 있기에). 아무리 그 분의 설교나 가르침이 훌륭할지라도 (아니면 적어도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맞는 말씀일지라도) 우리는 더 이상 그 분을 존경할 수 없기에 우리 마음이 닫혀져서 그 분의 가르침을 거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은 본 받지 말아야 하지만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외식하는 목사님의 가르침이 성경적일 때 그 모든 성경적인 가르침은 듣고 지켜 행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순종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외식하는 우리 목사님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2장 21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우리의 본능은 외식하는 우리 목사님을 볼 때에 실망과 심지어 분노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그분을 정죄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그 분을 정죄하는 마음까지 들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유혹에 빠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유혹에 핵심에는 교만한 마음을 들게 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누구이관데 목사님을 정죄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 정도로 잘난 것입니까?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우리 목사님보다 더 경건합니까?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그 분보다 더 경건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우리에게도 그분처럼 경건의 능력보다 오히려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은 아닐까요? 왜 우리는 그 분을 우리의 영적 거울로 삼고 배우는 기회로 삼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배우고 또 배워야 합니다. 심지어 외식하는 목사님을 통해서도 배워야 합니다. 배우되 우리는 특히 그 분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또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도 그 분처럼 겉모습과 내면 모습이 다른 것은 아닌지, 혹시 우리도 그 분처럼 말만하고 행함이 없는 것은 아닌지, 혹시 우리도 우리 목사님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자아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외식하는 우리 목사님(아버님)과 달리 자기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들을 겸손히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23장 11-12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우리의 본능은 외식하는 목사님처럼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높으신 주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한데 우리의 죄악된 본능은 그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서 우리가 홀로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박사님”, “선생님”, “회장님”(사장님) 등등 칭함 받기를 좋아하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 명예욕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 칭하신 것만 해도 큰 은혜요 큰 영광인데, 우리가 “성도”라 부름을 받는게 큰 영광 아닌가요? 오히려 “목사님”, “장로님”, “안수 집사님”, “권사님”이란 호칭이 부담스럽지 않으십니까? 직분은 맡겨주셨는데 신실하게 감당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선적인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수치심 속에서 그러한 칭함을 받는게 하나님과 성도님들에게 죄송스럽지 않으십니까? (제 자신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휴~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빌2:5) 교회 형제, 자매들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6절) 오히려 내 자신을 비어(7절) 주님의 종으로서 그들을 나보다 낫게 여겨(3절) 그들을 섬겨야 하는데 왜 나는 이리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그들 가운데 높임을 받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 마음의 기도 제목은 주님 앞에서 설 때에 주님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마25:21)라는 칭찬 받고 싶은 마음으로 겸손히 그리고 묵묵히 형제, 자매님들을 섬기고 또 섬기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여 겸손히 그리고 신실하게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