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참된 제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장 26-27절).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다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배우고(learner) 또한 예수님을 좇는 자(follower)들입니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에게 무엇을 배우고 예수님을 어떻게 좇아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참된 제자 도를 배워서 예수님을 올바르게 좇아야 합니다. 과연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예수님을 어떻게 좋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자기 자신과 자기의 식구들의 생명까지도 미워합니다.

 

성경 누가복음 14장 26절을 보십시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볼 때 과연 우리가 예수님보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 식구들을 더 사랑하면서 예수님을 좇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을 좇는 우리는 사람을 낳는 어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에 있어서 사랑하는 가족 식구들로 인하여 그 부르심을 사양 (참고: 18-20절)한다면 성경은 우리는 능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에 있어서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 식구들을 미워할 정도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 식구들을 사랑하므로 예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하고 있다면 우리는 능히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선 사랑하는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우리 가족 식구들과 우리의 생명까지도 미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선 우리는 사랑하는 우리 가족 식구들과 심지어 우리 생명까지도 주님께 받쳐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보다 우리 가족 식구들과 우리 생명을 더 사랑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14장 27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볼 때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기를 거부하면서 예수님을 좇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길을 걸으시고 온갖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도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으면서 온갖 고난을 감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고난이 익숙하기보다 편안함이 익숙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좁은 길보다 넓은 길이 더 잘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보다 십자가 장식품을 매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 같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살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이시라도 예수님께서는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는데(히5:8)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불순종하는 모습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예산을 단단히 가지고 예수님을 좇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14장 28-32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볼 때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예산도 가지지도 않고 좇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좇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님께 헌당한다고 하면서 예배당을 건축하고자 하기 전에 건축 예산을 충분히 가지고 시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배당 기초만 쌓고 능히 예배당 건축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여러 교회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했지만 재정난을 겪으면서 성전 건축을 도중에 중단한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가 예산을 충분히 가지지도 않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좇겠다는 열정적인 마음으로만 주님 가신 길을 걷겠다고 헌신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끝까지 신실하게 좇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한 나라가 또 다른 나라와 전쟁함에 있어서 상대방 나라의 군인 숫자를 알아보고 과연 그 나라를 대적할 수 있을지 헤아려 불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대적 나라의 군인 숫자가 이십만 명인데 자기 나라의 군인은 십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상대방 나라를 능히 대적할 수 없을 줄 알고 대사를 보내 화친을 청할 것입니다. 만일 그 나라가 기드온의 삼백 명 군사 이야기만을 믿는답시고 군사 숫자가 상대방 나라보다 반 밖에 되지 않으면서 대적 나라와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믿음에서 나온 용기라기보다 무식함에서 나온 만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를 대적하러 오는 자를 우리가 대적할 수 있을지 먼저 헤아려 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즉, 주님은 우리가 예산을 단단히 가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산이란 것은, 확실한 소망을 위하여 확실한 희생을 결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단단히 희생할 결심(각오)을 하였습니까?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우리의 모든 소유를 버릴 각오를 하였습니까?(33절)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얻었고 그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과 더불어 모든 영적인 축복을 이미 받아 누리고 있을진대 우리는 그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모든 소유를 버릴 결심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자기 자신과 자기의 식구들의 생명까지도 미워합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예수님을 좇음에 있어서 예산을 단단히 가지고 예수님을 좇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올바르게 좇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로 세움을 받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