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비극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요한복음 18장 38절)

 

 

저희 교회는 새벽기도회를 시작할 때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먼저 합니다. 그 신앙고백을 보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그 문구에 대한 배경 이야기 가운데 오늘 본문 요한복음 18장 38절이 등장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네가 왕이 아니냐”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37절). 그 때 빌라도는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What is truth?)라고 물은 후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나는 그(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고 말했습니다(38절). 저는 요한복음 18-19장을 읽다가 이 빌라도가 18장 38절에서 뿐만 아니라 19장 4절 하반절과 6절 하반절에서도 자신이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했다고 반복해서 하는 말을 보고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한 빌라도는 자기 자신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한 이유는 진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38절).

저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시는 모습을 요한복음 18-19장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다가 두 부류의 사람들의 비극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의 비극이란 바로 빌라도의 비극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19:6)라고 외쳤던 유대인들의 비극입니다. 빌라도의 비극이란 로마법에 근거해서 볼 때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법에 근거해서 자기 자신을 볼 수 없었으므로 자기 자신에게서 죄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어떻게 진리를 모르는 자가 거짓을 알겠습니까? 어떻게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가 자신의 불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한 영혼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쳤던 유대인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빌라도와 달리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진 법에 근거해서 예수님을 볼 때 예수님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였기에 마땅히 죽을 죄를 지었다고 여긴 것입니다(7절). 즉,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여겼던 이유는 그들의 법, 그들의 관점에 근거해서 볼 때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로마법에 근거해서 볼 때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한 반면에 유대인들은 유대 법에 근거해서 예수님을 볼 때 십자가형이 마땅한 죄를 찾아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러나 빌라도나 유대인들이나 두 비극 모두 다 하나님의 진리의 법에 근거해서 자기 자신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입니다. 그들의 죄는 무엇입니까?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14:6).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진리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18:37).

저는 빌라도와 유대인들을 보며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비극이 있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진리를 믿고 아는 우리들에게도 비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극이란 진리가 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의 죄를 찾으면서 나 자신의 죄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의 크고 많은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8:37).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의 죄를 찾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이의 모든 죄를 찾으면서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기의(self-righteous)에 빠져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하며 예수님의 공로를 무가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여 우리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이 또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교회 밖에서의 비극보다 더 큰 비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