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곧은 그리스도인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슬러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구나!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치 아니하였느냐 외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사도행전7장51-54절).

 

 

고집이란 무엇입니까? 고집(固執)은 굽히지 않는 성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남에게 자기 생각을 능동적으로 제시하여 관철하기 위해서도 쓰이고,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 생각대로만 하는 경우에도 쓰입니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출32:10).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인간의 고집과 어리석은 거만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목이 곧다는 말은 목이 뻣뻣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멍에를 매는 소를 연상시킵니다. 소에게 멍에를 지우려고 하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멍에를 매기 싫어서 고개를 쳐들고, 목을 뻣뻣하게 하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오늘 성경 사도행전 7장 51절을 보면 ‘목이 곧고(stiff-necked)’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목이 곧은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 네 가지로 묵상을 해 보면서, 만일 우리가 목이 곧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 회개하는 기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목이 곧은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거스릅니다.

 

성경 사도행전 7장 51절을 보십시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슬러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구나.”

 

성경은 스데반을 재판하는 목이 곧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켜 “너희가 성령을 거슬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스데반의 연설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조상들처럼 성령님을 거역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모세와 그 이후 하나님께서 세운 지도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권고할 때 목이 곧은 그들은 성령을 거역했고 그들의 후손인 종교 지도자들도 계속해서 성령의 역사를 배척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여기서 성령님을 ‘거스르다(resisting)’는 성령님의 메시지와 그것을 전하는 메신저들을 거절함·반대함·적대시함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성령님을 거슬렀습니까? 그들의 조상들은 영적 순종함을 외적 예배로 바꾸었습니다. 이 말은 성령님의 메시지에 순종하기보다 겉으로 드려지는 예배로 대신하였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님의 메시지는 거절하면서 자기 종교적 만족을 누리고자 껍데기뿐인 예배에 헌신하였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님을 거슬렀습니까? 왜 성령님의 메시지를 거역하고 거절 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육적으로는 할례를 받았으나 그 심령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실상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기업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로서 율법이나 성전의 외형에 치중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송 받았을지라도, 하나님께는 칭찬 받지 못하는 육체적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영적 순종의 삶보다 육체적 종교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성령님을 거슬러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칭찬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롬2:28-29). 또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성령님을 대적하지 않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약4:7).

 

둘째로, 목이 곧은 그리스도인은 의인을 핍박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7장 5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스데반은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이 범한 죄와 더불어 그들이 범하고 있는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그가 드러낸 조상들의 범죄는 하나님께서 보내사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케 한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결국은 죽인 죄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보내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메시아의 오심이 성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자기의 연설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무죄성과 의로움을 강조하면서, 그 예수님을 죽게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적나라하게 들춰내었습니다. 스데반이 유대 민족의 근본 죄악의 정곡을 찌른 것입니다. 바로 메시아를 죽인 죄였습니다.

목이 곧은 그리스도인은 표면적 그리스도인으로서 내면적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합니다. 성령님의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거절한 채 자기 종교적 만족을 위하여 경건의 모양을 추구 하지만 경견의 능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교회를 세속화하면서 주님의 의를 나타내기보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 세우신 주님의 종들을 핍박하며 교회를 어지럽힙니다. 또한 마음으로 형제, 자매를 미워하므로 살인합니다(요일3:15). 우리는 불의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의롭다 일컬음을 받은 우리는 서로를 마음으로 미워하므로 살인죄를 범하기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로, 목이 곧은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7장 5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스데반은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본 죄악의 정곡을 찌르면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살인한 ‘너희’들이 천사가 전해 준 율법을 받고서도 이를 준수하지 않은 자들임을 지적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천사를 경유하여 주셨는데(갈3:19; 히2:2) 그 율법을 받고서도, 그 율법이 예언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 오히려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귀하게 여겨서 그 율법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묵상하면서도 그 율법의 핵심인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고 있습니다(사30:9).

우리는 어떠합니까?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지키고 있습니까? 찬송가 379장을 보면 우리는 모두 다 집을 짓는 자들로서 반석 위에 집을 짓던지 아니면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3절).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 듣고서 준행함을 말합니다. 반석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은 집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습니다(1절).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에 크게 무너집니다(2절). 과연 우리는 집을 잘 짓고 있습니까?

 

이번 주 어느 목사님을 만나 대화하면서 참으로 사탄이 우리 가정들을 공격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부의 갈등, 그 갈등을 보면서 자라나는 자녀들이 입는 상처와 아픔…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의 성숙도를 어떻게 잴 수가 있을까요? 누가 성숙한 그리스인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옥토의 밭과 같은 마음(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하며 또한 그 말씀을 듣고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러한 자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말씀의 흡수력이 부족하여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받아들인 말씀들을 즉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먹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훈련 중에 중요한 것은 ‘묵상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가운데 그 말씀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묵상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주신 깨달음이 있으면 그것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미루는 습관을 경계해야 합니다. 미루다보면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자는 결심 속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마지막 넷째로 목이 곧은 그리스도인은 분노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7장54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이것은 스데반의 연설을 듣고 있었던 종교 지도자들이 마음이 찔려 심히 분개하였음을 말해줍니다. 자기들의 조상들까지 들먹이면서까지 자기들에 죄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스데반의 연설을 듣고 종교 지도자들은 마음에 찔려 심히 분개하는 가운데 이까지 갈았습니다. 결국은 그들은 스데반을 죽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찔림을 받았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마음의 찔림의 긍정적인 반응은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에 찔려 결국 회개하므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행2:37).

둘째로, 마음에 찔림의 부정적인 반응은 마음에 찔려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분개하여 이를 가는 것입니다(5:33, 7:54). 여기서 첫 번째 긍정적인 반응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반면에 두 번째 부정적인 반응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에게 저주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저주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 지금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의 찔림이 있습니까? 그 찔림을 느끼고 회개합니까? 아니면 분노합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목이 곧은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에 찔림이 있다면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분노할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목이 곧은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비춰봅니다. 성령에 거스르고 있습니까? 의인을 핍박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분노합니까? 만일 우리의 양심이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우리는 목이 곧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