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송축하라

 

 

 

[시편 134]

 

 

저는 ‘하나님의 족한 은혜’(God’s sufficient grace)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익히 아는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에 근거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육체에 가시”(a thorn in my flesh)를 자기에게서 떠나기 위하여 주님께 세 번 간구하였을 때 주님께서 바울에게 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받은 바울은 하나님의 족한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여짐을 깨닫게 되므로 그는 도리어 크게 기뻐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육체에 가시를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간구하였지만 그 기도 응답을 받지는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을 받은 바울,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도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족한 은혜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 이유는 지난 주 목요일 저의 장인 어르신께서 수술을 받지 못하셨지만 이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고백하시면서 섬기시고 계시는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과 함께 오히려 감사하시면서 크게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크게 기뻐하시기가 쉽지 않으셨을 터인데 라는 생각 속에서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복음 성가 “좋으신 하나님”이 생각났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하나님의 족한 은혜는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그 다음 날 처형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오히려 찬미하였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족한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케 하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 134편 1절과 2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여기서 “송축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찬양”을 가리키는 단어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가 한 3개가 있습니다. 이 3 단어는 각각 다른 관점과 맥락 속에서 찬양의 의미를 조명하고 있습니다(인터넷).

 

(1) 첫 번째 단어는 힐렐”(hillel)입니다.

 

찬양을 뜻하는 구약어 중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로서 기본적인 의미는 ‘자랑하다, 칭찬하다’입니다. 이 동사는 사람을 칭찬하는 경우(창12:15, 삼하14:25;잠12:8)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경우에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이에 해당하는 신약의 그리스어 동사 아이네오(aineo)는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되었습니다.

 

찬양사역은 하나님을 자랑하여 높이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그 분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를 깨닫고 그것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하나님의 성품과 행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그것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표현됩니다. 그리고 찬양에는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의 성품과 행위에 부딪히면서 이러나는 감탄과 흥분, 감격, 자랑스러움, 환희 등이 수반됩니다.

 

(2) 두 번째 단어는 호다”(hodah)입니다.

 

종종 ‘감사하다’고 번역되지만, 그 기본적인 의미는 ‘고백하다’입니다. 이것이 해당하는 신약의 그리스어 동사 호몰로게오(homologeo) 역시 ‘고백하다’를 뜻합니다. 호다의 의미는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었거나 좋은 일을 해 주었을 때 보이는 반응인 ‘감사’와는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호다와 그 명사형 토다(생모)는 시편50편 14, 15절과 역대하 20장 21절에서처럼 종종 환난과 관련되어 나타납니다. 즉 호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선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그 자녀들을 보호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 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환난 너머로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과 놀라운 계획을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고, 상황은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찬양사역은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신뢰케 하는 사역입니다.

 

(3) 세 번째 단어는 베렉”(berek)으로서 오늘 본문 시편 134편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개역 한글 성경에는 이 단어가 주어와 목적어에 따라 세 가지로 번역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베렉’할 때에는 ‘복을 주시다’로 번역되고, 사람이 사람을 ‘베렉’할 때에는 ‘축복하다’가 되며, 마지막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베렉’할 때에는 ‘송축하다’로 번역됩니다. 여기서 송축이란 하나님을 축복한다는 의미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 혹은 증언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에서 말한 ‘호다’가 찬양이 두 내용, 죽 하나님의 성품과 행위 중 성품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베렉’은 하나님의 행위, 특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복에 대한 증언입니다. 또한 ‘호다’가 환난 중에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하여 고백하는 것인 반면, ‘베렉’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긴 것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34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움을 이긴 것에 대한 감사의 고백인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여호와의 모든 종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1절). 여기서 ‘여호와의 종들’이란 성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레위 지파 사람들(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 섬기되 이 레위 지파 사람들(제사장들)은 주님의 성소에서 밤에도 섬기고 있었던 주님의 신실한 종들을 가리킵니다. 지금 시편 기자는 이러한 신실한 주님의 모든 종들에게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 2절).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도우심을 받아 주님의 성소에서 신실하게 섬기고 있었던 하나님의 모든 종들에게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송축하되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 2절에서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권면의 말씀은 마음을 들어서 다시 말하면 전심으로 하나님께 송축(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박윤선).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복을 주신다고 오늘 본문 3절에서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3절)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시편 기자는 밤에도 주님의 성소에서 신실하게 섬기는 하나님의 모든 종들에게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권면하면서 또한 그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길 기원하였는데 여기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고 말씀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그의 모든 종들에게 복을 주실 만한 힘이 무안하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박윤선). 이 복을 주실 만한 힘이 무안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신실한 모든 종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송축하는 모든 하나님의 종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십니다. 어떠한 상황에 저와 여러분이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족한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숨질 때 되도록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기를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