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의 노래: 광야에서 부르는 찬양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편 633).

 

 

오늘 이렇게 찬양의 밤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희 교회 한국어 사역 찬양 팀에서 이렇게 ‘찬양의 밤’을 준비해서 여러분과 함께 마음 것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오늘 이 찬양을 밤을 위하여 준비하신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을 생각할 때 저는 오늘 찬양은 “광야에서 부르는 찬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들이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볼 때 광야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왠지 저는 그들의 마음을 바라볼 때 광야와 같은 메마른 곳에서도 참된 오아시스가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고자 애써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광야에서 부르는 찬양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이 광야에서 부르는 찬양은 마치 오늘 성경 본문인 시편 63편 3절에 나오는 다윗이 환난과 핍박 중에서 광야를 성소(예배당)으로 삼고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였던 것처럼 오늘 이 저녁에 찬양을 준비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은 주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찬양의 밤을 생각하면서 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인생을 여섯 개의 찬양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저는 소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말하는 “모태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것도 목사님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교회를 다녔겠죠.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한국 상계동에 있는 “상현교회”라는 곳에서 저의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 때 아버님이 섬기시던 그 교회를 다니면서 지금 뒤돌아 볼 때 생각나는 찬양은 바로 “돈으로도 못가요”입니다. 3절까지 있는 가사지만 1절 밖에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1절)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후렴)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제가 아직도 그 어린 나이에 교회를 다니면서 불렀던 많은 찬양 곡들 중에 이 곡이 잘 생각나는지…. 아마도 “돈”이라는 단어가 가사 1절 제일 처음에 나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리고 제가 한국 나이로 12살 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한인 타운에서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는 알파벳도 모르고 미국에 와서 다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시험 봐야 한다고 해서 울면서 단어 20개를 외운 기억이 납니다. 사춘기에 들어서서 미국에 와서 그랬는지 미국 삶에 적응이 늦고 문화, 언어 차이 등을 잘 극복하지 못하고 좀 힘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저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소이 말하는 방황의 시기를 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목사의 자녀였기에 일요일 교회 예배 는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제가 접하게 된 책들이 바로 김형석 씨와 김동길 씨의 책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책들을 읽으면서 저는 작은 철학자가 되어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과연 어떻게 해야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라는 식의 질문들을 수 없이 제 자신에게 던지면서 그 행복과 목적을 세상에서 찾고자 방황했습니다. 그 때는 제 삶의 암흑기(?)여서 그랬는지 지금 뒤돌아보면 그 때 제가 불렀던 찬양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대학교를 들어갔을 때 대학교 1학년 때 지금 이 장소에서 대학부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집회도 마지못해 목사 아들이니까 참석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집회 둘째 날인가 마지막 날 저녁에 강사 목사님이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예수님께서 남자만 5,000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제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강사 목사님이 성경에 나오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를 예수님께 받친 소년처럼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받칠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했는데 제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왜 그리 눈물이 많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왠지 머리로만 듣고 알았던 예수님을 만나니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제 자신이 의도적으로 알면서 범했던 모든 죄악들이 생각나면서 그저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싶었습니다(회개의 눈물). 그리고 그저 감사했습니다. 저 같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 밖에 안 되는 존재를 부르시사 쓰시겠다고 하시니 그저 감사했습니다(감사의 눈물). 그리고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역사하셔서 저의 인생을 주님께 바치게 하셨습니다(헌신의 눈물). 그 때에 저는 목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어서 신학교 갈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저의 대학 공부 목적은 “돈”이였는데 그 수련회 후로는 저의 목적은 “예수님”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지금까지 즐겨 부르게 된 찬양이 바로 “나의 모습, 나의 소유”란 곡입니다. 영어로는 “I offer my life”, 즉 ‘나의 삶을 받칩니다”입니다:

 

(1절) “나의 모습 나의 소유 주님 앞에 모두 드립니다.

모든 아픔 모든 기쁨 내 모든 눈물 받아주소서

(2절) 어제 일과 내일 일도 꿈과 희망 모두 드립니다.

모든 소망 모든 계획 내 손과 마음 받아주소서

(후렴) 나의 생명을 드리니 주 영광 위하여 사용하옵소서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주를 찬양하여 기쁨의 제물 되리

나를 받아주소서 나를 받아주소서”

 

이 찬양이 그 때부터 해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제가 죽을 때까지 제 심비에 더욱더 깊이 적힌 마음의 찬양입니다. 제가 그 후로부터 기타 치는 것을 혼자서 스스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주말마다 대학교에서 Los Angeles로 올라와서 친구들을 만나곤 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제 삶을 예수님께 받치고 나서부터는 이젠 더 이상 주말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 먹고 담배피면서 파티 다니고 놀로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전에는 양심에 찔림이 있어도 무시하고 계속해서 죄책감 속에서도 방황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여기 교회 식탁에 슬리핑백을 깔고 자기에 앞서 교회 밖에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친구들이 지금 쯤 어디에 있겠지 등등 생각하면서 외로움 속에서 기타를 스스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때 복음성가 집 책 맨 뒷면에 기타 코드를 어떻게 잡는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보면서 D 코드, G 코드, A 코드 등 배우기 시작해서 처음으로 제가 스스로 기타를 치면서 부르기 시작한 찬양이 바로 “좋으신 하나님”이였습니다. 그 곡은 기타 코드라 제일 간단했거든요. 하하.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나니까 대학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기독교 동아리에서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셔서 그 때 제가 Personal manager로 형제, 자매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Personal manager이란 뭐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때 당시 비퍼(beeper) 차고 다니면서 연락 오면 제가 그들에게 전화해서 그들이 차가 없으니까 여기 저기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그랬습니다. ㅎㅎㅎ 마켓에도 데려다 주고 교회 기도하러 간다고 하면 데려다 주고 다시 기숙사로 데려주고 ㅎㅎㅎ 그 때 사람들을 돌보다가 몇몇 자매하고는 이성감정까지 들어서 그 감정을 억제하고 섬기느라 참 힘들었습니다. 저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안 사실은 저를 또 짝 사랑했던 자매도 있었더군요. ㅎㅎ 그 때 제가 심리학 공부하면서 그리고 자매들을 섬기면서 마음으로 깊이 배우게 된 단어가 바로 “suppression”(억제)하고 “rejection”(거절)’이란 단어였습니다. ㅎㅎ 그 때 몇 번이고 자매들에게 거절당하면서 배우게 된 영어 찬양이 있습니다. 바로 Benny Hester란 사람의 “Nobody knows my like you”(하나님, 당신만큼 저는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찬양 이였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용기내서 자매 사랑에서 이성 감정이 든 자매에게 제가 한 마디 듣고 상처 입어서 기말 시험 기간에 시험공부 접고 혼자 차타고 바닷가에 가면서 창문을 열고 그 노래를 크게 틀고 크게 외쳐 불렀던 때를 … ㅎㅎㅎ 그 때 이 찬양의 가사 중 특히 후렴이 많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Nobody knows me like You (하나님, 당신만큼 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You put Your arms around me (당신은 당신의 팔로 저를 감싸셨습니다)

You bring me through (당신은 저를 도와주시사 극복하게 하셨습니다)

And there's many times I don’t know what to do

(그리고 너무나 많은 때에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를 때)

Though some know me well (저를 좀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Still nobody knows me like You (그래도 당신만큼 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All of my secrets to You I tell (저의 모든 비밀들을 당신께 말합니다)

You saw each time that I slipped and fell

(당신은 제가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것을 다 보셨습니다)

And all of my faults yes, You know them well

(그리고 당신은 저의 모든 실수들을 다 잘 알고 계십니다)

But You’ve never turned me away, no, no, no”

(그러나 당신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강도사 때 지금 아내를 하나님께 만나게 하셨습니다. 아직도 기억하고 마음에 있는 찬송가는 저희 결혼식 때 불렀단 찬송가 492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입니다:

 

(1절)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2절) 세상 부귀 안일함과 모든 명예 버리고

험한 길을 가는 동안 나와 동행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3절) 어둔 골짝 지나가며 험한 바다 건너서

천국 문에 이르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아멘.

 

그 때 이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면서 저나 아내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가 잊지 못하는 찬양은 첫째 아기가 죽고 나서 화장을 한 후 뼛가루를 뿌리고 돌아오면서 하나님께 불렀던 찬양입니다: 그 찬양은 “My Savior’s love for me”(날 향한 주의 사랑) 혹은 “I Stand Amazed”(예수의 임재 앞에 놀라움으로 서 있네)라는 영어 찬양입니다:

(1절) I stand amazed in the presence Of Jesus the Nazarene,

And wonder how He could love me, A sinner, condemned, unclean.

(예수의 임재 앞에 놀라움으로 서있네 이 부정한 죄인을 어찌 사랑 하시는지!)

(2절) For me it was in the garden He prayed: “Not My will, but Thine.”

He had no tears for His own griefs, But sweat drops of blood for mine.

(내 뜻이 아닌 주의 뜻대로 겟세마네 기도했네

자신을 위한 선택 없이 날 위해 그 피 흘렸네)

(3절) In pity angels beheld Him, And came from the world of light

To comfort Him in the sorrows He bore for my soul that night.

(천사들 연민 하던 때에, 세상의 빛으로 우리 슬픔 맡기 위해 그 밤에 날 감당했네)

(4절) He took my sins and my sorrows, He made them His very own;

He bore the burden to Calvary, And suffered and died alone.

(나의 슬픔 나의 죄를 자기에게 감당했네 갈보리 고난당하고 홀로 십자가 지셨네)

(5절) When with the ransomed in glory His face I at last shall see,

’Twill be my joy through the ages To sing of His love for me.

(영화되어 승리하고, 그를 보게 될 그 날까지

기쁘게 부를 찬양제목 날 향한 주의 사랑)

(후렴) O how marvelous! O how wonderful! And my song shall ever be:

O how marvelous! O how wonderful! Is my Savior's love for me!

(오 놀라워, 오 놀라워 내 노래 멈출 수 없네

오 놀라워, 오 놀라워 날 향한 내 주의 사랑).

 

저는 찬양의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 찬양의 능력이란 한 예로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바울과 실라라는 하나님의 종들이 감옥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을 때(행16:25)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것처럼(26절) 저는 오늘 이 밤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의 찬양이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사 이 세상에 매인 모든 것들이 다 벗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이뤄지길 기원합니다. 더 아가서, 바울과 실라 등을 지키던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생각하고 자결하려다가(27절) 바울을 통하여 주 예수님을 믿어 그와 그의 온 가족 식구들이 다 하나님을 믿어 크게 기뻐하였던 것처럼(31-34절) 오늘 밤 광야에서 부르는 찬양들로 말미암아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이뤄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숨질 때 되도록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