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의 노래(2):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습니다.’

 

 

 

[하박국 316-19]

 

 

지난 주 사랑하는 저의 멘토가 되시는 목사님의 두 번째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 책 제목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묻습니다"인데 그 책에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인물들에게 던지신 22가지 질문들 중심으로 책을 써 내러 갔습니다. 그 한 예로, 저자는 책의 첫 장에서 창세기 3장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첫 인간이 아담에게 던지신 최초의 질문인 “네가 어디에 있느냐?”(9절)라는 말씀 중심으로 글을 써 내러 갔는데 그 글 내용 중 한 부분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의 책임을 반드시 물으십니다. ‘왜 불순종하며, 왜 교만했으며, 왜 내 뜻을 거슬렀으며, 왜 범죄했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고 책망하시고 징벌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을 찾아서 책망하신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찾아내셨고, 불순종하고 도망가던 요나를 풍랑으로 잡아내셨고, 범죄하고 은폐하려는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의 불신앙과 불순종과 불의와 모든 범죄를 책망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만드십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의 책임을 반드시 물으”신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죄를 범한 우리를 하나님께 찾으시고 책망하시고 징벌하셔서 결국에는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십니까?

 

우리는 이미 하박국 3장 2절 말씀 중심으로 하박국의 노래인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란 제목 아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 메시지 내용은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노래로 간구하되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였습니다(2절).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나서 우리는 하나님께 “부흥”이라는 복음성가를 찬양하면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진리의 말씀 이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오늘 저는 계속 이어서 하박국 3장에 나와 있는 하박국의 노래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특히 저는 오늘 본문 하박국 3장 18절 말씀 중심으로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한 2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어떠한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고 헌신하였습니까?

 

하박국 3장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박국 선지자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고 헌신한 상황은 그가 “환난 날”(the day of distress)을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그 “환난 날”이란 무엇입니까? 그 환난 날은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께서 바벨론 사람들을 일으켜 유다 백성들을 심판(징계)하시는 날입니다(1:6ff.). 우리가 이미 하박국 3장 2절 말씀 중심으로 하박국의 첫 번째 노래인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를 묵상하면서 배운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간악하고 패역하며 겁탈과 강포와 변론과 분쟁으로(1:3) 하나님께 죄를 범하되 하나님의 율법 지키는 열심히 식어진(4절)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 사람들을 일으켜(6절)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 유다 백성들에게 성취되면 유다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 하박국 3장 17절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결국 바벨론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땅에는 농작물과 가축이 전연 없어질 것을 하박국 선지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는 잠잠히 하나님의 예언 성취를 기다리면서 그러한 상황에서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헌신한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박국 선지자는 바벨론 나라가 유다 나라를 침략해서 멸망시킬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잠잠히 그 날을 기다릴 수가 있었을까요? 전쟁으로 인하여 모든 농작물과 가축이 다 없어지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그는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헌신할 수가 있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풍성한 “축복” 속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저와 여러분은 구약 성경 욥기 서에 나오는 욥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재앙”으로 말미암아(욥2:10) 물질도 다 잃고 자녀들도 다 잃을지 라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헌신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하나님의 축복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여정에 허락하시는 역경이나 위기 가운데서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원인이 적어도 한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그 첫 번째 원인은 우리가 우리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만이 간절히 이뤄지길 원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장 1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였습니다. 왜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8절). 다시 말하면, 바울이 그리도 원했고 이루어 드리고 싶었던 주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바울은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쳐해 있을지라도 그 상황을 통해서라도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이뤄질 수만 있다면 우리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해야 할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2)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여정에 허락하시는 역경이나 위기 가운데서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더 큰 원인은 우리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즐거워하며 기뻐하기보다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즐거워하며 기뻐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한 대로 응답해 주심에 익숙하지 우리의 기도를 전혀 기대 밖으로 응답해 주심에는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우리의 기대 밖에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인하여(그것이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라는 사실조차도 부인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더욱더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슬픔과 눈물 속에 잠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자들입니다(참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1). 다시 말하면, 어떠한 상황에 쳐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행하심보다 하나님의 존재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만이 이뤄지길 원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아가며 하나님을 즐거워하기에 환난과 핍박당하는 중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기뻐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저와 여러분의 기쁨이요 즐거움이 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승천하심 그리고 재림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조차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하나님, 저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습니다’라고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살전 5:16).

 

마지막 둘째로, 왜 하박국 선지자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한 이유는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3장 18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사람들을 일으켜 유다 백성들을 심판(징계)하시는 환난 날을 잠잠히 기다리고 있었던 하박국 선지자는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 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징계하시는데 도구로 사용한 바벨론을 심판하시되(2:2-20) 마치 출애굽 당시에 홍해 바다 앞에서 개선장군처럼 병거를 타고 오셔서(3:8)바로 왕과 애굽 군대를 심판하시므로 주님의 백성, 곧 기름 받은 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던 것처럼(13절) 하박국 선지자는 동일하신 구원의 하나님께서 바벨론 사람들을 심판하시므로 유다 백성들을 구원해 주실 줄 믿었기에 그는 “나의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헌신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장차 바벨론과 같은 사단을 심판하시사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천국 보좌 앞에 나아가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하나님께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복음성가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를 찬양하십니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린 구원받았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 같이 온 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받고 주 경배드리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2)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3장 1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사람들을 일으켜 유다 백성들을 심판(징계)하시는 환난 날을 잠잠히 기다리고 있었던 하박국 선지자는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는 “나의 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나의 힘”이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연약한 유다 백성들을 그들보다 훨씬 더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시18:17)들인 바벨론에게서 건지실 줄 믿었기에 그는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습니다’라고 헌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께서 사도 바울에게 이르셨던 말씀 또한 생각납니다: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후12:9).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9-10절).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성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를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양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1절)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의 책 “두려움에서 믿음으로”(Fear to Faith)에서 이러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으며 가장 나쁜 상황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 이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 지옥과 같은 환경이 펼쳐지고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 상황이 그보다도 더 나빠져 갈 때, 우리는 그저 침착하게 참고 견디는 것 이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기쁨을 깨닫고, 그 기뻐하는 마음을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합니다. … 우리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떠한 환난과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나의 구원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예수님으로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의 구원이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로 헌신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