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의 노래(2):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노래하십시다!

 

 

 

[민수기 2318-24]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축복이란 무엇입니까? 한국문화는 실로 복의 문화이며, 한국인의 생활은 복을 빌고 복을 얻기 위해서는 수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복을 빌러가는 게 한국문화의 전통입니다. 한국문화의 특색은 壽(목숨 수, 장수)와 福(행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집 대문 손잡이로 부터, 문갑, 은수저, 옷 무늬, 베개 모, 방석, 밥주발 등과 같은 데에다 복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셋집 한 칸을 마련할 때에도 복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지 福德房(복덕방)을 찾아 가게 마련입니다. 한국인들은 또한 오복인 수(장수의 복), 부(물질의 복), 강녕(평안의 복), 유호덕(훌륭한 덕을 닦음, 그리고 고종명(제명에 죽는 것)을 중요시 여겼습니다(인터넷). 실제로 구약성경 율법서나 시가서나, 예언서에서의 축복을 살펴보면서 많은 경우에 있어서 축복이 지상적인 번영, 부, 명예, 장수, 후손 등의 표면적으로 드러나서 육체적이고 물질적이며 현세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성경을 보면 신약 성경의 축복은 내면적이고 정신적이며 또한 영적인 동시에 미래 지향적이어서 종말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의(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과 장차의 부활과 영생이 곧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인터넷).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신. 구약 성경에서의 축복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전면에 부각되고 있는 내세적이고 영적인 축복과 둘째, 영적인 신양을 추구할 때 하나님의 은혜의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뒤따를 수 있는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축복을 들 수 있습니다(인터넷). 다만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구약성경상의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지킬 때 따라오는 축복으로서 다분히 조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신약 성경상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물질적인 축복 외에 신령한 영적인 축복이 강하게 강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또한 의를 위해 고난 받는 자의 축복을 자주 언급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5장 10-12절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과연 저와 여러분은 의를 위해 고난 받는 자의 축복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성경 민수기 23장 18-24절을 보면 우리는 발람의 두 번째 노래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노래 내용 부분 중 20절을 보면 발람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발람의 노래(2):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노래하십시다!”라는 제목 아래 이 발람의 두 번째 노래를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겸손히 받기를 원합니다(박윤선 주석 참조).

 

첫째로, 발람의 두 번째 노래는 하나님의 진실성(신실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3장 19절을 보십시오: “하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이 성경구절은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의지케 만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 자신이 연약하여 제 자신과 환경을 바라보면서 낙심 될 때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고 마음을 바꾸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기에 나에게 말씀하신 바를 꼭 실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에 힘을 얻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민수기 23장 19절을 묵상할 때 성령님께서 종종 제 마음에 생각나시게 하는 성경구절은 바로 디모데후서 2장 13절입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If we are faithless, He remains faithful, for He cannot deny Himself). 제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불신앙 속에서 의심하며 하나님 앞에 불성실할 때 민수기 23장 19절과 더불어 이 디모데후서 2장 13절을 묵상하게 될 때 ‘나는 불성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실하시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으시니까 내가 불성실하여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에 신실하실꺼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제 자신의 불성실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저로 하여금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제 영혼을 장려하시고 힘을 주시고 소성케 하심을 경험할 때가 참 많습니다(시138:3). 오늘 본문 민수기 23장 19절 말씀을 묵상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또 생각나게 하시는 성경구절은 바로 이사야 55장 11절입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이 얼마나 힘이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입을 여시사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약속의 말씀은 다시 헛되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고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힘과 소망을 줍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나의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나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이루실 것이야’라는 믿음과 확신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믿음과 확신을 저에게 주시므로 위로해 주시고 힘주실 뿐만 아니라 참고 견디며 인내하게 만드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분명한 성취라는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민수기 23장 19절에서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노래를 지어 말한 이유는 모압 왕 발락이 그리도 저주하고 싶고 저주케 하고 싶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들이기에(22:12)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고(창12:1-3) 그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을 시켜서 하나님께 복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케 하려고 한다 할지라도 발람은 그들을 “온전히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11절).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이미 묵상한 발람의 첫 번째 노래를 보면(23:7-10)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선택하신 그 백성들을 구별하시고 번성케 하시되 그들의 사분지 일만을 보고도 티끌 같이 많은 모습을 보고 참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복 받은 백성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발람은 하나님의 축복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온전히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11절). 그 모습을 보고 모압 왕 발락은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11절)라고 말했을 때 발람은 발락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12절). 발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입에 주신 말씀만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했을 때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소빔 들로 인도하여 비스가 꼭대기로 데리고 갔습니다(14절). 그 이유는 발락의 생각에는 발람을 그리고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을 다 보지 못하게 하고 오직 이스라엘 진의 한 쪽 끝만 보이게 한 후(13절) 이스라엘을 저주케 하려는 계획이었음. 그리고 발락은 거기서 일곱 단을 쌓고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드렸습니다(14절). 그 때 발람은 발락에게 “내가 저기서 여호와를 만날 동안에 여기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15절)라고 말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임하사 그의 입에 말씀을 주어 “발락에게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절). 그리고 나서 발람은 노래를 지어 발락이게 말하였는데 그 노래의 첫 번째 부분의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 19절로서 하나님의 진실성(신실성)을 노래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불성실한 발람을 통하여 복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케 하고 싶었던 모압 왕 발락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진실성(신실성)의 노래 내용을 듣게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저주케 하여 그들을 쳐서 이기려고 한 모압 왕 발람에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선택하여 구별한 복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길 수 없다는 확고한 메시지와 더불어 거짓된 선지자 발람이나 거짓된 왕 발락은 하나님께 패하여 결국에는 심판을 받을 것을 예고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신실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심에도 신실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심판하심에도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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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히브리서 10장 2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미쁘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미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실 것이라는 소망을 굳게 잡고 요동하지(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이 시간 찬송가 447장 “오 신실하신 주”를 다 함께 하나님께 찬양 올려 드리겠습니다: (1절)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 없네 그 사랑 변챦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2절)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하나로 드러낸 증거 신실한 주사랑 나타내네, (3절) 내 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 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후렴)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 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둘째로, 발람의 두 번째 노래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3장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불변하심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그의 신적 존재와 자신의 완전성에 있어서 영원히 동일하시며, 자신의 목적과 약속에 있어서도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인터넷). 예를 들어 성경 야고보서 1장 17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 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변함도 없으시”다(who does not change)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분으로서 옛 부터 많이 사용되었던 “해시계(왕하20:11; 사38:8)와 달리 하나님은 마치 움직임 없이 해시계의 정 중앙에서 계속 빛을 비추고 있으므로 시계 바늘 자체도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인터넷). 그래서 구약 성경의 마지막 권인 말라기 3장 6절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여호와는 번역지 아니하나니 …”(I the LORD do not change). 그리고 신약에 와서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이 변함없으신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임하사 그의 입에 말씀을 주셨기에(민23:16) 발람은 노래를 지어 모압 발락에게 이르기를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I have received a command to bless; he has blessed, and I cannot change it)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이 사실에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뜻하신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축복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주시되 어느 누구도 그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신적 존재가 변함이 없으시기에 그 변함없으신 신품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The unchangeableness of the divine purposes is a necessary consequence of the unchangeableness of the divine nature)(Keil).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히브리서 6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13절)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14절)는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하나님께서 맹세로 보증하셨다는 말입니다. 맹세하시되 하나님께서는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13절). 그렇게 맹세하신 바를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변함이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보다 더 좋은 약속으로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의 말씀을 이미 약 2,000년 전에 성취하셨습니다. 성취하시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시사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시고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할 수 있도록 중생케 하시고 보배로운 믿음을 주시사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게 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을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이 사실은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신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우리를 저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가 214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라는 노래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1절)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우리다 찬양을 합시다 주님을 만나볼 때까지, (2절) 우리를 깨끗케 한 피는 무궁한 생명의 물일세 생명을 구원한 성도들 하나님 찬양을 합시다, (3절) 주님의 깨끗한 보혈을 날마다 입으로 간증해 담대히 싸우며 나가세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4절)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 머리에 면류관 쓰고서 주 앞에 찬양할 때까지, (후렴) 예수는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마지막 셋째로, 발람의 두 번째 노래는 이스라엘의 행복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3장 21절부터 보면 발람의 이스라엘의 행복에 대하여 한 3가지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행복은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23장 2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허물과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은 자는 바로 하나님께 행복을 받은 자입니다. 로마서 4장 6-8절을 보십시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주님께서 인정치 아니하시기에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불법과 죄를 가리움을 받고 사하심을 받았기에 저와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가 씻겨지고 사함을 받았기에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행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찬송가 210장 “내 죄 사함 받고서”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1절)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길 이요 주의 피로 내 죄를 씻었네, (2절) 주님 밝은 빛 되사 어둠 헤치고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내가 주 앞에 온전케 됨은 주의 공로를 의지함일세, (3절) 내게 성령 임하고 그 크신 사랑 나의 맘에 가득 채우며 모든 공포 내게서 물리치시니 내 맘 항상 주 안에 있도다, (후렴)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어라.”

 

(2) 이스라엘의 행복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행복입니다.

 

민수기 23장 2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방인 나라들처럼 왕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사랑하사 선택하여 구별하여 자기의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은 용사의 하나님으로서(출15:3)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대신 싸우시되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승리케 하시되 민수기 23장 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되 강한 힘으로(능력으로) 애굽 왕 바로와 그의 군대의 손에 서 건져내시사 바로 왕 뿐만 아니라 애굽의 모든 신들과 싸워 승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묵상한 요한계시록 15장 3절 하반절에 나와 있는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내용 부분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것을 보면 장차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가 홀연히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왕권을 찬송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실 하나님이시요 그분은 전능하시며 친히 큰 권능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 만국의 왕이신 주 하나님은 공의로우시사 불의를 행하는 죄인들에게 진노하시사 그들을 심판하시되 그는 또한 참되셔서 의롭다 칭하신 성도들에게 약속하신바 구원을 완성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구원의 완성으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은 하늘의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왕권을 노래하되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라고 이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계15:3).

 

(3) 이스라엘의 행복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23장 23절을 보십시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지금 점술가 발람은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되 자기와 같은 점술가의 어떠한 사술이나 복술로도 해할 수 없도록 보호해주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하시고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대신 싸우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할 것이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것임을 발람은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람은 오늘 본문 24절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하매.”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은 마치 사자같이 일어나 그들의 원수들을 무찌르되 전멸시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참고: 민24:9)(Walvoord).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를 믿음으로 찬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절)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2절) 어려워 낙심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3절) 너 쓸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4절)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은 불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축복을 돌이키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하실 수도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진실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축복하여 주시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또한 우리의 왕이 되시사 우리를 다스려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다 일어서서 복음성가 “축복의 사람”을 찬양하십시다!

 

 

 

 

변치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