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요한계시록 152-4]

 

 

새해를 맞이하여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는 표어를 걸고 지금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는 노래들 중 모세의 두 노래들을 묵상했었습니다. 그 모세의 두 노래들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모세의 첫 번째 노래인 승리(구원)의 노래(출 15:1-18)를 통하여 우리는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양해야 하며(1-2절),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찬양해야 하며(3-12절) 그리고 (3) 또한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에게 행하실 일을 찬양해야 합니다(13-18절). 그리고 모세의 두 번째 노래인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신32:1-43)를 통하여서는 한 다섯 가지 교훈을 받았습니다: (1) 우리가 하나님께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과(1-6절),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8-9절) 우리를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단련시켜 주고 계시기에(10-12절) 우리는 찬양해야 하며, (3)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우리의 배교로(15-18절)인하여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19-27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28-34절)을 인정하는 노래를 하나님께 불러야 하며, (4)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능력을 없애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우상과 죄악들로부터 떠나게 하신다는 사실과(35-38절) 그렇게 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수들을 심판하신다는 것(39-42절)을 찬양해야 하며 그리고 (5) 우리가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심판하셨고 교회를 속죄하셨기에 우리는 즐거워함으로(43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15장 2-4절 중심으로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란 우리가 이미 묵상한 출애굽기 15장 1-18절에 나와 있는 모세의 첫 번째 노래를 가리킵니다. 오늘 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아 순종하길 원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온 승리교회 식구들이 저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다 함께 부를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누가, 어디서 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장차 부르게 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5장 2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이 말씀을 보면 장차 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사람들은 바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은 누구입니까? 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장차 부르게 될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짐승”(the beast)인 사단의 적그리스도를 이기고 끝까지 모든 핍박과 환난을 견뎌낸 최후의 승리자들입니다(MacArthur). 이 최후의 승리자들은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의 승리의 백성들입니다. 승리케 하시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와 인간을 우상화한 그 적그리스도의 우상들에게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2절, 박윤선).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짐승의 수 곧 적그리스도의 수(“그의 이름의 수”)인 “육백 육십 육”(13:18)을 이마에나 오른 손에(16절) 소유하지 않게 하시사 최후 승리를 얻는 승리자들로 하여금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장차 부를 승리자들 중 좋은 예가 바로 다니엘 3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입니다. 그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만든 금 신상(단3:1)에게 절하지 않으므로(14, 18절)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진바 된 자들(20절)입니다.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 이다 그리 아니하실 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16-18절). 이 얼마나 귀한 믿음이요 신앙입니까?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진바 될지라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이 만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능히 건져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져주시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떠한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자기들의 생명을 내놓을지언정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믿음과 각오를 보십시오.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장차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5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무슨 예언의 말씀입니까? 사단의 적그리스도의 역사로 인하여 앞으로 더욱더 적그리스도와 인간을 우상화한 그 적그리스도의 우상들에게 절하고 경배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그 적그리스도와 그의 우상들에게 절하지도 말고 경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어떠한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최후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장차 부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찬송가 135장 “갈보리산 위에” 4절과 후렴이 생각났습니다: (4절) “주가 예비하신 나의 본향 집에 나를 부르실 그날까지 험한 십자가를 항상 달게 지고 내가 죽도록 충성하리” (후렴)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우리 승리교회 식구들이 연합 예배드릴 때 마다 성찬식 후 이 찬송을 다 함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곤 했는데 여러분은 이 찬양을 노래할 때마다 특히 이 4절과 후렴을 부를 때 어떠한 각오나 헌신을 하십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험한 십자가를 항상 달게 지고 내가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라는 각오와 헌신을 하십니까? 과연 우리는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죽도록 주님께 충성하겠습니라는 각오와 헌신하는 마음으로 이 찬송가를 부르십니까? 우리는 주님의 험한 십자가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달게 지고 순교할 각오로 신앙생활을 하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를 붙드는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승리케 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주님께서 승리케 하신 자들이 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어디서(where?) 장차 부르게 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15장 2절을 보면 성경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 그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유리바닷가”란 어디입니까? 요한계시록 4장 6절을 보십시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이 말씀에 근거하여 John MacArthur 목사님은 요한계시록 15장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유리 바다 가”(the sea of glass)란 바로 하나님의 천국의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이 투명한 크리스털(유리)로 된 플랫폼(platform)이나 포장지역(pavement)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MacArthur).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차 승리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가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른 장소가 하나님의 천국 보좌 앞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상이 되십니까?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주님께서 승리케 하시사 구원하여 주신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부른다는 것이 상상이 되십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복음성가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란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린 구원받았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 같이 온 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받고 주 경배 드리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이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이렇게 거룩한 주일, 주님의 거룩한 전에 올라와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의 공로 의지하여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둘째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장차 우리가 하나님의 천국 보좌 앞에서 부를 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의 내용은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3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1)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찬송합니다.

 

요한계시록 15장 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 우리가 이미 묵상한 출애굽기 15장에 나와 있는 모세의 첫 번째 노래를 보면 용사이신 하나님께서(출15:3)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시되(14:25)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시사(15:1, 4)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10절) 하나도 남김없이(14:28) 다 진멸하셨습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30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15:2)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출애굽기 15장 6절 와서는 그들이 이렇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애굽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영광을 목격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14:31)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의 두 번째 노래인 신명기 32장 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능력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원수인 애굽 사람들을 심판하신 능력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경험한 자들로서 좀 익숙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능력은 좀 들 익숙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묵상한 모세의 두 번째 노래인 신명기 32장 40-41절을 보아도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대적을 심판하시는 능력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노라 나의 영원히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핍박한 이스라엘의 대적을 자신의 대적(“나의 대적”)으로 여겨 그들에게 심판의 칼을 들어 보수(보응)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의 능력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갈보리 산의 십자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독생자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진노를 예수님에게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리 하셨습니까?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시길 위해서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심판의 능력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갈보리 산의 십자가,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능력도 찬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심판의 능력이 요한계시록 15장 2-4절에 와서는 장차 하나님께서 “짐승”(계15:2)인 사단의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시사 성도들로 하여금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을 수를 이기”게 하시사 구원해주시므로 장차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15장 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크고 기이한 일’(great and marvelous works of God)입니다. 마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심판의 능력을 목격하므로 구원(승리)의 노래인 모세의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교회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목격하므로 하나님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저 천성에 올라가 우리를 구원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2)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는 하나님의 왕권을 찬송합니다.

 

요한계시록 15장 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3절)는 “만국의 왕”이십니다. 즉, 전능하신 주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만국의 왕이시라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1장 15-1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전능하신 주 하나님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실 하나님이시요 그는 전능하시며 친히 큰 권능으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 세상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15장 3절 하반절을 보면 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실 만국의 왕이신 주 하나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시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묵상한 모세의 두 번째 노래인 신명기 32장 4절과 유사합니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은 만국의 왕이신 주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공의, 곧 죄를 멸하시지 아니치 못하시며(“의롭다”함의 의미) 또한 그가 약속하신 말씀대로 일일이 다 이행하신다는 의미입니다(“참되시다”의 의미)(박윤선). 예레미야 10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저는 이 말씀들을 묵상할 때 복음성가 “주 다스리네”(The Lord Reigns)가 생각납니다: “주 다스리네 주 다스리네 주 다스리네 온 땅 기뻐해 온 땅 기뻐해 온 땅 기뻐해 만 백성 기뻐하라 주 다스리네 주님 나라 임했네 모든 적 불태우네 악한 세력은 녹네 주님의 임재 앞에 주님의 임재앞에.” 여러분, 만국의 왕이신 주 하나님은 공의로우시사 불의를 행하는 죄인들에게 진노하시사 그들을 심판하시되 그는 또한 참되셔서 의롭다 칭하신 성도들에게 약속하신바 구원을 완성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구원의 완성으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은 하늘의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왕권을 노래하되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라고 이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계15:3).

 

(3)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는 하나님의 거룩을 찬송합니다.

 

요한계시록 15장 4절을 보십시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크고 기이한 일과 만국의 왕이신 주님의 의롭고 참되신 길을 볼 때에 모든 만민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또한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사단의 적그리스도나 그의 우상들은 거짓된 신이요 오직 주님만이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도 이 사실을 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 5절을 보십시오: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임하므로 모든 만민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즉, 모든 만민들은 전능하시고 만국의 왕이신 주 하나님께서 사단과 그의 적그리스도와 우상들을 다 심판하시사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에게 구원의 완성을 이루실 것이기에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또한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로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므로 전능하시고 만국의 왕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15:4). 우리 이 시간 우리 다 일어나서 찬송가 9장 “거룩 거룩 거룩”을 다 함께 하나님께 찬양 드리겠습니다: (1절)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자비하신 주여 성삼위 일체 우리 주로다, (2절) 거룩 거룩 거룩 주의 보좌 앞에/ 모든 성도 면류관을 벗어드리네/ 천군 천사모두 주께 굴복하니 영원히 위에 계신 주로다, (3) 거룩 거룩 거룩 주의 빛난 영광/ 모든 죄인 눈어두워 보지 못하네/ 거룩하신 이가 주님밖에 뉘뇨 온전히 전능하신 주로다, (4)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천지만물 모두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성삼위 일체 우리주로다.”

 

 

 

 

최후의 승리를 얻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과 왕권과 거룩을 노래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