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노래 (2):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

 

 

 

[신명기 321-43]

 

 

여러분은 여러분 평생에 잊지 못할 노래가 있으십니까? 있으시면 왜 여러분은 그 노래를 잊지 못하고 계신 것입니까? 저는 제가 죽기가지 잊지 못할 노래 중 하나는 바로 찬송가 40장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입니다. 저는 그 찬양을 부를 때에 잊지 못할 사람들과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 김창혁 목사님과 고 장을수 할머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들이 숨질 때까지 이 찬양을 부르셨던 순간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고 장을수 할머님은 양로원 침대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찬송가를 즐겨 부르셨습니다. 그 분을 찾아뵐 때마다 함께 그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던 순간들이 제 마음에 귀한 추억으로 남아있기에 저는 그 찬양을 부를 때마다 종종 고 장을수 할머님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할 때 고 김창혁 목사님께서 그 찬양을 부르셨던 그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예를 들어 티화나 멕시코에 함께 갔었을 때 양로원에서 목사님께서 그 찬송가 후렴을 멕시코 언어로 힘차게 부르셨던 그 순간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신년 1월 1일 저희 형 집에서 온 가족 식구들이 모였을 때 힘든 몸을 이끄시고 방에서 누워계시다가 거실로 나오셔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셨던 그 순간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잊지 못할 추억은 고 김창혁 목사님의 입관 예배 때 찬송가 40장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다 함께 찬양하였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던 기억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그 순간은 슬픔과 눈물보다 감동과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찬송가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란 노래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출애굽기 15장에 나와 있는 모세의 첫 번째 노래인 “승리(구원)의 노래에 대해서 말씀을 선포한 후 여러분과 함께 그 노래를 하나님께 찬양 드리면서 그 두 분이 생각났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출애굽기 15장에 나와 있는 모세의 첫 번째 노래인 “승리(구원)의 노래”에 대해서 묵상했었습니다(출15:1-18). 그 승리의 노래는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 바다 앞에서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 바다에 가운데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은 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 그리고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루어질 일을 찬양하는 노래였습니다. 성경 신명기 32장 1-43절은 모세의 두 번째 노래이자 마지막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모세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기 전에 지은 노래로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라고 명하신 노래입니다(31:19).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이 마지막 모세의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부르게 하셨습니까?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 두 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그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마지막 노래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31장 19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모세의 마지막 노래로 하여금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 죄를 범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시고자(19절) 이 노래를 모세로 하여금 쓰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하신 것입니다(22절). 어느 면으로 보면, 이 모세의 마지막 노래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시고자 부르게 하신 노래입니다. 예를 들어 찬송가 395장 “너 시험을 당해”란 노래 가사 1절을 보면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찬양을 하나님께 부르는 것은 시험을 당해 죄를 범치 않고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또한 이 모세의 마지막 노래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죄를 범했을 때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고 쓴 노래입니다. 예를 들어 찬송가 337장 “인애하신 구세주여”란 노래 가사 1절과 후렴을 보면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찬양을 하나님께 부르는 것은 우리가 범한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고자 하나님께 부르는 찬양이 아닙니까?

 

(2) 두 번째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마지막 노래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손들 앞에 증인처럼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31장 2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거할 가나안 땅에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16절).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로 하여금 허다한 재앙과 환난을 당하도록 내 버려두실 것입니다(17절).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신 이 노래를 부르게 하시므로 이 노래로 하여금 그들을 쳐서 증인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손들로 하여금 이 노래를 잊지 말게 하시사 그 후손들로 하여금 그들의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세의 노래를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21절)라고 말씀하셨기에 저는 신명기 32장 1-43절의 모세의 마지막 노래를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라고 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이 제목 아래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들뿐만 아니라 진정한 약속의 땅이요 진정한 가나안 땅인 저 천국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와 여러분이 “부르기를 잊지 말아할 노래”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한 다섯 가지로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의 내용은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께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신명기 32장 1절에서 6절까지를 보십시오. 그 구절들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은 누구이시고(4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인지를(5-6절) 교훈(2절)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the greatness of our God)을 찬양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양해야 할 그 위대하신 하나님은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요 그는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신 하나님이시다 라고 모세는 말하고 있습니다(4절). 다시 말하면, 위대하신 하나님은 반석이시요 완전하시고 공평하시며 신실하시며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가 40장 후렴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2x). 이 위대하신 하나님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이나 우리는 어떠합니까? 신명기 32장 5-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시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석이 되어주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공평하심과 신실하심, 정직하심을 들어내시고 계셨지만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악을 행했었고 또한 악을 행하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서 그들은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께 악을 행할 우매무지한 백성이라고 모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버지요 그들을 지으시고 세우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리석고 미련한 백성들 같이 악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답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절).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옛날을 기억하라 연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7절). 무슨 말입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를 뒤돌아보고 그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에게 물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탈출한 1세대 부모님들에게 물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내리신 열 가지 재앙뿐만 아니라 약속의 땅인 가나안 앞까지 이르기 전까지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알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라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어떻게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찬송가 40장을 하나님께 찬양 드리면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한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어리석고 미련하여 하나님께 죄악을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변덕스러운 저와 여러분은 온전히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과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의 내용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과 목자 되신 주님이 우리를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단련시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는 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엡1:4). 신명기 32장 8-9절을 보십시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무슨 말씀입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과 백성들 가운데 야곱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죤 맥아더 목사님에 의하면 창세기 10장에 그 당시 나라들이 70개였는데(창10) 야곱인 이스라엘의 자손들도 70명이였다(46:27)는 것입니다(MacArthur). 이것은 신명기 32장 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땅을 기업을 주실 때에(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인 70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당시 70개 민족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시면서 경계를 정하시되 이스라엘 민족들이 살 수 있도록 넉넉히 땅도 놓아두신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많고 많은 70개 민족들 중 야곱, 즉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사 그의 모든 민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을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 줄 아십니까?(엡1:4)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5절) 그 목적을 성경 에베소서 1장 6, 12, 1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6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2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14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는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입니다. 또한 우리가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의 내용은 목자 되신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단련시켜 주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10-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라고 말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되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121편이 생각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3-4, 7-8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눈동자와 적자와 같이 지켜 주시므로(17:8)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한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마치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훈련시키듯이 그의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단련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어떻게 훈련시킵니까? 박윤선 박사님은 한 3가지로 말했습니다(박윤선): (1)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들이 거하고 있는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심에 있어서 40년이란 광야의 고통의 통로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보금자리에서 어지럽게 하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케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보금자리에서 어지럽히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만 의지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2) 독수리는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립니다. 다시 말하면, 독수리는 그 새끼들을 보금자리에서 떨어뜨리고 그것들을 따라가며 보호하려고 너풀거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고난을 당한 교회에 대하여 가까이 계셔서 그 위험을 면케 하려고 대비하고 계십니다, (3) 독수리는 자기의 날개를 펴서 떨어지는 새끼를 받아 자기의 날개 위에 그 새끼 독수리를 업습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위기와 역경 가운데서 구원하심에 있어서도 극적인 순간에(하나님의 시간에)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가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의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과 우리의 배교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 32장 13-15절을 보면 모세는 노래하기를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젓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그들로 하여금 살찌게 하고 부대케 하며 윤택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찌고 윤택케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다는 것입니다(15절).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증한 것”(16절), “마귀”(17절),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옛날부터 참된 신으로 알려진 하나님이 아니고 믿을 수 없는 새 신),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따라서 믿을 수 없는 것들)을 섬겼습니다(17절)(박윤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낳은 반석이신 하나님을 상관치 아니하고 잊어버렸습니다(18절). 그 결과 그들은 다른 신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켰으며 가증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했습니다(16, 18, 21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되 그들의 대적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침략케 하시고 그들에게 재앙을 당하도록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23-25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략도 없고 지식도 없으며(28절) 지혜도 없어서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의 종말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29절). 모세는 이 노래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서 부르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러한 노래를 하나님께 부르시겠습니까?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노래 가사 내용의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세의 노래의 첫 번째 부분과 두 번째 부분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인도하심, 보호하심 및 단련시키심 같은 경우는 당연히 하나님께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세의 노래 세 번째 부분에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우리의 하나님의 은혜 망각과 우리의 범죄와 하나님의 진노 및 재앙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함을 노래로 하나님께 불러야 한다는 것은 참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계에서 제일 풍부한 이 미국이란 나라에 살면서 살찌고 부대해 지며 윤택케 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서 물질을 우상화 하며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는 그 신앙의 배도를 하나님께 노래로 부른다는 것, 어떻게 여러분은 좀 상상이 되십니까? 저는 이것을 좀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 330-339장에 있는 “회개의 사죄”의 찬송가 부분이 생각났습니다. 예를 들어 찬송가 332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1절 가사를 보면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 찬송가를 하나님께 찬양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행한 것 진정으로 죄 밖에 없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며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용서를 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오늘 본문 신명기 32장 15-33절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범한 죄를 인정하는 노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우리가 장차 받을 재앙을 노래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이 모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노래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미 묵상한 모세의 첫 번째 노래인 승리(구원)의 노래는 우리가 좋아하면서 오늘 이 두 번째 노래의 특히 이 부분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모세의 마지막 노래를 좋아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 중 이러한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의 노래를 묵상할 때 이러한 질문이 들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노래를 가르쳐 부르게 하신 것일까?’ 여러분은 그 대답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부분의 노래도 가르쳐 부르게 하게 하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범한 죄들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들어갈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동일한 죄를 하나님께 범하지 않게 하시고자 하시려고 이 노래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부르게 하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우상 숭배 및 하나님을 배도하는 죄를 범할 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노래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길 원하셨던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 죄를 범한 후에라도 자신들이 범한 죄를 깨닫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켜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길 원하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찬송가에서 “회개의 사죄” 부분의 찬송가들을 하나님께 부를 때에 우리는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고 인정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노래를 하나님께 불러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회개와 사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로, 우리가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능력을 없애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우상과 죄악들로부터 떠나게 하신다는 사실과 그렇게 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수들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 우상을 섬기고 죄를 범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시사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원수들로 하여금 침략케 하시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환난을 통하여(35절) 그들을 무력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사(36절)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섬기는 이방 우상들이 헛되고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인 것임을 깨닫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37-38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며(39절) 그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40-42절). 지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노래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찬송가 177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3절과 349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3절을 보면 가사가 이렇습니다: “힘이 없고 연약하나 엎드려서 비오니 성령강림 하옵소서 충만하게 하소서”(177장 3절),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349장 3절). 우리가 이러한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우리는 우리가 힘이 없고 연약함을 하나님께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는 마음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까? 특히 우리 삶 속에 어려움과 역경을 만났을 때 우리의 힘으로 그 어려움과 역경을 극복하려고 하다가 힘들고 지쳐 쓰러질 때 이러한 찬양들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가 종종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제 자신의 죄와 싸움에서 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될 때 찬송가 349장 3절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를 찬양하곤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은혜와 힘으로 제 자신의 죄와 싸워 승리케 하심을 경험할 때 하나님께 찬양을 드림이 참 기쁘고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3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죄를 범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드시므로 하나님을 의지케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든 우상과 죄악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그들의 원수들을 심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또한 실제로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그들의 원수들은 이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진리를 그들이 깨닫게 될 것입니까? 오늘 본문 신명기 32장 39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 인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자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원수들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요 그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 죽이기도 하시며 살리시기도 하시고 상하게도 하시고 낫게도 하심을 그들 모두가 깨닫게 될 것이라고 모세는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노래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의지케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모든 죄악으로부터 떠나게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시므로 하나님만을 의지케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잊지 말고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의지케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모든 죄악에서 건져주시고 모든 우상과 죄악들로부터 떠나게 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원수들을 심판하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우리가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심판하셨고 우리와 교회를 속죄하셨기에 우리는 즐거워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 32장 43절을 보십시오: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모세는 자기 자신이 죽기 전에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르기를 잊지 말아야 할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마지막으로 그들이 불러야 할 노래의 내용을 신명기 32장 4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보수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심판)하시므로 그의 땅과 그의 백성들을 속죄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수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라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께서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39절).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수들을 심판하시므로 그가 사랑하사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는 참 구원자이심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알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께서 그 종들의 피로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셨는데 이 사실은 새 언약인 신약에 와서 하나님의 종이신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피 흘려 죽으시사 교회인 저와 여러분이 속죄함을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우리를 속죄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습니다(히9:12).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는 다 씻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양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속죄함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을 잊지 말고 마땅히 주님을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숨질 때 되도록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길 간절히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