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112).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과연 이 상황이 내가 원하고 기대했던 상황인가? 아마도 지금 내가 접한 상황은 내가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상황일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나는 내 상황이 불만스럽다. 그리고 지금 나는 불만스러운 내 상황으로 인하여 힘들어 하고 있다. 괴롭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 계속해서 머물러야 하는지 망막하다. 그러므로 나는 내 상황을 바라보면 볼수록 낙심이 되고 심지어 절망까지 된다. 소망이 없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나는 빌립보서 1장 12절을 읽게 되었다. 읽는 가운데 사도 바울은 자기가 “당한 일”이 “도리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먼저 나는 바울이 당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즉, 나는 그가 처하고 있었던 상황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그 상황을 바울은 그 다음 절에서 “나의 매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13절). 그리고 그는 “모든 시위대 안”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당한 일은 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만일 내가 바울처럼 감옥에 갇혀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공산국가이던 모슬렘 국가이던 선교한다고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사도행전 16장 25절 말씀이 생각났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은 깊은 옥에 갇혀 차꼬에 든든히 채워진 상황에서(24절) 실라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과연 나도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다면 바울처럼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하나님께 감옥에서 건져 달라고 간구는 할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죄수들이 들을 정도로 하나님을 찬송할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내 힘으로는 찬송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그러한 상황에서도 찬송케 하실 줄 나는 믿는다. 그 이유는 나의 첫째 아기가 죽은 후 뼛가루를 뿌리고 나서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찬양케 하셨기 때문이다.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나는 내가 원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 상황을 부인(deny)하기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할지라도 분명히 그 뜻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인 줄 믿고(롬12:1) 내가 그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믿고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인내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아 가실지를(롬8:28)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릴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 읽은 빌립보서 1장 12절에서 사도 바울이 자기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묵상할 때 2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바울은 매여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매여 있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떠한 힘든 상황에 매여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매여 있을 수 없음을 믿고 나의 매임을 통해서도 복음의 진보가 있길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복음 전파자 바울이 없어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은 다른 이들을 통해서도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내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매임 상태에 놓여있었을 때에 두 그룹의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의 진전을 이루셨다. 한 그룹의 사람들은 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15절). 그리고 이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다(16절). 이들은 “참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18절). 그러나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15절). 이들은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17절). 이들은 겉치레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18절). 그러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였기에 사도 바울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였다(18절). 결국 이렇게 바울이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기에 바울은 기뻐한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길 기원한다. 나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전파되길 기원한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통하여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있으므로 우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의 진보가 있길 기원한다(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