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가운데 빛을 발하는 지혜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사무엘상 2322).

 

 

제가 어릴 때 좋아했던 TV 만화 프로그램은 “Tom & Jerry”(톰과 제리)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의 세 자녀들(특히 초등학생 막둥이)이 그 만화를 좋아합니다. 제가 그 만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제리라는 쥐가 자기보다 훨씬 큰 톰이라는 고양이를 이기는 모습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톰이 제리를 잡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할 때마다 영리한 제리는 그 위기를 잘 모면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톰으로 하여금 위기를 접하게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 만화를 생각할 때 저는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생각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다윗은 제리 같고 골리앗은 톰과 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목동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워 승리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므로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을 때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심지어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습니다(삼상 18:5). 그런데 문제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하니까 사울 왕이 그 날 후로 다윗을 살인적인 질투로 질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6-9절). 그리고 사울 왕은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했습니다(14-15절). 그 이유는 다윗이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므로 사울의 모든 신하들뿐만 아니라 사울의 딸 미갈도 다윗을 사랑하였고(22, 28절)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30절). 어떻게 다윗은 이렇게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할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14절).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기에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된 것입니다(28-29절). 그리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19:1, 10). 그러므로 그 때부터 다윗은 도망자가 되었고 사울 왕은 추격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상 23장 22절은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가(1-12절) 사울을 피하여 갈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갔는데(13절) 결국 오늘 본문에 와서는 십 광야 수풀에 있었습니다(15절).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있는 사울에게 나아와 다윗이 자기들과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어 있음을 고하였습니다(19절). 그들이 그리 한 이유는 다윗을 사울 왕의 손에 넘기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20절). 그 말을 들은 사울 왕은 그 십 사람들에게 축복한 후(21절) 오늘 본문에 와서는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다윗은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는 들은 말을 하면서 그 십 사람들에게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다윗이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22절). 그런 후 사울 왕은 다윗이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자기에게 보고하라고 그 십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23절). 저는 여기서 다윗이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 것이 무엇인지를 3 가지로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윗의 지혜를 “위기 가운데 빛을 발하는 지혜”라고 칭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위기 가운데 빛을 발한 다윗의 지혜를 3 가지로 묵상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여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의 위기 가운데 빛을 발하는 지혜를 추구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위기 가운데 빛을 발하는 지혜는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3장 2절과 4절을 보십시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이 말씀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유대 땅 그일라 라는 곳에 거하고 있었을 때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라는 소식을 듣고(1절)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보는 기도 내용입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다윗은 하나님께 두 번이나 물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때는 다윗은 하나님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라고 물었고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명하셨습니다(2절). 그런데 왜 다윗이 두 번째 또 다시 하나님께 물었는가 하면(4절) 그 이유는 다윗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3절). 다시 말하면, 다윗이 하나님께 또 다시 자기가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쳐야할지를 물었던 이유는 다윗과 함께 있었던 다윗의 사람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을 의지하여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다윗의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그들이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일라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면 분명히 사울 왕이 그 소식을 들을 것이요 그가 들으면 분명히 그일라로 내려와서 다윗과 그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려고 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려운 상황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두 번이나 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일라 주민을 구원했습니다(5절). 그런데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므로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기 손에 넘기셨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이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읍에 갇혔다고 생각했습니다(7절). 그래서 사울은 그의 군사들과 함께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한 것입니다(8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 왕 바로가 생각났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왕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출14:3). 그래서 바로 왕은 애굽의 모든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추격했습니다(6-9절).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지혜입니다. 사울 왕의 지혜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지혜로 생각해 볼 때 다윗은 그일라에 갇혔고 그를 에워싸면 사울은 다윗을 잡을 수 있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울의 생각대로 다윗은 사울에게 잡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생각하지 못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삼상23:14). 그리고 다윗을 통하여 그일라 주민을 구하신 하나님께서(5절)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구하고 계셨기에 사울은 결코 다윗을 잡을 수도, 그러므로 죽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자신의 지혜로 결코 다윗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의 지혜로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지혜는 바로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물어보되 우리는 하나님의 답변에 순종할 자세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위기 가운데 빛을 발하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혜는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참고: 행 5:29). 비록 사람들의 말이 우리의 이성으로 타당성이 있어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큰 위험 부담을 우리에게 준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여쭙고 믿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기 가운데 지혜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위기 가운데 빛을 발하는 지혜는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4장 6-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 이 말씀은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었을 때(1절)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3,000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갔다가(2절) 길 가 양의 우리에 있는 굴에 뒤를 보러 들어갔습니다(3절). 그런데 사울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3절). 그 때 다윗의 사람들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4절). 이 말을 들은 다윗은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었고 그 후에 사울의 옷자락을 뱀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4하-5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6절). 그리고 나서 다윗은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했습니다(7절). 아니 이것이 어떻게 위기 가운데 빛을 발하는 지혜입니까? 다윗이 자기가 당면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선 자기를 죽이려고 추격하는 사울 왕을 기회가 있을 때 죽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다윗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울 왕 조차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다윗의 손에 넘기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4, 1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사울 왕의 겉옷 자락만 베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 뱀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찔렸습니다(4-5절). 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 왕을 치는 것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당면한 위기를 쉽게 모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사람이 주는 위기를 순간적으로 모면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그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입니다’ 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음성이 성경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그것을 금하노라’고 말씀하고 계시면 우리는 그 기회조차도 포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의 행동입니다.

 

셋째로, 위기 가운데 빛을 발하는 지혜는 학대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4장 17절을 보십시오: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이 말씀은 사울 왕이 다윗에게 한 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다윗의 손에 넘기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를 죽이지 않은 것을 알고(18절) 다윗에게 소리를 높여 울면서(16절) 말한 내용입니다. 분명히 자기를 다윗의 생명을 찾아 해하려고 하는데(11절)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아껴 그의 손을 들어 자기를 해하지 아니한 것을 알고(10절) 사울 왕은 다윗에게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라고 말했습니다(17절). 그리고 사울 왕은 다윗에게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19절)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려고 하는 사울 왕을 선대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사울 왕에게 아무 죄를 범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11절) 사울 왕이 자기 주위에 사람들의 말인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9절)는 말을 듣고 그의 생명을 찾아 해하려고 하는데(11절) 어떻게 다윗은 그러한 사울 왕을 선대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 말씀은 요셉은 자기를 해하려고 한 자기 형들에게 한 말로서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한 그것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에(시34:8) 오히려 그는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한 것입니다(창50:21). 어떻게 다윗이 자기를 해하려고 한 사울 왕을 선대할 수 있었습니까? 바로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시34:8).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도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고, 사울 왕이 자기를 질투하여 죽이려고 했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다. 그랬기에 비록 사울 왕이 자기를 학대하였지만 다윗은 그를 선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중심된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행위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도 그리했지만(창39:9) 오늘 본문 사무엘상 23장에 나오는 다윗도 하나님의 중심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께 자기와 사울 왕 사이에 심판하여 주시길 원했습니다(12, 15절).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자기를 사울 왕에게서 건져 주시길 원했습니다(15절). 또한 그는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보복하여 주시길 원했습니다(12절). 놀랍지 않습니까?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그 기회에 다윗은 자기 자신이 재판장이 되어 자기를 해하려고 하였던 사울 왕을 자기 스스로가 복수한답시고 처단하였으면 더 이상 도망 다니면서 고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하나님의 재판장 자리에 자기가 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은 재판장이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자기와 사울 왕 사이를 판단해 주시길 청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기 가운데 빛을 발하는 지혜로운 자의 행동입니다.

 

우리도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어려운 일 만났을 때, 우리가 힘들고 심지어 위기의식까지 느낄 때에라도 우리는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요셉과 다윗처럼 하나님 중심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된 행동은 소극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우리를 학대하는 자를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지만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그 학대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자들로서(시34:8)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줄을 믿기에(롬8:28) 우리는 우리를 학대하는 자에게까지도 선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기 가운데 지혜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마치 골리앗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다윗과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다윗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하물며 한 나라의 왕인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여 해하려는 일이야 말로 턱도 없는 싸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의 싸움은 마치 톰과 제리와의 싸움과 같아 보입니다. 마치 고양이 톰처럼 사울 왕은 다윗을 계속해서 잡아 죽이려고 추격하고 있는 반면에 쥐인 제리와 같은 다윗은 계속해서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께 여쭤보면서 행동을 하였고 또한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자기를 학대하는 사울 왕을 선대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기 가운데 빛을 발한 다윗의 지혜였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지혜롭게 행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또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