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고린도후서 76).

 

 

낙심되는 일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를 바라보아도 낙심되는 일들이 많겠지만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주님의 교회를 생각할 때도 충분히 낙심되는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목사님으로 인하여 낙심될 수가 있고 또한 장로님들로 인하여서도 충분히 낙심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 그분들로 인하여 교회가 분열이 생기는 모습을 본다면 우리는 더욱더 낙심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낙심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치명적일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크고 깊으며 지속적인 낙심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 침체에 빠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된다면 그 때에는 어느 누구의 위로도 우리에겐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가까운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 식구들의 위로도 우리의 영혼이 거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침체를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낙심될 때 더욱더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더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고 아빠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소망되신 주님만이 낙심하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낙심될 때 우리는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겸손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7장 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가리켜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낙심한 자들”은 누구일까요? 제 생각엔 두 그룹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1) 첫째 그룹은, 오늘 본문 6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6절)로서 바울 자신과 그의 동역자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왜 그들은 낙심하였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모든 환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낙심했었을 지도 모릅니다(4절). 특히 그들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 몸이 편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어려움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낙심했었을 지도 모릅니다(5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제 생각엔 그보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는 더 낙심케 한 것은 그들이 사랑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사도 바울이 1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의 종인 바울과 그의 동역자가 멀리서나마 기도하고 있는 사랑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몸과 영혼을 더럽히는 모든 것들로 인하여 온전히 거룩한 생활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충분히 낙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2) 둘째 그룹은 바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들 또한 바울과 그의 동역자처럼 “낙심한 자들”(6절)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바울에게 편지를 받아 근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8절). 당연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는 자신들을 보면 낙심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다가 바울이 고린도전서 편지로 그들의 죄를 사랑으로 책망하므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충분히 근심 중에 낙심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7장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낙심한 자들”은 1차적으로 바울과 그의 동역자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겠지만 문맥을 보면 하나님께서 위로하신 낙심한 자들은 그들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낙심한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위로하셨을까요? (1) 먼저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의 동역자를 어떻게 위로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디도를 통하여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6절). 위로하시되 하나님께서는 디도를 통하여 바울과 그의 동역자에게 3가지 소식을 듣게 하시므로 위로하셨습니다: (a) 바울과 그의 동역자는 디도를 통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쓴 편지인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을 하게 되었고 그 근심을 통하여(10절) 그들이 회개함이 이르렀다는 소식을 접하고 위로를 받았습니다(9절). 누가 그들을 회개시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의 편지)을 사용하셔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회개케 하시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깨끗함을 나타나게 하셨기에(11절) 그 소식을 디도를 통하여 접한 바울과 그의 동역자는 위로를 받은 것입니다. (b) 바울과 그의 동역자는 디도를 통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들을 위한 간절함이 있다[그들을 위하여 얼마나 열심이었는가(12절, 현대인의 성경)]는 소식을 접하고 위로를 받았습니다(13절). (c) 바울과 그의 동역자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인하여 디도가 안심함[새로운 힘(13절, 현대인의 성경)]을 얻으므로 기뻐하였기에 그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척 기뻐하였습니다(13절). 특히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디도를 영접하여 순종하므로 그들을 향하여 디도의 심정이 더욱 깊어진 것을 알고(15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범사에 신뢰하게 되었으므로 기뻐했습니다(16절). (2)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위로하셨을까요? (a)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바울의 고린도전서 편지를 사용하셔서 근심케 하시고 결국에는 회개케 하시므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로하셨다고 생각합니다(9절). 즉,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시고(10절) 그들로 하여금 회개의 합당한 열매인 깨끗함을 나타내게 하시므로(11절) 그들을 위로하신 것입니다. (b) 그 뿐만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의 종인 디도를 두려움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맞아주게 하시고 순종케 하시므로 그들을 향한 디도의 심정(사랑)이 더욱 깊어지게 하시므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로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c)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범사에[“완전히”(현대인의 성경)] 신뢰케 하시므로(16절) 그들을 위로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우리를 낙심케 하는 사람들과 일들이 많이 있을지라도 저의 경우는 저를 제일 낙심시키는 자가 바로 제 자신입니다. 어느 누구보다 저는 제 자신으로 인하여 실망하며 낙심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의 모습을 보고 우리 교회 식구들도 낙심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저를 사랑해주고 있는 지체들도 저로 인하여 낙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모두를 위로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1:3) 온갖 고난을 겪는(4절,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을 위로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위로해 주시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듣게 하시사 위로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사랑하므로 기도하고 있는 형제, 자매가 회개의 열매를 맺고 있다는 소식과 그가 여러분을 향한 열심이 있는 사랑의 소식과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그 형제/자매가 새 힘을 얻고 여러분과 그와의 관계 속에서의 신뢰가 깊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하시사 위로해 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