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역대하 328).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분명히 믿고 있는 것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외에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다 끊어 버려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끊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믿고 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대하29:2).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성결케 하고 또한 하나님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들을 성소에서 없이하게 했습니다(5, 15-17절). 그는 모든 더럽고 추악 우상들과 죄악들을 다 없이한 후(31:1)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며(2절) 또한 하나님의 율법을 힘쓰게 했습니다(4절). 한 마디로, 히스기야 왕은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을 행했습니다(20절).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했습니다(21절). 그런데 이 모든 충성된 일 후에(32:1) 히스기야에게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위기란 바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범하여 유다를 쳐서 취하고자 한 것입니다(1절).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일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불성실해서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위가가 온 것을 우리는 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로 말미암아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은 히스기야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그는 충성되이 종교개혁을 이루어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기를 맞이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는 이러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요? 여러분은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그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신실하게 행하는 히스기야로 하여금 그 위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어 퇴락한 모든 성을 중수하였고 또한 외성을 쌓았으며 다윗성의 밀로를 견고케 하였으며 병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었습니다(5절). 그리고 그는 군대 장관들을 세워 백성들을 거느리게 한 후 그들을 다 모와 이러한 말로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하는 자가 저와 함께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7-8절). 결코 히스기야는 이러한 말로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그 방백들과 용사들로 더불어 의논하여 성 밖에 모든 물 근원을 막았(끊었)습니다(3절).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성 밖에 있는 모든 물 근원을 끊어버리면 성 밖에서 유다 백성들을 치고자 모인 앗수르 왕들과 군인들만 와서 많은 물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4절)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도 물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히스기야 왕은 이렇게 한 것입니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목마름으로 죽을 수도 있는(11절)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가게 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와 유다 백성들을 도우실 줄을 믿었습니다(8절). 과연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줄 믿고 있습니까?

 

오늘 새벽기도회 때 이 말씀을 선포한 후 기도하면서 그 말씀에 제 자신을 비춰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제 마음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두 약속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요6:1-15과 마16:18).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했습니다. 주님의 몸 된 승리장로교회, 주님의 교회요 주님께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신 교회(마16:18)이니 주님께서 도우시사 친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리할 때 마치 히스기야와 유다 방백들과 용사들이 의논하여 성 밖에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끊고자)한 것처럼 우리 승리장로교회 지도자들이 저와 함께 의논하여 용단을 내려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것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가 히스기야와 유다 방백들과 용사들처럼 용단을 내리길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외에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다 끊어 버려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끊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믿고 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히스기야처럼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을 믿고 확신하고 있다면 우리는 비록 우리가 목마를 수도 있을지라도 물 근원들을 끊어야(막아야) 합니다. 그것들을 끊을 때에야 우리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참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