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두려움을 아시고 용기를 주시는 주님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만일 네가 공격하는 것이 두려우면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지로 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라. 그러면 공격할 용기가 생길 것이다 ”](사사기 710-11절 상반절).

 

 

두려운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 풍파가 많은 세상입니다. 마치 배를 타고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와 같은 이 세상에서 배의 사공 되신 주님과 함께 저 천성을 향하여 노를 저어 향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새찬송가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그런데 우리는 종중 기대하지 않았던 큰 풍랑도 만나게 됩니다. 분명히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했던 것은 잔잔한 바다 물결인데 말입니다. 그 때 우리는 예기치 않은 큰 풍랑으로 인하여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큰 풍랑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그 큰 풍랑과 싸워 이겨보려고 힘써 노를 저어보곤 합니다(욘1:13). 그러면 그럴수록 바다는 우리를 향하여 점점 더 흉흉해지는 것을 봅니다(13절). 그 때서야 우리는 우리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철저히 깨닫게 되어 두려움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14절). 부르짖되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뜻을 구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님의 뜻대로 행하시길 간구합니다(14절). 그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우리가 접한 우리 인생의 큰 풍랑을 잔잔케 하시므로(15절) 결국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큰 풍랑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큰 풍랑을 잔잔케 하시사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크게 두려워하게 하십니다(16절).

 

오늘 본문 사사기 7장 10-11절 상반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우신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군 300명이 있는 골짜기 아래쪽에 진을 치고 있었던(8절, 현대인의 성경) 미디안군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고 말씀하신 후(9절)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실제로 기드온은 충분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큰 위기의 상황에 쳐해 있었습니다. 그 큰 위기의 상황이란 기드온과 그의 군사는 300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적군인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은 마치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았습니다(12절). 그 연합군의 숫자는 135,000명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8:10). 이스라엘 군 300명과 적군 135,000명 정도와의 전쟁이 상상이 되십니까? 이 전쟁은 해보았자 이길 수 없는 전쟁입니다. 어떻게 300명이 135,000명과 싸워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이 전쟁은 이스라엘군이 승리할 수 없는, 아니 반드시 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스라엘군 300명의 입장에서 현 위기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처음엔 적군과 싸우겠다고 모인 이스라엘 군의 숫자가 32,000명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고 명하셔서 두려워 떠는 자 22,000명이 돌아갔습니다(7:3). 그 때 32,000명에서 22,000명 돌아가고 남은 자 10,000명 중 기드온의 300명 군사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 까요? 적군이 약 135,000명 정도나 되는데 32,000명에서 22,000명이나 돌려보낸다는 것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했었을 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기드온에게 “아직도 너무 많다 너는 그들을 강가로 데리고 가거라. 내가 거기서 너와 함께 싸우러 갈 사람과 가지 않을 사람을 구별하여 너에게 보여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4절, 현대인의 성경). 아니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적군 135,000명 정도에 비해 이스라엘군 10,000명이 “아직도 너무 많다”고 말씀하실 수가 있으실까요? 턱없이 부족하고 또 부족한 군인 숫자인데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함께 적군과 싸우러 갈사람 300명과 가지 않을 사람 9,700명을 구별하셔서 기드온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시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내가 물을 핥아 먹은 300명으로 너희를 구원하고 미디안 사람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겠다. 너는 그 나머지 사람들을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아니, 어떻게 또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나요? 32,000명에서 22,000명이나 돌려보냈는데 어떻게 또 남은 10,000명에서 9,700명을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300명으로 적군 135,000명과 싸워 이길 수가 있나요?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의 행하심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교회에 적용해 볼 때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교인 숫자가 더 많고 많아야 주님의 일을 더 크게,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어쩌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교인 숫자가 너무 많다’(2절), ‘돌려보내라’(3절), ‘돌려보내라’(7절)고 말씀하시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너무 많은 교인 숫자로 주님의 일을 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한 줄 알고 교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2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너와 함께 있는 백성이 너무 많아서(32,000명) 내가 미디안 사람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2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너는 백성들에게 두려워서 떠는 자(22,000명)는 누구든지 이 곳 길르앗 산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라”(3절, 현대인의 성경), “너는 그 나머지 사람들(9,700명)을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명하신 것입니다(7절). 그 결과 이스라엘 군은 300명만 남게 되었습니다(7절). 하나님께서는 이 300명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미디안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7절). 그런데 이렇게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날 밤 기드온에게 “일어나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9절). 왜 하나님께서 그리 말씀하신 것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적군 진영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혼자서 미디안 군을 공격하라고 보내신 것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제 생각엔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두려워하는 기드온(10절)에게 미디안 군을 공격할 용기를 주시고자 그리하셨다고 생각합니다(11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두려워하고 있는 줄을 알고 계셨습니다. 물론 기드온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요. 적군이 135,000명인데 이스라엘군은 고작 300명이라면 기드온의 입장에서 충분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만일 네가(적군 진영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0절). 그리고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그들(적군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러면 공격할 용기가 생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기드온은 부라를 데리고 적군이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갔고(11절) 그리고 거기서 그는 어떤 한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꾼 이야기와 해몽을 듣습니다(13-15절). 그 후에 기드온은 하나님께 경배한 후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고 외쳤습니다(15절). 이젠 그는 미디안 적군을 공격할 용기가 생긴 것입니다(11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주님께서는 제 두려움을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두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그리고 그 두려운 상황이 점점 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어가고 있기에,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두렵고 또 두려울 수밖에 없는데 주님은 그러한 제 두려움을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조금이나마 깨닫게 될 때 제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든 생각은, 주님께서는 저를 위하여 그 두려운 상황을 제 힘(능력)으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제가 접한 그 힘들고 두려운 상황은 마치 나는 군인 숫자가 32,000명밖에 안 되는데 상대방 적군은 135,000명 정도인데, 그 다음 상황은 내 군인 숫자는 10,000명, 적군은 135,000명, 그러다가 지금 상황은 적군은 변함없이 135,000명인데 내 군인은 고작 300명밖에 안 되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두렵고 또 제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무기력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왜 주님께서는 제가 의지하는 제 주위의 사람들을 줄이고 또 줄이시는 것일까요? 왜 주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점점 더 제 자신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제 능력과 제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서 성취한 후 제 스스로 자랑할까봐서, 제가 교만해질까봐서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든 세 번째 생각입니다. 주님은 제가 교만해 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사 막으시고 오히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겸손한 자로 세우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한 가지 더 하게 된 생각은,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던 기드온에게 공격한 용기를 주셨을까 입니다. 어떻게 주님께서는 제 안에 있는 두려움을 변하여 용기 있게 하시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했을 때 든 생각은 바로 “확신”(conviction)이란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기드온에게 승리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주시되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기드온에게 부하 부라와 함께 적군의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인 꿈과 해몽을 듣게 하시므로 승리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주신 이 승리의 확신이 기드온으로 하여금 얼마나 용기 있게 적군을 공격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그와 300명 군사는 아무 무기도 없이 한 손에는 나팔을 듣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빈 항아리(그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였음)를 들고(16절)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공격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입니까.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입니다. 어떻게 300명이 135,000명을 무기도 없이 그렇게 공격할 수가 있을까요? 기드온은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300명의 병력을 세 부대로 나눠서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100명의 병력이 미디안군의 진지 외곽에 도착해서(그 때는 적군이 막 보초 교대를 끝낸 자정 무렵이었음) 갑자기 그들이 나팔을 불며 들고 있던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 다른 두 부대도 그들을 따라 일제히 왼손에 든 항아리를 부수어 횃불을 높이 들고 오른손에 든 나팔을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을 위한 칼이다' 하고 외쳤습니다(20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이 각자 자기 위치에 서서 그 진지를 포위하자 적군은 놀라 아우성치며 허둥지둥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21절, 현대인의 성경). 기드온의 300명 용사가 나팔을 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혼란 가운데 빠뜨려 자기들끼리 서로 치게 하셨고(22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에 가서는 기드온의 300명 군사가 135,000명 정도나 되는 적군을 무찔러 승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적군들을 혼란 가운데 빠뜨리시므로 그들은 칼로 서로 치게 하시사 기드온과 300명 군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신 것입니다.

 

풍파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큰 어려움과 큰 역경으로 인해 충분히 두려워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려움 속에서 그 큰 어려움과 큰 역경으로 인해 우리 자신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많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케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므로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그 약속의 말씀에 대한 성취의 확신을 갖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이 승리의 확신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을 변하여 용기 있게 만드십니다. 우리는 그 용기로 우리가 접한 큰 역경과 어려움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부딪힙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큰 역경과 어려움을 견뎌내며 또한 극복케 하십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사 반드시 승리케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