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며 원망으로 기도하는 소리도 들으시는 하나님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민수기 1112, 20).

 

 

젖 먹는 아기가 왜 울까요? 저는 아내와 함께 세 자녀를 양육하면서 그 아이들이 아기 때 왜 울었는지 그 이유가 한 두 가지임을 배웠습니다. 그 두 가지 이유란 첫째로 아기가 기저귀에 소변이나 대변을 보았을 때 갈아달라고 운다는 것과 둘째로 아기가 배가 고파서 젖을 달라고 할 때에 운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유 외에도 아기가 피곤하면 재워달라고 울기도 하고, 하여튼 뭔가가 불만족스러우면 아기는 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기들만 그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 어른들도 뭔가가 불만족스러우면 불평을 하다가 그 불만족함이 불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원망하고 탓할 정도로 되어 버리면 울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도 너무 배고프면 서러워서라도 울 수 있고, 경제적으로 너무나 궁핍하며 사는 것이 힘들어도 서글퍼서 울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11장 12절과 20절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 먹는 아이”(아기)와 같다고 말하면서(12절)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울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번만 울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4절을 보면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울었습니다(10절). 그리고 그들은 모세를 향하여 울었습니다(13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은 고기를 먹고 싶었기 때문입니다(4, 13, 18절).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밤에 하늘에서 내려주시고 계셨던 만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면서(6절, 현대인의 성경) 모세를 향하여 울며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고 불평의 소리를 냈습니다(13절).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고 계셨던 만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의 소리를 낸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탐욕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에게 나쁜 영향을 받아 그들처럼 탐욕을 품은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만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울면서까지 불평, 원망하면서 모세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노예 생활을 했었던 과거 애굽을 생각하며(5절)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고 말했습니다(18절).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멸시한 것이었습니다(20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심히 크게 진노하셨습니다(10절). 물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했습니다(10절).

 

부모가 아기를 기를 때 그 아기가 배고프다고 엄마가 젖을 그 아기의 입에 물려줄 때까지 계속해서 우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젖 먹는 아기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고기를 달라고 울고 또 울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사람도 아니고 백성의 보행자만 60만 명인(21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향하여 울면서 “우리에게 고기를 주워 먹게 하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모세의 입장에서는 괴로운 일입니까(11절).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11절). 모세는 책임이 너무 무거워 자기 혼자서는 원망하며 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데리고 살 수 없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말했습니다(14절, 현대인의 성경). 그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했습니다(15절).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존경받는 백성의 지도자 70명을 성막으로 소집하여 너와 함께 서게 하라”고 말씀하신 후(16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로 하여금 모세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모세로 하여금 혼자 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17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울며 고기를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8절). 그것도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이 아니라(19절) 자그마치 한 달 동안 신물이 나도록 말입니다(19-20절, 현대인의 성경).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서 내는 원망의 소리까지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일까요?(참고: 출16:7-9, 12) 그 이유를 출애굽기 16장 12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서 내는 원망의 소리까지 들어 응답하신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하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어떠한 하나님이심을 그들에게 알게 하시고자 하셨던 것일까요? 저는 그 대답을 민수기 11장 23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너는 내 말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 보게 될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약속하신 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심을 모세에게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알게 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계산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어떻게 광야에서 보행자 60만 명을 한 달 동안이나 고기를 주워 먹게 할 수 있는지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부족하고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부족할 수밖에 없는(22절, 현대인의 성경) 불가능한 상황 이였지만(21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너는 내 말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23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결국에 가서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보내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과 그 주변 일대에 내리게 하시자 진영에서 사방으로 하룻길 떨어진 지역까지 메추라기가 지상에서 약 1미터 높이로 날아다니게 하시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날 밤과 낮, 그리고 그 다음 날 저녁까지 메추라기를 잡도록 하셨습니다(31-32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습니다(33절). 그 결과 고기에 대한 탐욕을 가진 사람들은 매장되었습니다(34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 즉 “탐욕의 무덤”이라 불렀습니다(34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충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보행자 60만 명을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워 먹게 하실 수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불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탐심을 품고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만족 속에서 원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울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원망으로 기도하는 소리도 들으시사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욕심을 내는 우리를 징벌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통해서라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탐욕을 내는 것은 결코 만족할 수 없으며 오히려 탐욕은 우리의 무덤을 파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통해서라도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풍부할 때가 궁핍할 때나 자족해야 합니다(빌4:11-12).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축복들에 욕심을 내지 말고 주님 안에서 이미 받은 모든 영적인 축복들을(엡1:3) 깨달아가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누리면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