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언제나 저를 위로하시겠습니까?’

 

 

 

[시편 11981-88]

 

 

여러분은 인내의 한계를 느끼신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제가 언제까지 이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나요?’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려 보신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우리에게 임한 고통과 역경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는 인내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언제까지인가요?”(How long?)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부르짖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19편에 나오는 시편 기자가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면서 그분의 구원을 사모하였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82절)[(현대인의 성경) “내가 ‘주는 언제나 나를 위로하시겠습니까?’하고 주의 약속의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내 눈이 피로해졌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주님, 언제나 저를 위로하시겠습니까?’란 제목 아래 ‘인내의 한계’(Limitation of Endurance)와 ‘인내의 도전’(Challenge of Endurance)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인내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 시편 119편 81-82절을 보십시오: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현대인의 성경)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다가 지쳤으나 그래도 나는 주의 말씀을 신뢰합니다. 내가 ‘주는 언제나 나를 위로하시겠습니까?’ 하고 주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내 눈이 피로해졌습니다”]. 시편 기자는 피곤했습니다. 그는 지치고 피로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시편 기자는 원수들의 핍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84절). 그 시편 기자를 핍박하였던 그의 원수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85절). 그리고 그들은 이유 없이 시편 기자를 핍박하되(86절) 그들은 시편 기자를 해하려고 웅덩이(함정)을 팠습니다(85절). 즉, 그들은 시편 기자를 해하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시편 기자를 거의 멸하였습니다(87절). 즉, 그들은 시편 기자를 거의 죽이다시피 했습니다(87절, 현대인의 성경).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주님의 구원을 사모하였고(81절) 또한 주님의 말씀을 바랬지만(82절) 그는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의 말씀의 성취를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피곤하고(지치고)(81절) 또한 피곤(피로)했던 것입니다(82절).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지치고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우리가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건져달라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아 보이고 우리가 처한 상황은 더욱더 나빠질 때에 우리는 영육 간에 피곤하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참으로 위험한 것은 바로 낙심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이리도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아무 응답도 없으신 것 같고 상황은 더욱더 악화되는 것만 같을 때 참고 참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지친 상태에서 낙심하고 심지어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교만한 원수들이 우리에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시42:10)라고 계속해서 비방 할 때 우리는 충분히 낙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편 기자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의 교만한 원수들을 벌하실까?’(84절, 현대인의 성경)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충분히 낙심할 수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며 기다려도 기도 응답은 없어 우리의 영혼이 불안하고 낙심 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하나님의 위로를 느끼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주님, 언제나 저를 위로하시겠습니까?’라고 부르짖게 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바로 인내의 도전입니다.

 

둘째로, 인내의 도전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주님의 구원을 사모하다가 지쳤을 때(81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위로는 더디고 우리가 주님의 약속을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우리의 눈이 피로해졌을 때(82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내가 쓸모없는 자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83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교만한 자들이 우리를 이유 없이 핍박하고 우리를 잡으려고 함정을 팠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더딜 때(84-86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심지어 그들이 우리를 거의 죽이다시피 했을 때(87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인내의 도전을 우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구원을 사모하다가 지쳐도 그래도 우리는 주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81절,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주님의 계명은 신뢰할 만하기 때문입니다(86절, 현대인의 성경). 또한 우리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다가(82절, 현대인의 성경) 피곤해져도 그래도 우리는 주의 법을 잊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83절). 교만한 우리의 원수들이 이유 없이 우리를 핍박해서 우리를 거의 죽이다시피 한다 할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주님의 교훈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87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할 때 우리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따라 다시 살아나게(소성케) 될 것입니다(88절). 그 때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의 법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88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시지 않고 오래 참으심은 결코 무모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모든 시간은 하나도 낭비되지 않고 가장 귀하게 사용됩니다(박윤선). 비록 우리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안위와 도움이 더디어 보이므로 ‘주님, 언제 저를 위로하시겠습니까?’, ‘주님, 언제나 저를 도와주실 것입니까?’, ‘주님 언제 저를 건져(구원해)주실 것입니까?’라는 질문들을 던질 수박에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 와중에서도 주님의 신실한 계명을 잊지 말고 그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결코 우리는 그 말씀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때가 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신실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믿음과 소망으로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인내해야 합니다. 비록 인내의 한계를 느낄지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우리의 참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갈망하면서 그 주님의 말씀을 더욱더 사모해야 합니다. 위로의 성령님께서 살아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