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나이다 하니”(사사기 612-13).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충격과 상처는 우리가 충분히 상상할 수조차도 없을 것입니다. 특히 자라나면서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과 성장하여 연애하다가 사랑하는 남자/여자 친구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 및 결혼 후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에 그 충격과 상처는 우리가 충분히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충격과 상처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사사기 6장 12-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기드온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그가 그리 생각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7년 동안(1절)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시므로 말미암아(13절) 궁핍함이 심했기 때문입니다(6절). 궁핍함이 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농작물을 해치며 양과 소와 나귀를 모조리 약탈해 갔기 때문입니다(3-4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너무 잔인한 미디안 사람들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 속 동굴과 안전지대로 피신해 살았습니다(2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궁핍함이 심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6-7절)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내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8-10절). 그리고 나서 어느 날 하나님의 천사가 미디안 사람의 눈을 피해 포도즙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12절). 그 때 기드온이 하나님의 천사에게 두 개의 질문을 던진 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버려 미디안 사람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13절). 저는 그 2 개의 질문이 왜 기드온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셨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내 주여,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어째서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까?”(13절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기드온은 하나님의 천사가 자기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하였을 때(12절)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다면 “어째서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여기서 “이 모든 일”이란 너무 잔인한 미디안 사람들(2절, 현대인의 성경)로 인하여 7년 동안이나(1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심히 궁핍한 가운데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6절). 이 질문을 달리 말한다면, 기드온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시지 않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 사람들에게 7년이나 지배를 받으면서(1절, 현대인의 성경) 심히 궁핍함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습니다(6절).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13절).

 

저는 이 기드온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제한된 지성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기드온의 밀대로 하나님께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렸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겠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도 기드온처럼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왜 우리가 고통을 당하며 심한 궁핍함 가운데서 허덕여야 하는지 충분히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우리는 고통과 심한 궁핍함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리도 고통을 당하고 궁핍한 가운데서 허덕이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는지 우리는 충분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의심하며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의심과 의문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심한 궁핍함 등이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는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죄의 결과만 알고 있기에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어째서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까?”라고 하나님께 반문하고 있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못 깨닫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 적어도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 사랑의 징벌을 받는 죄를 범한 우리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지 않은 죄인들과 함께 계시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인(15절) 기드온을 “큰 용사”(12절)라고 부르시고 그에게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14절)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함께 계시사(12절) 그를 사사로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미디안 손에서 구원하시는(14절)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새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1절) 왜 주님의 일꾼으로 삼으시사 저를 능하게 하시고 저를 충성되이 여겨 저에게 직분을 맡기셨으니(딤전1:12) 이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은혜로 오늘도 살아가는 우리는 주님께서는 자기가 사랑하시는 자, 아들/딸로 대우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되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히12:6, 7, 1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고자 우리를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10절). 그 결과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입니다(삿6:13).

 

마지막 둘째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여호와께서 놀라운 기적으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었는데 지금 그런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13절 중반절, 현대인의 성경).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한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8-9절)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13절)라고 하나님의 천사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모든 이적”이란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 보내시사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시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그들에게 주시면서 나타내신 모든 이적들을 가리킵니다. 기드온의 입장에서는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시다면 과거에 조상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나타내신 그 모든 이적들이 왜 지금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디안 사람들의 지배를 받아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서는 없냐는 반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기드온은 왜 하나님께서 이적을 베푸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지 않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시지 않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 사람들에게 7년이나 지배를 받으면서(1절, 현대인의 성경) 심히 궁핍함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습니다(6절).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13절).

 

저는 이 기드온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제한된 지성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기드온의 밀대로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여 들이셨을 때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는데 왜 지금은 기적들을 행하시지 않는지, 그 결과 자신들이 고통을 당하며 심한 궁핍함 가운데서 허덕여야 하는지 충분히 하나님께 질문을 던지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도 기드온처럼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을 당하며 심한 궁핍함 가운데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적을 행하시사 건져주시지 않는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달리 말한다면,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행하셨던 그 놀라운 기적들을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행하셔서 우리를 우리의 고통과 극심한 궁핍함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요 또한 기대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와 기대대로 기적적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지 않으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 사실이란 기적 중에 기적이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므로 우리가 구원(영생)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적 중에 기적인 구원의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그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기적 중 기적인지 잘 모르고 우리는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구원(건짐)을 받은 기적을 기도하며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기적인 구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수적인 기적들을 간구하며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을 받아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문제를 해결 받는 기적을 구하며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하는 고통의 문제에서 기적적인 구원이 없을 때 우리는 낙심하고 실망하여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까지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버리는 죄를 범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회개치 않은 죄로 말미암아 겪고 있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기적적인 건짐을 기도하며 기대하기 이전에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겸손히 우리의 죄를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회개치 않는 죄로 말미암아 겪고 있는 죄의 결과를 겪고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적을 통한 구원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먼저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먼저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겸손히 예수 십자가의 공로 의지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마음의 고통을 어떻게 극복해 나아갈 수가 있을까요?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마음의 극심한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며 극복해 나아갈 수가 있을까요? 분명히 우리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왜 우리가 심한 고통과 궁핍함을 겪어야 하는지, 왜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사 우리를 건져주시지 않는 것인지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어째서 나를 돕지 않으시고 내가 신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십니까?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밤낮 울부짖어도 주께서는 아무 대답도 없으십니다”(시22:1-2, 현대인의 성경). 그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크게 소리 지르셨던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막15:34). 우리는 우리의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저주의 나무에 못 박혀 죽으시되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받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겸손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받으신(forsaken) 예수님으로 인하여 용서함(forgiveness)을 받은 우리는 우리의 회개치 않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벌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우리가 임마누엘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기보다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을 의지하여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의 문제 이전에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사 우리의 고통의 문제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욘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