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마음에 평강을 주시는 주님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7).

 

 

괴로웠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무거웠습니다. 사랑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속이 쓰리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무척이나 힘들어 하고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할지 잘 모르는 가운데에서 그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면서도 제 마음은 계속해서 무겁고 괴로웠습니다. 어쩔 때는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 그를 피하고 싶은 충동까지 있었습니다. 당사자인 그가 어느 누구보다 제일 힘들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제 자신의 마음이 너무 힘들다 보니 이기적인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그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언제 주님께서 그를 건져주실지, 언제 주님께서 저에게 평강을 주실지 모르는 가운데서 하루하루를 보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는 교회에서 운동하는 장소로 가다가 차 안에서 복음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듣다가 저는 제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인가?’, ‘혹시 나는 하나님께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다 맡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나는 하나님을 뜻을 구하지 않고 내 뜻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을 제 자신에게 던지면서 운동하는 곳에 도착하여 운동을 하다가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붙잡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시사 제 마음의 무거운 짐을 다 주님께 전적으로 맡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제 자신의 영혼에게 이렇게 선포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임스야, 너의 무거운 짐을 모두 다 주님께 맡겨라. 왜 너는 지금 주님께 그 짐을 맡기지 못하고 자꾸만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느냐.’ 저는 하나님께 제 믿음의 연약함을 고백하면서 불쌍히 여겨주시사 제 믿음을 견고하게 해주시길 간구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지만 제 마음은 아직도 평강이 없고 계속해서 무겁고 힘들고 긴장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토요일에 주일 영어 설교를 준비하려고 영어 성경으로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그 구절의 문맥도 함께 읽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10절 하반절 말씀이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 after you have suffered a little while, will himself restore you and make you strong, firm and steadfast”[(현대인의 성경) “얼마 동안 여러분이 고난을 겪고 나면 … 하나님이 여러분을 친히 완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튼튼하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 저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저에게 제가 사랑하는 그가 지금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 고난은 잠깐 겪는 것(suffer a little while)이라는 것과 그가 잠깐 고난을 당한 후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회복(restore him)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제가 사랑하는 그를 잠깐 고난을 겪게 하신 후 굳세게 하시고(make him strong) 강하게 하시며(make him firm) 터를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make him steadfast)는 믿음과 기대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말씀으로 힘을 얻었습니다. 전에 주일에 설교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이제는 살리라”(살전3:8하). 그 때서부터 저는 좀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주일 영어 예배 때 주신 베드로전서 5장 7절과 10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좀 더 마음에 기대와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제 마음에 무거움과 괴로움이 사라지고 평강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 7절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메시야가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으셨다고 예언하였습니다. 그 예언대로 그리스도(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헤롯이 여러 말로 물었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눅23:9).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침묵을 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 침묵을 하셨다면 우리고 괴로울 때 침묵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괴로울 때 침묵하므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괴로울 때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잠잠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괴로울 때 우리 주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님에게까지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우리는 그 충동을 극복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잠잠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사30:15). 그리할 때 우리는 구원을 받고 힘을 얻을 것입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갖 고난을 당하시면서 침묵하신 이유는 첫 번째로 이사야 53장 7절의 예언의 성취하시고자 그리하셨고 둘째로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는 말씀을 다시금 들으시고자 침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침묵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로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사53:5)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셨다고 생각합니다(빌2:8, 현대인의 성경). 그 결과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나음을 받았습니다(사53:5).

 

우리가 괴롭고 힘들 때 입을 열게 되면 입술로 죄를 범하기가 쉽습니다(9절). 우리는 사람을 원망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욥1:22).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 잠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사30:15). 우리는 괴로움과 힘듦 속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어떠한 괴로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감당해야 합니다. 감당하되 우리는 우리의 괴로운 마음에 평강을 주시는 주님만 바라보면서 주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는 음성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