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불안한 상황인데

어떻게 안심을 할 수 있습니까?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역대하 327-8).

 

 

그것을 생각만 해도 불안하고 두렵습니다(욥21:6).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식욕도 잃었습니다. 낙심이 됩니다. 내 능력 밖에 일입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마음이 약해집니다(시77:3, 현대인의 성경). 기도도 나오지 않아 그저 신음만 할 뿐입니다(시38:8). 이렇게 너무나 불안한 상황에서 어떻게 안심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역대하 32장 7-8절은 유다 왕 히스기야가 예루살렘 성 안에 모든 사람들을 성문 광장에 모아서 위로하는 말씀입니다. 이 위로의 말씀을 들은 그 모든 유다 백성들은 히스기야 왕의 말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의문이 듭니다. 그 이유는 히스기야 왕과 유대 백성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의 명철을 의지해서 생각하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처한 상황은 큰 위기였습니다. 그 큰 위기는 바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 것입니다(1절). 이러한 큰 위기를 접하면 우리의 본능은 충분히 ‘왜 이런 큰 위기가 나(또는 내 가정)에게 온 것일까?’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서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왜 하나님께서는 이 큰 위기를 나에게 주신 것(또는 허락하신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을 수 없이 던져보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을 때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실히 섬기고 있었는데 왜 이러한 큰 위기가 나에게 닥쳤는지 …’ 우리는 우리의 명철로는 도무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해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 입장에서 이렇게 충분히 생각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개혁을 일으켰는데(31장) 왜 하필이면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1절) 이런 큰 위기를 당하게 하셨나요?’ ‘저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는데’(29:3), 유다 여러 성읍에서 주상들과 아세라 목상들 및 산당들과 제단들을 깨뜨리며 찍으며 제거하여 없앴는데(31:1),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직임을 행하게 하였는데(2절), 십일조를 갱신(5-6절)하는 등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는데(20절),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였는데(21절), 어떻게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32:1)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인가요?(2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다 왕 여호사밧도 개혁을 일으킨 후에(19:4-20:1) 큰 무리인 적군들이 쳐들어 왔었는데(20:1-2) 히스기야 왕도 개혁을 일으킨 후에(31:1-32:1) 적군들이 쳐들어 왔다(1-2절)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패턴을 성경에서 볼 때에 저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한 왕들의 삶 속에 이러한 큰 위기를 허락하시는 것일까?’ ‘하기야 욥이란 인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전하고 정직하였던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위기를 접한 것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롬12:2)이 있으실꺼야.’ 물론 욥의 경우, 그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라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말로만 듣던 하나님을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큰 위기와 고통을 통하여 그분의 임재를 경험할 수만 있다면, 과연 저와 여러분은 그 큰 위기와 고통을 감수하겠습니까?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과연 우리는 그 큰 위기와 고통 속에서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견디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히스기야 왕에게 큰 위기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히스기야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라(잠3:5)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의 신하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유다 왕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무리에게(대하32:9) 한 말 때문입니다: “… 무엇을 의뢰하느냐”[“네가 무엇을 믿고 그처럼 담대해졌느냐?”(왕하18:19, 현대인의 성경)]. 과연 산헤립의 말처럼 히스기야 왕과 유대 백성들은 “무엇을” 또는 누구를 “의뢰”하였습니까?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7, 8절). 그들은 임마누엘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의뢰하였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낙심하지) 않았습니다(7절). 특히 유다 백성의 지도자인 히스기야 왕이 임마누엘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의뢰하였기에 그는 예루살렘 성문 광장에서 유다 백성들을 모아 그들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6절). 그의 위로의 말(메시지)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확신의 찬 말이었습니다. 그 확신의 찬 말은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앗수르 왕 산헤립과 함께한 그를 따르는 온 무리보다 크시기에 (7절)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신다’는 것이었습니다(8절). 실제로 열왕기하 18장 5-6절을 보면 성경은 히스기야 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였는데 유다의 모든 왕 중에서 그와 같은 왕이 없었다. 그는 모든 일에 여호와를 따르며 순종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켰다”(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습니다(8절).

 

히스기야 왕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았습니다(대하32:7). 그랬기에 그는 예루살렘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을 성문 광장에 모아 놓고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6절). 그 결과 그 모든 사람들도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8절). 다시 말하면, 그 모든 유다 백성들도 히스기야 왕처럼 하나님을 의뢰하므로 두려워하며 놀라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 수 있었습니다(7절, 참고: 왕하18:22, 30). 그들 모두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대하32:7-8),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11절, 참고: 왕하18:32)는 구원의 확신이 있었기에 앗수르 왕인 산헤립과 그의 군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했으며 안심할 수가 있었습니다(대하32:7, 8). 성경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저는 개인적으로 낙심될 만한 상황과 불안한 상황을 접할 때 성령님께서 종종 시편 43편 5절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사 그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간구케 하시는 경험을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저는 이 말씀을 제 자신의 영혼에게 선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갑니다: ‘제임스야, 네가 왜 낙심하며 왜 불안해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이러한 기도를 드릴 때에 성령님께서는 저의 시선을 낙심될 만한 상황과 불안한 상황에서 소망이 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저의 영혼을 소성케 해주시며 부흥케 하시사 다시금 일으켜 주시어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십니다. 오늘도 신실하신 주님께서 낙심하며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14:27),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9:2),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22절). 주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를 받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해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