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억울할 때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시편 576).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사람은 나를 미워하고 나를 괴롭힙니다. 왜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 사람은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라도 좀 알면 좋겠는데 아무 이유 없이 그 사람은 나를 미워하여 나를 괴롭힙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 사람들을 모아 나에 대하여 말을 만들어 나를 비방하며 모함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연합하여 나를 넘어트리려하며 심지어 그들은 나를 위기에 몰아넣으려고까지 합니다. 나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는 마음이 너무나 괴롭고 힘듭니다. 나는 너무나도 억울합니다. 이렇게 내 영혼이 억울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 본문 시편 57편 6절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다윗은 그리 말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아니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므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다주었는데, 사울 왕은 질투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하므로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굴에 있었을 때 이 시편 57편 시를 지으면서 하나님께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자기의 영혼이 억울할 때에 어떻게 하였는지 한 5가지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그의 영혼이 억울할 때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성경 시편 57편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다윗은 그의 영혼이 억울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영혼이 주님께로 피하되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자기가 당면한 모든 재앙들이 지나가기까지 피했습니다(1절). 우리도 우리의 영혼이 억울할 때 주님께 피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시기 때문입니다(61:3). 우리는 인생의 폭풍과 광풍이 몰아닥칠 때에 그 폭풍과 광풍이 다 지나갈 때까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께 속히 피해야 합니다(55:8). 우리는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해야 합니다(36:7). 우리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항상 의지하여(62:8) 우리의 영혼이 억울할 때 주님께 피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17:8)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그의 영혼이 억울할 때 자기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성경 시편 57편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동굴 안에 숨어있는 상황에서 자기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어떻게 다윗은 그리 간구할 수 있었을까요? 분명히 육신의 눈으로 자기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더라면 다윗은 결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신앙을 고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서남북 갇힌 동굴 안에서 자기가 처한 상황만을 바라보고 있었더라면 다윗은 낙망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동굴 안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았기에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자기를 위하여 이루실 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바울과 실라가 생각납니다. 동서남북 갇힌 감옥 안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좀 이해가 되겠는데 어떻게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제 생각엔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줄을 믿는 신앙인은 모든 결과를 떠나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의지하기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찬양의 능력입니다. 상황에 근거한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근거한 찬양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던지 간에 우리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우리가 만난 재앙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셋째로, 다윗은 그의 영혼이 억울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자기에게 보내실 줄을 믿었습니다.

 

성경 시편 57편 3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다윗은 구원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는 사울 왕에게 피하여 굴 안에 숨어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실 줄 믿었습니다(3절).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신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 첫째 아기가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인자와 진리를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진리의 말씀은 시편 63편 3절이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저희 부부는 이 말씀을 월요일 아침에 받고 첫째 아기 주영이를 빨리 죽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주영이 중심으로 모인 가족 식구들이 둥그렇게 서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후 모든 기계를 끄고 호수를 빼낸 후 주영이는 제 품안에서 잠들었습니다. 나중에 주영이를 화장한 후 뼛가루를 뿌리고 다시 육지로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굉장하고 놀라운 구원의 사랑을 찬양케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저희 부부 인생의 최대의 위기 때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보내시사 하나님을 찬양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위기란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믿습니다.

 

넷째로, 다윗은 그의 영혼이 억울할 때 자기의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된 가운데서 노래하고 찬송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57편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접한 재앙들 가운데서 하나님께 피신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줄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실 줄 믿었습니다(1-3절). 결국 재앙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고 있었던 다윗은 마음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그에게는 구원의 확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 질 것과 재앙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경험할 줄 확신했습니다. 이 확신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결심했습니다(7절). 그 결과 억울했던 다윗의 영혼은 깨어 새벽을 깨웠습니다(8절). 우리의 영혼도 깨어 새벽을 깨워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의 영혼이 억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다윗은 그의 영혼이 억울할 때 하나님이 높이 들리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57편 5절과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흥미롭습니다. 사울 왕을 피해 굴에 숨어 있는 다윗이 하나님이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간구하였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그는 억울하게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재앙들을 만나는 상황에서도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면서(9절) 하나님이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간구했다는 것은 저에게 도전이 됩니다. 저는 어떻게 다윗은 그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볼 때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3절)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다윗은 그의 영혼이 억울하고 재앙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피신하였을 때 그가 간구한 하나님의 은혜, 그가 부르짖었던 하나님의 뜻, 그가 사모했던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경험하므로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를 궁창에 이르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잊을 수가 없는 마음의 추억입니다. 저는 제 셋째 삼촌 목사님의 입관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후 찬송가 40장(“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을 모든 조문객들과 함께 힘차게 하나님께 찬양했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특히 저는 후렴인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를 부를 때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제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시는 경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저는 제 셋째 삼촌 목사님이 살아생전에 티와나 멕시코에 선교 가서 멕시칸 장애인들 앞에서 그 찬양 후렴 가사를 스페인어로 찬양했던 그 때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저는 제 셋째 삼촌이 돌아가기기 전 가족 신년 예배 때 암으로 고통당하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몸을 일으키셔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셨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떻게 암 환자가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으면서도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사랑하는 가족 식구를 먼저 떠나보내면서 장례식에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사울 왕을 피하여 굴에 숨어있었으면서도 그 재앙과 같은 상황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로 말미암아 주님을 높이되 주님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간구했던 다윗을 생각할 때 도전을 받습니다. 저 또한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이나 목회에 초점을 맞추면서 제 기도의 영역이 너무나 한정돼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물이 바다 덮음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길 기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의 영역을 넓히시사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과 주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억울한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의 혀가 날카로운 칼 같은지 모르겠습니다(시57:4). 왜 형제, 자매를 비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3절). 마치 사람 앞에 웅덩이를 파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빠지게 하려는 것처럼 별의 별 웅덩이를 파서 형제, 자매로 하여금 빠지게 만들려고까지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더 큰 상처를 받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억울한 대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때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교회를 떠나기까지 하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재난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지체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재앙들 가운데 있을 때에 주님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사 깊이 경험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확정되고 확신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