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눌리는 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린도후서 1128).

 

 

저는 뭣도 모르고 담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부목사 경험도 1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제가 쭉 자라났던 승리장로교회에서 아버님께서 담임 목사님으로 섬기시고 계실 때 부목사로 딱 1년 섬긴 경험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경험 후 탈진하여 요나처럼 아버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한국으로 도망갔습니다. 한국에 가서 서현교회에서 교육 목사로, 그것도 영어사역을 섬기다가 나중엔 새 가정부도 좀 섬겼었습니다. 그것도 다 합쳐서 2년 9개월뿐이었습니다. 물론 담임 목사가 되는데 경험이 다는 아닌 줄은 압니다. 그저 그만큼 부족한데 주님께서 교회갱신목회자협회 수련회 때 강사 목사님을 통하여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 18절을 주시므로 다시 승리장로교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버님 목사님께서 은퇴하시고 제가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게 벌써 금년 12월 21일이면 15년이 됩니다.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볼 때 언젠가 아내가 저에게 한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James, you have changed’(제임스, 당신은 변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담임 목사가 된 후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때 아내의 그 말에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부인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제 자신을 봐도 달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왠지 “담임 목사”라는 직분이 저로 하여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전처럼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님들과 허심탄회 하게 말도 못하고, 교제도 마음 것 못하면서 늘 교회 목양실에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담임 목사’가 뭐길래 내가 이렇게 변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담임 목사”란 직분에게 주어진 압력(pressure)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특히 정신적인 압박이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담임 목사가 되니까 더욱더 무거운 책임감도 느낄 뿐만 아니라 제가 제 자신에게 부여하는 압력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와 더불어 이런 저런 신경 쓰는 일들이 더욱더 많아지고, 원치 않는 스트레스도 받으면서 마음이 참 무거울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제 마음엔 종종 눌리는 일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 새벽기도회를 준비하고자 어제 저녁에 성경을 읽다가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11장 28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11장 28절을 보면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마음에는 눌리는 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혹여나 성도들이 연약하여 실족하게 될까 봐 염려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9절을 보십시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이러한 바울의 염려, 그의 애타는 마음에는 두려움조차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란 사단이 그리스도를 향한 성도들의 마음이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3절). 바울은 교회 성도들이 그가 전파한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에서 떠나 다른 복음(4절)을 용납하여 믿음에서 떠날까바 염려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염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 교회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3절).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니(14절)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므로(15절) 믿은 자들을 미혹하여 진리에서 떠나 믿음을 배반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바울은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교회 성도들을 향한 염려로 인하여 바울은 날마다 마음이 눌렸던 것입니다.

 

담임 목사에게는 이러한 마음의 눌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에게는 성도들을 향한 염려로 인하여 속에 눌림이 있어야 합니다. 혹여나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 떼들 가운데 연약하여 가장한 사단의 일군들에게 미혹되어 믿음을 떠나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까 염려해야 합니다. 물론 이 염려 외에도 목회를 하다 보면 다른 많은 염려들이 있겠지만 우리 목회자들이 제일 염려해야 할 것은 성도들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영혼 구원에 제일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믿음에 견고히 서 있는지 안 있는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염려로 인하여 우리 마음에 눌림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눌린 마음을 소성케 해 주실 것(restore)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새 활력을 넣어 주실 것(refresh)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 마음을 부흥케 하실 것(revival)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