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궁핍한 것입니까?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사무엘하 211).

 

 

요즘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궁핍(financial need)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재정적인 압박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경제적 궁핍 외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도 궁핍함(mental and emotion need)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불안정하여 이런 저런 증상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궁핍함 보다 제일 심각한 것은 전 세계가 영적으로 궁핍함(spiritual need)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공허함 가운데 이런 저런 영성(spirituality)을 추구하므로 영적 혼동의 상태(a state of spiritual illusion)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러한 “기근”(famine)이 우리에게 임하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는 종종 “기근” 또는 “가뭄”이란 단어들을 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구약 성경 창세기 43장을 보면 야곱의 시대 때 풍족한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심하였었던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창43:1). 또한 우리가 신약 성경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탕자가 거하던 곳에 크게 흉년이 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14절). 왜 이러한 기근이 임하는 것일까요? 우연입니까? 결코 우연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근을 주시는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목적을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단련의 기근(famine of training)과 (2) 징계의 기근(famine of correction). 창세기 43장에 나오는 기근은 요셉의 형들에게는 징계의 기근 이였겠지만 그 기근의 주된 목적은 요셉을 단련하는 기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근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야곱과 요셉과 그의 가족 식구들이 경험하므로 구원의 하나님을 더욱더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진보 및 정금같이 나오는 믿음의 축복을 누리게 한 기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반면에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기근은 탕자로 하여금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오게 하는 징계의 기근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지금 여러분은 기근을 맞이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종류의 기근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오늘 본문 사무엘하 21장 1절에 나오는 기근은 바로 징계의 기근(famine of correction)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간구하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1절).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족속들이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기브온 사람들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한 열심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기를 꾀하여(2절) 실제로 그들을 학살하였고 멸하여 이스라엘 경내에 머물지 못하게 한 고로(5절) 다윗의 시대에 삼년간 기근을 주신 것입니다(1절). 그러므로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2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3절)고 묻습니다. 그 때 그 기브온 사람들은 자기들을 모한 사람의 자손 일곱을 내어 달라고 요구합니다(5-6절). 그러면 자기들이 그 사울의 일곱 자손을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하나님 앞에서 목매어 달겠다고 말합니다(6절). 다윗은 이 요구를 듣고 사울의 자손 일곱을 그들에게 내어주되(8-9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껴 그들에게 내어주지 않았습니다(7절). 그 이유는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7절). 결국 기브아 사람들은 다윗이 넘겨준 사울 자손 일곱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함께 죽고(9절) 사울의 아내인 아야의 딸 리스바는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반석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했습니다(10절). 그녀의 행한 일이 다윗에게 들리매(11절)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취하여(12절) 올라와 기브온 사람들에게 죽임을 목매어 달려 죽임을 당한 사울의 자손 일곱의 뼈를 거두어(13절) 다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 아비 기스의 묘에 장사하였습니다(14절).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셨습니다(14절).

 

저는 이 성경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왜 우리는 궁핍한 것입니까?”라는 질문의 대답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또한 감정적으로나 경제적 등으로 오는 궁핍함의 원인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 맺는 언약을 파괴한 죄 입니다. 물론 다윗의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이 맞이한 기근은 사울과 그의 집이 하나님 앞에서 기브온 사람들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족속이 맺은 언약을(2절) 어기고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하고 멸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접하는 삶 속에 궁핍함도 우리 선대의 죄로 인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여기에 초점은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는 언약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기브온 사람들이 과거 여호수아 시대 때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면서까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족속과 언약을 맺었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과 그의 집에서 학살을 당한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을 들어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을 다윗의 시대 때 기근을 주시므로 다윗을 통하여 들어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신실하시되 우리 거룩하신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는 축복을 신실하게 내려주시지만 그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를 신실하게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이와 맺은 언약(예를 들어 부부가 결혼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맺은 서약)이나 하나님과 맺은 언약(예를 들어 우리가 하나님께 서약한 것)을 힘써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을 힘써 지켜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신실하게 힘써 지켜 나아가지 않을 때 우리의 삶 속에는 항상 기근과 궁핍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나 서약을 사울 왕처럼 신실하게 지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잘못된 열심 때문입니다(2절). 마치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기 전에 사울로서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했던 것처럼(빌3:6) 사울 왕 또한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잘못된 열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족속이 언약을 맺은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열심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열심입니다. 참 위험합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고 확신하면서 열심을 내어 섬기고 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열심히 섬기니 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교회의 질서와 화평을 깨기까지 하면서 문제와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열심히 교회를 봉사하는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사울처럼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잘못된 열심입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하나님처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족속들을 속였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방백들 또한 그들과 언약을 맺기 전 하나님께 여쭤보지 않았습니다. 양쪽 다 잘못을 범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이기에 사울 왕 또한 그 언약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한답시고 그 언약을 무시하고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항상 죄를 범할 때는 이렇게 누군가를 위한다는 자기 보기에 좋은 이유(변명)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저런 구차한 변명을 하면서 하나님께 서약한 것들이나 하나님 앞에서 다른 이와 맺은 언약을 파괴하는 죄를 간과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하실 수도 없으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마치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도 들어주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와 약속을 한 비신자들조차도 사랑하셔서 그들의 원한도 들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윗처럼 왜 우리에게 궁핍함이 임했는지 하나님께 기도로 여쭤보면서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님의 깨달음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겸손히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윗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되 우리는 다윗처럼 다른 이와 맺은 언약(약속)을 깨지 말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