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상황

 

 

 

[시편 271-6]

 

 

혹시 요즘 여러분 중에 두려운 상황에 쳐해 있는 분이 계신지요? 만일 계시다면 왜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주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걱정, 근심, 불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우리 마음속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하면 생각나는 성경구절 중 하나는 이사야 41장 10절을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 .” 저는 개인적으로 “두려움”하면 요한일서 4장 18절이 생각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르지 못하였느니라.” 분명히 성경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온전한 사랑이 결핍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 비즈니스맨의 리더십 개발을 위한 편지”(제 64호)를 보면 우리 안에 잠재된 무의식적인 두려움은 크게 4 가지로 삶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두려움은 우리의 잠재력을 마비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재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묶어버리고 주저하게 만들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말입니다. (2) 두려움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대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거절당하기를 두려워해서 가면을 쓰고 원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가장하고 실제 감정을 부정합니다. 결코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3) 두려움은 우리가 누리는 행복을 방해합니다. 행복과 두려움은 동시에 공전할 수가 없습니다. (4) 두려움은 우리의 성공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바라는 일이 일어날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두려워하는 일이 발생할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패를 준비합니다. 두려움은 두려워하는 일이 생기게 합니다(인터넷).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두려움을 극복해 나아가야 할까요? 오늘 본문 시편 27편 1-6절을 보면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 쳐해 있었습니다. 그 두려운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했는지 3 가지로 교훈을 받으면서 그 교훈들을 우리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안연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담대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27편 3절을 보십시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어떻게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안연(담대) 할 수가 있었을까요?

 

  • 그 첫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두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안연(담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며 내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두려운 상황에서도 안연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빛 되시며 구원자가 되시며 우리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은 참으로 어두웠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27편 2-3절을 보면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다윗에게로 왔고 또한 군대가 다윗을 대적하여 진을 쳤습니다. 다윗은 환난 가운데 있었습니다(5절). 이러한 어두운 상황에서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나아가므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안연(담대)했습니다.

 

다윗처럼 두려운 상황에서 안연(담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두려운 생황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그 순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걱정도 되고 근심하면서 불안해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마치 사도들이 예수님이 배 안에서 자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파도치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인생의 죄악 된 파도와 물결이 몰아칠 때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속으로는 두려워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두려움을 인정하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솔직히 인정하는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잠잠히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빛 되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여기서 “빛”은 어두움을 자동적으로 좇아버리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두움”은 다윗에게 있어서는 그의 대적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그의 대적들, 특히 전쟁 상황에서의 그의 대적 군대들을 가리켜 “어두움”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어두움을 빛이신 하나님께서 다 좇아내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빛은 더 환하게 발하는 것처럼 두려운 상황이면 상황일수록 빛 되신 하나님은 어두움을 다 물러가게 하십니다. 이 구원의 하나님, 빛 되신 하나님을 바라본 다윗은 구원이신 하나님, 승리 또는 구출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승리를 주실 수 있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생명의 능력이신 하나님, 곧 다윗의 피난처이시며 다윗의 산성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즉, 다윗은 어떠한 군대 정황(배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무리 어두울지라도 빛 되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상황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하나님의 구원의 빛은 더욱더 환하게 발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두려운 상황이면 상황일수록 더욱더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승리케 하실 수 있는 그 분의 능력이 우리 마음과 생각과 감정, 전 인격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안연(담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 둘째 이유는 다윗은 과거의 구원의 은총을 뒤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두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안연(담대)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승리(구원)의 체험을 되새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27편 2절을 보십시오: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다윗은 그가 당면한 어두운 상황에서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대적들을 실족케 하여 넘어뜨리신 일을 기억하므로 두려운 상황에서도 오히려 안연(담대)했습니다. 우리는 현재 어두운 상황 속에서 캄캄하게 보이기만 하는 미래를 생각하기에 앞서 과거의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총들을 생각하므로 말미암아 현재의 당면한 어두움 상황 속에서 빛 되신 주님에 대한 구원/승리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3) 그 셋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두운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안연(담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다윗은 미래에 어떠한 전쟁이 일어나서 그의 대적 군대가 진을 치며 자기를 죽이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3절). 그 이유는 그가 빛 되시며 구원자가 되시며 그의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두려운 상황에서 담대해야 합니다. 저는 한 가지 확신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 빌립보서 1장 6절 말씀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저는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약속인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란 말씀 또한 신실하신 주님께서 분명히 이루실 줄 확신합니다. 저는 어떠한 두려운 상황을 접할지라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담대하게 견고히 서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나아가시는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둘째로,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27편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한 가지 구했습니다. 그 한 가지 기도 제목은 그가 하나님의 집에 거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집을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까?

 

(1)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 볼 때 우리 마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함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자기 일생 모든 날에 묵상했습니다. 은혜 충만한 하나님 계시의 아름다움을 묵상하는 자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안함을 체험합니다(박윤선).

 

(2)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거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했던 이유는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하심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27편 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길 원했던 이유(4절)는 그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사귐이, 그 모든 위험에서 구원 받는 방도이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제 첫째 아기 주영이가 질병으로 고통당하면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을 때 제가 자주 듣고 묵상했던 미국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그 영어 복음성가는 바로 “Under the Shadow of Your Wings” (주 날개 그늘 아래)입니다. 이 노래 가사 내용 중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주 날개 그늘 아래 주님의 거룩한 처소에서 나의 하나님 주를 기다리네 이곳 주의 처소에서 주의 사랑이 나를 이끄시니 주 알기 위해 나를 드립니다 주 사랑으로 덮으소서 주님의 마음 깊은 곳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나를 보호하소서 주 알기 원합니다.” 저는 이 노래를 밤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주영이와 함께 있다가 차를 타고 병원 주차장에서 나오면서 창공을 바라보며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 따라 부르면서 저는 제 아내와 제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는 그 새벽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의 날개 그늘 아래, 거룩한 비밀스러운 곳에 우리 주영이를 품어주시고 숨겨주시길 간구하는 마음으로 이 찬양을 따라 불렀습니다. 이 찬양은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하심에 맡기는 기원의 찬양 이였습니다.

 

(3) 다윗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원수를 물리치시므로 자기로 하여금 승리케 하실 것을 소망하였기에 두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한 가지 청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27편 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 박윤선 박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가 많은 원수 앞에서 몰락되지 않고 도리어 소망 중에 태연자약하게 살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소망 없이는 어두운 환경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고개를 들고 주님을 소망 중에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죄악 된 물결의 파도가 더 치면 칠수록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찬송가 543장 2절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이 세상에는 근심된 일이 많고 죽을 일이 쌓였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간구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서 다윗처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

 

마지막 셋째로,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27편 6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면서 그의 보호하심과 승리케 하실 것을 소망했습니다(5절). 그리고 그는 믿음으로 장래의 소원 성취에 대한 감사와 찬송을 서원했습니다(6절, 박윤선). 이 행동은 승리자로서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행동입니다(박윤선). 어떻게 이 행동이 가능할까요? 어떻게 다윗은 자신의 대적과 자신의 원수 된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어두운 환난 가운데 있으면서도 승리자로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겠다고 서원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과거에 자기로 하여금 승리케(구원)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가 당면한 원수들이 대적하는 어두운 상황에서와 또한 앞으로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능히 건시지고 승리케 하실 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상황은 변치 않았는데 다윗의 마음은 변했습니다. 두려움 되신 확신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의 마음 자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행전 16장 25절 말씀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그 두려운 상황에 지배를 받기보다 구원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27편에 나오는 시편 기자 다윗은 환경에 지배를 받기보다 그 환경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으로 자기가 당면한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오히려 믿음으로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자는 찬양 드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다윗처럼 두려운 상황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사41:10). 어떠한 두려운 상황에 저와 여러분들이 쳐해 있을지라도 또한 앞으로 처하게 될지라도 우리 모두가 다윗처럼 오히려 안연(담대)하며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구하는 가운데 결국에 가서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예배자로 세움 받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