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0: 이 시기를 아십니까?

 

 

 

[로마서 13장 11-14절 말씀 묵상]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장 11-14절).

 

과연 여러분들은 지금이 어느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한국어가 짧아서 한국어가 틀릴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 제가 종려주일 주보를 만들 때마다 “종려”(Palm)라고 적지 못하고 “종료”(Conclusion)라고 적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근데 저는 한국어는 틀렸지만 왠지 이렇게 종려주일을 맞이하기만 하면 예수님의 종료인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종려주일은 고난(수난) 주간이 시작되는 첫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종려주일, 내일부터는 고난 주간, 그리고 금요일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금요일 …   이렇게 매년 종려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전도서 3장 1-14절 말씀 중심으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묵상한 말씀 중 전도서 3장 1절을 보면 지혜자 솔로몬 왕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심에 있어서 어느 때인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에 성도들에게 편지를 계속 써내려 가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11절).  과연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그 “시기”는 어떠한 시기입니까?  한 두 가지로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 시기란 바로 주님의 재림 시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고 있는 이 시기는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온 시기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고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지금 이 때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은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의 때가 가까왔다는 말씀입니다(11절).  다시 말하면, 지금은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때요,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왔다는 말씀은 우리들의 구원의 때. 즉 우리 구속의 마지막 단계인 영광(Glorification)이 가까왔다는 뜻입니다(11절)(MacArthur).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다는 말씀은 우리가 어느 순간에 죽어서 주님을 만나게 될지 모르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후 시간이 흐른 그 만큼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 더욱 가까와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로,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그 시기란 바로 자다가 깰 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만큼 저와 여러분들이 잠에서 벌써 깰 때가 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자다가 깰 때”란 무슨 의미입니까?  그 의미는 지금은 죄악의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란 뜻입니다(박윤선).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인 만큼 죄악이 극도에 이르는 때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바울은 오늘 본문 12절에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낮이 가까왔”다는 말씀은 빛되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와 졌다는 뜻이고 “밤이 깊”어졌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만큼 이 세상에 죄악의 밤이 깊어졌다는 뜻입니다.  즉,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와졌기에 이 세상의 죄악의 밤이 더욱더 깊어 졌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드려야 합니까?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운 이 때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1절을 헬라 원문으로 보면 이 귀절 첫 머리에”kai touto”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영어 NASB 성경은 이 문구를 “And this do”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그리고 이것을 행하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문구는 “또한 너희가 이것을 더욱 행해야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박윤선).  여기서 “이것”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과연 우리가 무엇을 더욱 행해야 합니까?  그것은 로마서 13장 8-10절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임을 알고 더욱더 힘써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이미 마태복음 24장 12절에서 말세 지말에 대하여 예언하신 것처럼 우리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져 가는 이 때에 우리는 더욱더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까?  우리는 피차 사랑 외에는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덕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등등.

 

          둘째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벗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2절을 보십시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운 이 때에 저와 여러분들은 죄악이 밤이 더욱더 깊어졌음을 깨닫고 이 세상의 어두움의 일들을 모두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들이 벗어 버려야 할 이 세상의 어두움의 일들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한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어두움의 일인 방탕과 술 취하는 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방탕이란 무엇입니까?  원어인 헬라어 단어 “κω̂μος, kōmos”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영화롭게 하는 축제 과정에 사용되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중엔 과도하며 아무 제약을 받지 않는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파티, 술을 마시며 흥청거리며 미쳐 날뛰는 술 파티 등에게 부정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Cottrell).  결국 사람이 방탕하게 되면 술에 취하여 절제력을 잃고 흥청망청 되면서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수요기도회 때 묵상한 전도서 2장 3절을 보면 지혜자 솔로몬 왕은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자기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자기 육신을 즐겁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결론은 무엇이었습니까?  술취함으로 쾌락을 얻고자 한 자기의 수고가 헛된 것이요 무익한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11절).  과연 방탕과 술 취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과연 유익한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방탕함과 술 취하는 것이 “육체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일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기 때문임.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또한 벗어 버려야 할 어두움의 일은 바로 “음란과 호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와 같지 않나 생각합니다.  음란과 호색이 가득찬 이 세상, 과연 왜 이렇게 음란과 호색이 가득차 있는 것입니까?  저는 그 원인을 우리가 이마 묵상한 로마서 1장 24절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있다 교만하여(1:22) 썩어지지 아니한느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끼 때문입니다(23절).  우리는 이미 지난 주일 묵상한 로마서 13장 8-10절을 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데 그 계명 중 하나가 바로 “간음하지 말라”는 것이였습니다(9절).  그렇게 말씀한 후 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3절에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려야 하는데 그 어두움의 일 중 하나는 바로 “음란과 호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음란”이란 헬라어 단어인 “κοίτη (koitē)“의 문자적 의미는 ‘침대’(bed)입니다.  이 단어는 성관계를 맺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오늘 본문에서는 단수가 아닌 복수로 쓰여졌는데 그것은 무차별한 성적 혼합 (sexual promiscuity), 또는 성적 과잉(sexual excesses), 그리고 매춘행위(harlotries)를 가리킵니다(Cottrell).  그리고 “호색”은 “예의를 문란하게 하며 색을 탐하는 행위”로서 “불견한 언사, 혹은 불결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박윤선).  이러한 권면을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3-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색욕을 좇아서는 아니됩니다.  이것은 육신의 일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때가 가까운 만큼 우리는 이러한 육신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의 구원의 때가 가까운 이 때에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쟁투와 시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쟁투”란 무엇입니까?  쟁투란 다툼의 기질, 언쟁과 사소한 일로 다투는 영을 가리킵니다.  쟁투란 상대방을 해가 될지언정 자기가 원하는 길을 걷고자 적대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반영합니다(Cottrell).  우리는 이러한 쟁투심으로 말미암아 서로 인간관계 에서 시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기하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툼과 분쟁 속에서 결국 영의 일을 도모하기 보다 육의 일을 도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육의 일,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우리는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2절을 다시 보십시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입어야 할 빛의 갑옷은 무엇입니까?  한 두 가지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입어야 할 빛의 갑옷은 바로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것(behave properly)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  즉, 저와 여러분들이 입어야 할 빛의 갑옷이란 죄악된 밤의 생활을 청산하고 낮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낮의 생활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것은 단정히 행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단정히 행하는 것이란 질서 있는 행위를 가리킵니다(박윤선).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행위는 단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행위에는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오늘 본문에서 명령에서 우리가 순종해야 겠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God is not a God of disorder but of peace)(고전14:33).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4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But everything should be done in a fitting and orderly way).  둘째로, 저와 여러분들이 입어야 할 빛의 갑옷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4절을 보십시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이것은 성화(sanctification)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한다는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를 말씀합니다(MacArthur).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이 거룩해져 간다는 말씀입니다.  찬송가 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란 찬양이 생각납니다.  이 찬양 가사를 보면 예수님이 입으신 옷은 참 아름다우며(1절), 귀하며(3절) 또한 “영광의 옷”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이 예수님의 영광의 옷을 입어야 함.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이 시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영광의 옷을 입고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아름다우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고난 주간 첫 날인 오늘, 하나님께 종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주님, 시작이요 마지막이 되시는 주님, 그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지금 이 시기가 어느 시기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처럼 지금 이 시기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온 이 시기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훨씬 더 가까왔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죄악의 밤이 깊도 빛되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방탕과 술 취하는 것, 음란과 호색하는 것, 쟁투와 시기하는 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대신 우리는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질서있게 살아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함.  우리는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주님이 다시오시는 그 날 모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영광의 날을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아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