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8: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시편 48편 말씀 묵상]

 

 

지난 과거를 뒤돌아 보실 때 여러분들이 겪었던 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아직도 마음 깊이 기억하고 있는 그 때 그 순간들, 그러나 그 위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것을 기억하고 계신지요?  오늘 양로원에 가서 저희 교회 장을수 할머님을 만나서 함께 시간을 같이 보냈었습니다.  그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저는 제 품에 고희 잠든 첫째 아기 주영이에 대해서 잠깐 나누었습니다.  아기의 입장에 서지 못하고 부모의 욕심 때문에 아기를 병중에 더 고생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나중에서야 들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기에 대하여 장할머님과 나누면서 저는 인생은 시작보다 과정과 특히 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할 때에 우리는 현재의 위기 또한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이겨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부는 찬송가 중 “내주여 뜻대로”(431장)가 있습니다.  그 찬송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독일 전역이 30년간의 종교전쟁으로 폐허가 됐을 때 눈물의 기도를 드리던 한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핍박받는 신자들의 가정을 찾아 다니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 전역에  흑사병이 나돌아 1천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독일은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 부부는 어느날 중병을 앓고 있는 한 신자의 가정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었을 때 이 목사님 부부는 처참한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교회와 집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두 아들은 서로 껴안은채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울면서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온몸과 영혼을 다주께 드리니/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이 사람의 이름은 벤자민 슈몰크 목사라고 합니다.  그때 올린 기도에 곡이 붙여진 것이 바로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합니다.  고통과 시련까지도 순종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시편 48편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특히 14절 말씀에 초점을 맞추면서 본문을 묵상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이 말씀 중심으로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을 걸고 “이 하나님”에 대해서 한 4가지로 묵상하면서 우리의 책임 또한 한 4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광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48편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큰 왕”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2절).  그러시기에 우리 광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그 방식이 큰 것입니다(박윤선).  그러나 우리는 이 하나님의 큰 구원의 방식을 너무나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기에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에  대한 생각과 기대가 우리 마음에 가득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기대대로 구원을 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불평하 던지 혹은 낙심하여 쓰러질 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하나님께서 40년동안 그들을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에 있어서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주님의 뜻은 다 그들을 낮추시며 그들을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습니다(출8:16).   

             

언제가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에 대해서 놀란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구원하시되 한 어려운 상황에서 또 다른 어려운 상황으로 구원해주시다가 결국은 13년이 지난 30이 되어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일을 묵상한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방식대로 구원하시되 죽을뻔하다가 애굽의 보디발의 종으로 팔려하게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셨고, 또 보디발 집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갇히고…  고난에서 또 다른 고난으로 구원으로 받는 모습 …  그러나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사 결국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 속에서는 요셉 한 사람만 구원하시려고 하였던 것이 아니라 그를 고난에서 고난으로 인도하시다가 구원하시사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입니까?

 

우리, 명심하십시다.  우리 광대하신 하나님은 그의 큰 구원의 방식대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그가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던 아골 골짜기로 인도하시던 결국 마침네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복이라는 사실을 우리 잊지 마십시다.

 

둘째로,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오늘 본문 시편 48편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도다”.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하나님의 거룩한 성이 터가 높고 아름다운 것처럼(2절)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견곤한 성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견고한 성이시며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도 시편 23편 4절을 보면 이렇게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주시며 안위(위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피난처시라고 우리에게 알리셨습니다(3절).  우리 하나님은 성경 역사를 보면 번번히 구원자로 나타나셔서 자기의 백성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두번 구원하셨었습니까?  “예수” 그 이름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피난처로 알리시는 하나님에게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시31:2-3).

 

셋째로,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48편 4-5절을 보십시오: “열왕이 모여 함께 지났음이여 저희가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갔도다”.  이 말씀은 외국의 임금들이 예루살렘에 침입하여 점령하려 했으나 안개처럼 지나가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박윤선).  그 때 침략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두려워하여 도망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침략자들을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듯이 주님께서는 열방들의 세력을 파멸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승리케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대적을 물리치시므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 20장4절을 보십시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할 것이며”.  그래서 시편 기자도 자기 자신의 활아니 칼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기를 대적에게서 구원(승리케)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였던 것입니다(시44:6-7). 

 

저는 개인적으로 선교를 하고 계시는 저희 교회 원로 목사님을 생각할 때 고린도전서 10장13절이 생각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원로목사님을 위험한 순간 순간마다 건져주시는 소식을 접할 때에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요 또한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 명심하십시다.  우리 하나님은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정의가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48편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나이다”.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상선벌악의 공의를 어김 없이 실행하시사 마침내 참된 신자의 억울함을 갚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박윤선).  이 하나님께 우리의 억울함을 아뢸 때에 정의가 충만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갚아주십니다. 

 

그 실제적인 예가 바로 저희 교회 히스패닉 사역(Hispnainc Ministry)를 담당하고 계시는 고메즈 목사님의 아들 경우입니다.  한 2주전 고메즈 목사님에게 아드님 Victor Jr. 형제 고소 사건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마 차를 운전하다가 상대방이 차사로를 냈나본데 그 상대방이 자기가 잘못하고도 오히려 고메즈 목사님의 아드님을 고소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 상대방이 힘이 있는 정치인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사고 났을 때 보고(report)를 작성했던 경찰도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여 차 사고를 낸 정치인의 편을 들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메즈 목사님의 아드님이 관련된 일하는 회사에서도 고메즈 목사님의 아드님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참 많이 힘드신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구하셨다고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고메즈 목사님이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그 정치인과 거짓 보고를 한 경찰과 회사 사람에게 내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 2주전에 법정에서 판사는 고메즈 목사님의 아드님의 편을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재판에서 이긴 후 고메즈 목사님의 아드님의 변호사는 두 가지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고메즈 목사님의 아드님이 법정에서 고생하는 동안 일을 못하고 있었으니 그 동안에 벌지 못한 돈을 상대방에서 내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대방을 고소해서 끝까지 그들이 거짓말한 것 등등을 법정에서 판결하도록 하는 것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메즈 목사님 얘기론 더 이상 추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 여기서 참 놀라운 신앙을 보게 됩니다.  물론 오늘 본문 말씀처럼 정의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신자들의 억울함을 갚아 주신다는 진리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상대방 정치인과 거짓말한 경찰 등을 고소할 수도 있는데 중단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서 느낀 것은 복수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즉 우리는 중단하고 멈출 때는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복수를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의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 정의가 충만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대적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그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광대하신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정의가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4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극진히 찬송해야 합니다오늘 본문 시편 48편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지존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통치하시는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47:6).  우리는 바울과 실라처럼 좁은 감옥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미하므로 말미암아 광대하신 하나님의 크신 구원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 올라와 극진히 광대하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2) 둘째로, 우리는 주님의 전에서 주님의 인자하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48편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여기서 “생각하였나이다”라는 히브리 원어 “따맘”은 대망함을 의미합니다.  이 시인은, 환난 중에서 낙심하지 않고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 피하여 주님의 은혜를 대망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시편 기자는 주님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깨달았습니다(박윤선).  우리는 환난 중에 낙심하지 않고 주님의 전에서 주님의 은혜를 대망해야 합니다.  그의 인자하심을 대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3) 셋째로,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48편 11절을 보십시오: “주의 판단을 인하여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정의가 충만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으로 인하여 우리를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으로 인하여 그의 구원을 경험하므로 말미암아 그의 구원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4) 마지막 넷째로, 우리는 후대에게 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48편 13절을 보십시오: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온(예루살렘)에 계시므로 그곳이 안전한고 아름다운 것을 자세히 보고 후대에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1세대들이 잘못한 것  가운데 하나는 후세대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 후세대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우상숭배하므로 하나님께 범죄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명기 6장6-7절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광대하신 하나님이시요 또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그는 우리의 원수를 대적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정의가 충만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그를 극진히 찬송해야 하며 그의 전에 그의 인자하심을 대망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줄 믿고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이 하나님을 우리 후대에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나를 죽기까지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