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2: 기억하고, 기념하며, 기뻐하는 삶

 

 

 

[창세기 50장 20절 말씀 묵상]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장 20절).

 

 

            우리는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remember)해야 합니다.  기억해야 할뿐만 아니라 우리는 현재 과거의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celebrate)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rejoice)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50장 20절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기념 하는 요셉이 자기의 형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과연 요셉은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어떻게 기념하였는지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과거의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현재 기념하는 자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봅니다.

 

            요셉은 십칠 세의 소년 때(창37:2) 자기의 열명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1) 요셉이 자기의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 야곱에게 고하였기 때문이요 (2절), (2)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요(3절), 그리고 (3)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5절).  그 결과 요셉은 자신의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18-20절), 빈 구덩이에 집어 넣은바 되었고(24절) 그러다가 결국은 이스마엘 장사꾼들에게 팔려(28절) 애굽 사람 바로의 시위 대장인 보디발에게 팔렸습니다(39:1).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로 섬기게 되었습니다(4절).  그러한 가운데서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여(6절) 보디발의 아내에게 계속 동침하자는 유혹을 받다가(7, 10, 12절) 결국 둘만 있었을 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녀의 손에 자기의 옷을 버려두고 도망하여 그 집에서 나아갔습니다(11-12절).  그리고 그녀의 모함으로 말미암아(14-18절)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게 갇히게 되었습니다(20절).  만일 요셉이 이러한 자신의 과거를 나중에 삽십 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41:46) 뒤돌아 보면서 자신이 받은 고난과 고통만을 생각했더라면 그는 분명히 과거에 머물러 현재의 자신의 삶 속에서 불평과 원망 속에서 복수의 칼을 갈면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였습니다.  그 은혜란 무엇입니까?  그 은혜란 바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신 것입니다(39:2, 3, 21, 23).  특히 요셉이 기억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게 갇혀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인자를 더하시므로 말미암아 전옥에게도 은혜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21절).  그랬기에 그는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약 9년 쯤 되었을 때[30세의 총리 + 7년 풍년 + 2년(45:6) = 39살] 자신의 형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45:5), “하나님 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7-8절상반절).   어떻게 요셉은 이렇게 형들에게 고백 할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자기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삶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할 뻔 하다가 이렇게 애굽까지 와서 종살이와 더불어 옥살이까지 하였지만 지금 애굽의 총리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형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또한 그들의 후손들을 이 세상에 두시려고 자기 자신을 애굽에 앞서 보내셨음을 깨달게 되었습니다(7절).  그러므로 그는 형들에게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8절).

 

            우리도 요셉처럼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의 삶과 모든 상황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우리의 현재 삶 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 삶 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결코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롬12:2).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과거의 삶 속에서부터 이미 이뤄나아가고 계셨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이 땅에서 이뤄지길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둘째로, 과거의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현재 기념하는 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정 식구들을 섬김니다.

 

            요셉은 어떻게 자기의 가정 식구들을 섬겼습니까?  첫째로, 요셉은 자기를 미워하여 죽이 려고까지 하였던 형들을 다 용서하였습니다.  만일 요셉이 자기의 형들을 용서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분명히 자기 앞에 있는 형들을 복수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을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형통의 복을 누렸던 요셉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기의 지난 세월을 바라보았기에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돌의 생명을 보전하시고 이 세상에 그들의 후손들을 두시고자 자기를 앞서 애굽에 보내심을 깨달았기에 요셉은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하면 요셉의 첫쨰 아들 이름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나은 첫째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졌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로 그의 모든 고난과 그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창41:51).  둘째로,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두 번이나 가나안 땅에서 식량을 구하고자 애굽에 내려왔을 때마다 요셉은 그 형들에게 곡식과(42:26, 44:1) 돈(42:28, 44:1)과 옷들(45:21-22),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 그리고 암나귀 열 필(23절)만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야곱과 온 가족 식구가 애굽으로 내려왔을 때에는 “애굽 땅의 아름다운 것(45:18), “애굽 땅의 좋은 것”(20절, 참고: 47:6, 11)을 주었습니다.  셋째로, 요셉은 야곱이 죽은 후 형들이 요셉을 혹시나 자기들을 미워하여 자기들이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갚을까봐(50:15) 요셉에게 아버지 야곱의 유언을 거짓말로 말했을 때(16-17절) 요셉은 울면서(17절) 자기 앞에 엎드린 형들을(18절)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습니다(21절):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헤아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가르리이다”(19-21절 상반절).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어떻게 요셉은 자기를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였던 형들의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좋은 것으로 풍족히 베풀어 주면서 두려워 엎드려 떠는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할 수 있었습니까?  오히려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위로를 받아야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어떻게 요셉은 위로 받기보다 그의 형들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그는 그의 형들과 온 가족 식구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마음은 미움과 원망과 복수심으로 가득찼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채워져 있었기에 요셉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의 형들과 온 가족식구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 온 가족 식구들을 섬기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을 용서하셨듯이 우리 또한 우리에게 고통과 상처를 준 가족 식구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회 식구들의 잘못은 용서하면서도 육신의 가족 식구들이 우리에게 한 잘못은 용서하지 않고 있습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의 식구들에게 좋은 것들로 베풀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베품을 받기를 원하면서 불만족과 불평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위로 받기 보다 두려움과 고통 속에 있는 식구들을 위로하되 요셉처럼 간곡한 말로 위로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있다면 우리는 용서하지 않으면서 가족 관계를 그저 신경을 들쓰면서 거리를 두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가족 식구들에게 좋은 것으로 베풀기 보다 좋은 것으로 베품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있다면 우리는 위로하기보다 위로 받기를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베풀어 주신 큰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해서는 아니됩니다.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어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의 힘으로 요셉처럼 우리 가족들을 섬겨야 합니다.  섬기되 우리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섬기되 예수님처럼 우리는 가족 식구들을 섬겨야 합니다. 

 

            셋째로, 과거의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현재 기념하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죽기까지 감당합니다.

 

            창세기 50장 24-26절을 보면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에게 “나는 죽으나”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증조 할아버지인 아브라함, 할아버지인 이삭, 그리고 아버지인 야곱에게 주신 약속인 애굽 땅에 인도하여 내시사 맹세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은 확신하고 있습니다(24절).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5절).  그리곤 요셉은 일백 십 세에 죽습니다(26절).  저는 이 요셉의 인생을 창세기에 근거해서 생각해 볼 때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 살다가 그 약속을 위해 죽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3년 동안 고난의 삶 가운데서도 요셉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으므로 인내하며 견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의 말씀으로 인하여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을 들었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소망하며 인내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는 자신의 죽음 준비하는 가운데서도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자기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도록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맹세시켰습니다.  참으로 요셉의 인생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역사에 요셉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다가 자기의 역활, 즉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잠들었습니다.  그의 역활 또는 그의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자기 형들과 그들의 후손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였습니다(45:7).  그래서 요셉은 그 형들에게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던 것입니다(50:21).  그래서 요셉은 극심한 7년의 흉년 가운데서도 자신의 형들과 온 가족 식구들을 먹여 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야곱으로 큰 민족을 애굽에서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46:3).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성취하는 과정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 역활을 잘 감당하고 그는 일백 십세에 애굽에서 잠들었습니다.  즉, 요셉은 객사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불쌍한 인생같이 보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요셉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잠들었기에 그의 인생은 참 아름답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원대한 구원 계획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신실하게 잘 감당하며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라기는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현재 우리의 삶 속에 기념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기념하되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기념하되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육신의 식구들과 영의 식구들인 교회 식구들을 겸손히 섬길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기념하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신실하게 잘 감당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현재 살 속에 기념하기를 원하는,

 

 

제임스 목사 나눔

(기억하며 기념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신적 기쁨을 맛보는 삶을 살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