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9: 마음을 확정하라!

 

 

 

[시편 57편 말씀 묵상]

 

 

언젠가 저희 집 막내 딸 예은이랑 함께 집에 있었을 때 어린이들이 보는 TV 방송 중에 “카이유”라는 만화를 잠깐 함께 보았습니다.  그 만화를 보다가 카이유라는 주인공 아이가 아빠랑 함께 나무를 심었는데 바람이 부닌까 카이유가 걱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카이유 아빠가 카이유에게 와서 도와주는데 심은 나무가 바람에 휘청 휘청하닌까 막대기를 갖다가 나무를 묶어서 심은 나무를 흔들리지 않게 하였습니다.  저는 그 장면이 어버이 날날 새벽기도회 때 생각이 났었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저는 집에서 자녀들에게 심은 나무 옆에 함께 묶여있었던 막대기가 되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막대가와 같이 아이들에게 든든히 버팀목이 되야 겠다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누구일까”(저자: 김종윤)이란 책을 읽고 난 후 독자서평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간과하고 지나가는 아버지의 소중함, 미워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자리를 내주어 든든한 버팀목으로 생각하는 소중한 분... 무심코 지나간 이런 아버지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내 마음속에 일깨워준 좋은 책였습니다”, “인생의 버팀목, 아버지 (조건종): 살아가면서 가깝지 않으면서도 큰 버팀목으로 지켜주신 분이 아버지다.”  저는 이 독자서평을 읽으면서 많은 아버지들과 아들(또는 딸들)과의 관계에서 “미워하면서도” 또는 “가깝지 않으면서도” 아버님은 소중한 분이시며 또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신앙의 부모님이 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것처럼 저 또한 제 자녀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과연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어하실텐데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마음을 확정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57편 7절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결심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여기서 마음을 "정한다"는 뜻으로 사용된 영어 단어 "steadfast"는 확고 부동한, 고정된, (신념 등) 불변의, 부동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편 기자는 단순히 마음을 정한 것이 아니라 확정한 것입니다.  그는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결정하고 결단한 것입니다.  마음을 정한다는 말씀은 이 길 이 방법 밖에 소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정한 사람의 삶이 행복합니다.  흔들리는 삶과 정한 삶의 차이는

행복함과 불행함의 차이처럼 큽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마음을 확실히 정한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후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후회가 없는 것이 확정된 마음입니다. … 

우리들의 마음이 한곳으로 고정되고 집중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마음이

갈팡 질팡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의 믿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흔들리면 은혜충만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인터넷).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마음을 확정하라!”는 제목 아래 마음이 확정한 성도는 위기와 역경 속에서 어떻게 하는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마음이 확정한 성도는 위기와 역경 속에서 피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57편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편 기자 다윗은 자기에게 임한 재앙으로 인하여 주님께 피하였습니다.  그 재앙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울의 핍박입니다.  오늘 본문 표제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시편 57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었을 때 쓴 시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핍박으로 인하여 도망다니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표제에 적혀 있는 “알다스헷”이란 말씀은 “멸망시키지 마소서”(Do Not Destroy)란 뜻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다윗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다윗의 대적자들인 사울과 그의 사람들을 사자로 표현한 이유는 그들의 그만큼 잔인모도하게 다윗을 해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이들은 다윗의 걸음을 장애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습니다(6절).   그래서 다윗은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라고 자기 심정을 하나님께 토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자기에게 임한 재앙인 사울로 인하여 멸망당할 정도의 생사 갈림길에 놓여있었을 때 주님께 피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주님께 피하였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디로 피했습니까?  그는 “주 날개 그늘 아래”로 피했습니다.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한다는 말씀은 비유로서 성도에게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암탉이 그 병아리를 품어 보호하는 날개와 같다는 것입니다(박윤선).  이러한 비유는 성경 여러군데 나오는데 그 중에 신명기 32장11-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심을 봅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어쩔 때 우리가 보금자리에서 너무나 편안히 신앙생활하고 있을 때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여 마치 어미 독수리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 높은 둥지에서 새끼를 밀쳐 떨어뜨리듯이 우리를 떨어트리십니다.  그 때에 우리는 마치 새끼 독수리가 땅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독수리의 본능이 고개를 들고 나와 필사적인 날개 짓듯이 우리 또한 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칩니다. 그러나 그러한 필사적인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새끼 독수리는 땅을 향해 속절없이 떨어져 내리고 마는 것처럼 우리 또한 계속 하강하는 우리의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 때 땅에 부딪히기 직전의 순간, 쏜 살같이 날아온 어미 독수리 는 자기의 날개위에 새끼를 업어 다시금 둥지로 날아오르듯이 이러한 극적인 순간의 어미 독수리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둘째로, 마음이 확정한 성도는 위기와 역경 속에서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57편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다윗은 재앙 가운데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그에게 피한 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간구하는 다윗의 기도 가운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입니다.  첫째로, 다윗이 기도로 의지한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였습니다(2절).  다윗은 지극히 낮은 곳에 처해 있었을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에게 부르짖었습니다.  마치 새끼 독수리가 보금자리에서 떨어져 하강하면서 땅에 닫기 전에 어미 독수리를 보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지르는 것처럼 우리가 재앙의 구덩이에 깊이 빠찌면 빠질 수록 소망이 나에게 없고 오직 주님 밖에 없음을 알고 지극히 높으신 주님을 바라보며 부르짖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요나 선지자입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내려가고, 배로 내려가고, 더 나아가서 큰 물고기 안에서  깊은 바다 속까지 내려갔지만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욘2:4).  둘째로, 다윗이 기도로 의지한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였습니다(2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의 뜻(his purpose)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사야 14장24, 27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 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그가 경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구원(salvation)입니다.  셋째로, 다윗이 기도로 의지한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57편 3절을 보십시오: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다윗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자기의 뜻을 다윗을 위하여 이루시는 주님께 간구하면서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인자와 진리를 하늘에서 보내사 자기를 삼키려는 비방에서 구원해 주실 줄 확신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인자하시고 진실하시기에 그의 뜻인 우리의 구원을 이루심에 있어서 오직 그의 사랑으로 신실하게 이루십니다.  우리의 공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그 분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으로 우리는 구원받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마음이 확정한 성도는 위기와 역경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본문 시편 57편 5절과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7절 하반절에서 9절을 보십시오: “…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어떻게 그러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다윗의 마음이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7절).  확정된 마음은 어떠합니까?  박윤선 박사님은 한 3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확정된 마음은 한번 죽음을 각오합니다.  다윗은, 한번 죽을 것을 각오하고 또 그것에 대하여 마음을 준비하였습니다.  둘째로, 확정된 마음은 모든 선을 행하려고 준비합니다.  미련한 자의 특색은, 마음 준비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목표없이 늘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준비된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확정된 마음은 주님을 믿고 안심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며 기도하며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주님을 모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에 약속된바, 하나님이 신자와 동행하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확정된 신앙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비록 내가 작아지고, 내가 고난과 역경에 환경에 처해있을 찌라도 마음이 확정된 신앙인은 존귀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물이 바다 덮은 같이 온 세상에 덮어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윗은 비록 재앙이 자기에게 미쳤지만 그는 주님께 감사하므로 그를 찬양했습니다(8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님의 크신 인자와 진리를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3절).  그러므로 다윗은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10절).

           

            저희 교회 장을수 할머님이란 분이 계셨었습니다.  그분이 살아계셨을 때 한번은 제가 그분을 뵈러 양로원에 가서 그 분께 ‘할머님은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할머님이 아름다우신 이유는 저는 그 분안에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님께 감사하므로 찬양을 드리시면서(특히 찬송가 40장과 355장) 시편 23편을 외우시고 또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종종 외우시는 장할머님을 뵈면서 참으로 숨질 때 때도록 주님을 찬양하시는 믿음의 본을 보았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직 소망이 되시는 구원자 예수님께 마음이 확정하여 그 분에게 피하시며 그 분에게 간절히 부르짖으시면서 그 분께 찬양으로 영광 돌리시는 장할머님은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신 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 분의 본을 받아 저 또한 마음이 확정하여 숨질 때 되도록 주님을 감사하므로 찬양을 드리길 원합니다. 

 

 

 

마음이 주님께 확정되어 자녀들과 성도님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예배자로 세움을 받기를 기원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내가 만민 중에”와 “물이 바다 덮음같이”를 수요기도회 때 하나님께 찬양드린 후)